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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의 프랑스 일기 - 봉주르! 무지갯빛 세상에 건네는 인사 ㅣ 소담 여행 2
미미 글.그림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9년 2월
평점 :
< 안네의 일기>처럼 누군가의 일기를 훔쳐보는 것 같은 느낌. 이 책을 처음 펼쳤을 때 느낌이었다. 제목부터가 <미미의 프랑스 일기>이고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그림들이 군데군데 숨어있어서 마치 여고생의 다이어리를 보는 것 같았다. 한국이 아닌 프랑스에서 프랑스 사람들과 부대끼며 공부하고 일하는 그녀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미미는 어릴 적부터 즐겨 먹던 '사브레'라는 과자에 그려진 에펠탑 그림에 반해서 언젠가는 프랑스에 가보고 말리라.. 프랑스에 대한 동경을 품고 살다가 결국 휙~ 하고 프랑스로 가버렸다. 낯선 곳에 낯선 사람들 틈에서 혼자 사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으리라. 그녀의 글(일기)들을 보다 보면 과제 때문에 힘들고, 짖궂은 프랑스 남자들에게 치이고, 혼자라서 외롭다는 등 아마도 그녀의 어머니가 읽었으면 마음 아플 이야기들이 종종 있었다. 물론 프랑스 특유의 밝은 분위기에 다시금 힘을 얻고 프랑스를 미워할 수는 없다고 다시 돌아서지만..
이 책에는 배경이 되는 프랑스의 이야기도 많지만 한 개인의 감수성 가득한 소소한 일상들이 담백하고 산뜻한 문체로 그려져있다. 마치 내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처럼, 바로 옆에서 조곤조곤 얘기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고, 일러스트 관련 일을 하고 있는 저자의 그림 솜씨가 보고 있는 사람을 흐뭇하게 만들어준다. 애써 이쁘게 보이려고 하지 않고 무심한 듯 보이지만 하나하나 정성을 다해 그렸다는 느낌이 팍팍 드는 따뜻한 그림들이 마음의 온도를 조금씩 조금씩 올려준다.
책을 읽으면서 세 군데에 포스트잇을 붙여놓았다. 한 군데는, 보름달을 보고 다르게 반응하는 한국사람과 프랑스사람을 비교해놓은 미미의 그림(66쪽). 우리는 당연히 보름달이 뜬 것을 발견하면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소원을 하나 빌고 꼭 이뤄지게 해달라고 마음을 모으는데 반해, 프랑스 사람들은 보름달이 뜬 것을 보면 왠지 불길했다면서 얼른 집에 들어가려고 발걸음을 옮긴다는 것이다. 보름달이 뜬 날 밤에 늑대인간으로 변한다거나, 음산한 영화 장면 속에 보름달이 구름에 살짝 가리면서 환하게 빛난다거나 하는 것이 유럽 쪽에서 보름달을 보는 인식이 반영된 것이겠지.
그리고 또 한 곳은 머피의 법칙처럼 이것저것 하나도 되는 일이 없는 날, 멀리 있는 큰 마트에 가서 잔뜩 장을 봤더니 지갑을 두고 왔기에 오렌지 한 묶음만 들고 나오다가 근처 꽃집에서 이쁜 화분 2개를 아주 싼 돈으로 구입하고는 기분이 좋아진 미미가 진짜 그녀의 일기장에 적어놓았을 법한 한 구절. "하늘 한번 봐봐. 별이 많아. 잘 자, 내 작은 별. 네 생각 하고 있어."(197쪽)... 아, 이 얼마나 반짝반짝 빛이 나는 감수성이란 말인가.. 나도 이렇게 감수성 풍부한 적이 있었나 싶은 자괴감이 들었다. 어떻게 보면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 글이지만 나는 왠지 팍팍한 현실에 익숙해져 그냥그냥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고 글 쓰는 것도 꽤나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나는 문학적 감수성은 다 잃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슬펐다.
세번째 포스트잇을 붙인 곳은, 에펠탑을 소개하는 지면에 나온, 에펠탑은 철로 짠 레이스다. 라는 문구였다. 아, 얼마나 아름다운 비유인가.. 실제로 에펠탑을 보게 된다면 얼마나 황홀할까. 밤이면 10분마다 반짝반짝하고 네온에 불이 들어온다는데 티비 화면에서 봤던 장면이었다. 내가 바로 그 현장에 있다면.. 철로 짠 레이스에 불이 들어온다면..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프랑스에 유학 가서 공부하느라, 과제내느라, 적응하느라 여러 모로 힘들었던 그녀의 이야기들은 학교나 과제 이야기가 별로 없어서 마음에 확~ 와닿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전문적인 부분까지는 필요없어도 그녀가 다닌 학교의 시스템이나 교수들 이야기도 조금 있었으면 더 좋았지 않겠나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그리고 그녀가 어느 광고회사의 인턴생활을 하기 위해 파리로 떠날 때 아주 친한 친구인 마르코와 헤어져 쓸쓸해하고 아쉬워하는 마음이 글에 잘 나타나 있었는데, 그 후 마르코와 어떻게 되었는지 참 궁금해졌다. 마르코의 긴 편지 속에, 삶은 여행이며 우리는 언젠가 다시 만날 수도 있다는 문구를 보며, 그들은 만났을까? 라며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기도 했다. 내 인생이 긴 여행이라면, 나는 지금쯤 어디에 와있는 걸까? 나는 목적지까지 바른 길로 걸어가고 있을까? 프랑스에서 보내온 미미의 마음 따뜻한, 소소한 일기들이 나를 두둥실 하늘로 띄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