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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범 1 ㅣ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30
미야베 미유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소설을 읽고 깊은 감동을 받거나 생각할 거리가 많아진다면, 좋은 소설이라고 말하겠다. 하지만 아무것도 남지 않고 그저 책이라는 형식을 통해 발표된 허접한 이야기라면 읽고 난 시간이 아까워지는 나쁜 소설이라고 말하겠다. 영화도 마찬가지이지만 허접한영화는 킬링타임용이었다고 가볍게 말하면서 툭툭 털어버리고 말겠지만 책을 읽고 난 뒤에 그런 느낌을 받게 되면 왠지 믿었던 책에게 배신당한 기분이 들곤 한다. 이것은 순전히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책은 뭔가 생각할 거리를 남겨야 한다는 주의.
그런 의미에서 <모방범>은 최고의 소설이었다. 재미면에서 봐도 그 두꺼운 책 3권을 술술술 넘기면서 푹 빠져있을 정도였고 주위 사람들에게 추천을 했으니 최고이고, 내용면에서도 많은 꺼리를 남겨주었으니 최고였다.
내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생각한 점을 번호를 매겨가며 적으려고 한다.
1. 끔찍한 살인사건을 저지르고 그것으로 연극을 만들어 대중에게 자랑했던 구리하시 히로미와 피스는 둘 다 어릴 적부터 평온하지 못한 가정환경에서 삐뚤어지게 자랐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어머니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죽은 누나의 환영에 시달리던 구리하시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도 '저 애는 못된 녀석이야.'라는 생각을 갖게 불량한 행동을 일삼았지만, 피스는 누구의 기억에서도 항상 웃고 친절하고 똑똑하고 완벽한 사람으로 남아있었다. 하지만 속내는 그리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죄의식없이 살인을 하고 그것을 떠벌리며 인간적인 고뇌조차 없는 피스가 더 지독하다.
아이들의 성격형성은 부모와 가정환경이 크게 좌우한다. 사랑이 넘치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와 늘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불안해하고, 가족에게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불우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확실히 차이가 난다. 성인이 되어서 바로잡으려고 해도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거나 아마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가장 작은 사회인 가정이 중요하다.
2. 사람들은 모두 자기 입장에서 생각한다. 아무리 남을 배려하고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서 행동한다고 해도 결국엔 타인이다. 내가 봤을 때 옳은 일도 타인의 입장에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것을 인정하고 서로 용인해야 트러블없이 문제가 해결이 될텐데 우리는 넓은 마음으로 그러지 못한다. 내 입장이 있기 때문이다.
쓰카다 신이치에게 히구치 메구미는 끔찍한 존재이다. 내 가족을 살해한 범인인 그녀의 아빠가 오히려 피해자라고 아빠의 이야기를 들어보라고 집요하게 달라붙는다. 부모님과 여동생을 잃은 신이치에게 오히려 니 탓이라며 아빠는 아무 잘못이 없다고 소리지르는 메구미는 책을 읽고 있는 내 가슴을 벌렁벌렁하게 만들 정도로 어이없고 잔인했다.
사랑하는 손녀딸을 잃은 아리마 요시오에게 예고없이 나타나 자신의 오빠 다카이 가즈아키는 범인이 아니라고 말하는 다카이 유미코는 진실을 말하고 있지만, 아리마에게는 어이없는 일일 뿐이다. 책을 읽고 있는 독자로서 나는 모든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기 때문에 유미코가 진실을 말하지만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답답해지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아리마나 다른 피해자의 유족에게는 신이치에게 메구미가 그렇듯 유미코 역시 내 딸을 죽인 극악무도한 범인의 철면피 가족일 뿐이다.
메구미에게 화났던 내 감정이 유미코에게 마찬가지로 발산되었다. 어떻게 피해자의 유족의 마음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거지. 유미코 너도 마찬가지야. 너도 너만 생각하는 나쁜 사람이야.
3.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나카이 마사히로가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모방범>에서 피스의 역할을 맡았다. 아직 영화를 보진 못했다. 소설에서는 처음부터 피스가 나쁜 놈이라는 것을 알고 혐오하는 입장에서 피스를 보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리 피스가 멋들어진 말을 늘어놓아도 나는 넘어가지 않았다. 상대방인 구리하시나 유미코가 그에게 넘어가도 말이다. 하지만 만약에 내가 소설의 독자가 아니라면, 그리고 영화의 관객으로 피스를 본다면 어떻게 반응할까. 준수하고 매력있는 피스가 그럴듯한 말솜씨로 다가온다면 그 악의를 어떻게 눈치채겠는가. 겉은 멋지지 못해도 속은 진국인 다카이보다 멋있는 피스에게 끌리는 것이 인지상정인가. 역시 외모가 많은 것을 평가하고, 외모로 귀결되는가.
아마 영화를 보면 나는 은연중에 피스의 편을 들지도 모른다. 소설속에서 일본의 대중들이 피스에게 열광했던 것처럼.
4. 다카이 유미코는 자신의 오빠 다카이 가즈아키가 범인이 아니라고 오빠의 결백을 주장하며 용기있게 행동에 나선다. 비록 타인의 눈에는 광기어린 피해자의 가족으로밖에 보이지 않더라도 그녀는 그녀 자신의 결단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다가 아미가와 고이치를 만나게 되어 그에게 의지하면서 점점 꼭두각시가 되어간다. 오빠가 결백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자신감을 잃은 거라고 생각했다. 세상의 눈에 지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녀는 자상하고 친절하고 멋있는 아미가와에게 사랑을 느끼고 그를 소유하고 싶어하다 현실이 그렇지 못하자 거기에 지친 것이었다. 머릿속의 사고가 정지하고 아미가와의 든든한 두 팔에 매달려 버린 것이다. 아미가와가 짜놓은 극본에 비련의 여주인공이 되어버린 것이다.
유일하게 이 소설에서 마음에 들지 않은 부분이었다. 아무리 충격에 빠졌다 하더라도 어떻게 그 순간에 사랑이니, 질투니 하는 감정으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자신이 아닌 타인의 의지로 움직일 수 있을까. 왜 작가는 유미코를 그런 매력없고 나약한 인간으로 그린 것일까. 어릴 적부터, 아가씨가 되어서도 유미코는 자신의 오빠를 이용해먹는 구리하시에게 당돌하게 소리치는 힘있는 캐릭터였다. 그런 그녀가 아무것도 꿰뚫어보지 못하는 흐리멍텅한 정신과 눈의 소유자가 된 것이다. 너무나 허무하다. 왜 이렇게 인간이란 존재는 나약한가.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자. 저 위에 줄쳐진 말. "아무리 충격에 빠졌다 하더라도".. 나는 그녀가 아니다. 내 오빠가 갑작스런 교통사고 나서 죽어버린 것이 아니다. 더군다나 내 오빠가 잔인한 살인사건을 일으킨 범인이 아니다. 나는 그녀의 처지를 죽을 때까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아무리 상상하고 동화되려 해도 나는 그 처절한 심정을 백만분의 일도 느끼지 못할 것이다. 똑같은 처지가 되지 않는 이상.
5. 마에하타 시게코의 르포는 제삼자의 눈으로 사건을 바라본다. 그녀는 마치 범죄심리분석가인 양 구리하시 히로미의 검은 속내와 다카이 가즈아키의 뿌리깊은 열등의식을 이번 사건의 토대라고 해석한다.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말들로. 나 역시 어쩌면 똑같은 분석을 내릴지도 모른다. - 구리하시도 사랑받지 못한 가정환경에서 자라나 성격이 삐뚤어졌고, 다카이는 시력장애 때문이었지만 친구들이나 선생에게조차 버림을 받았었다. 이것은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전 사회적인 문제이다. 언제 또 이런 범죄가 발생하고 범인이 나타날지 모른다. - 는 식으로.
그런데 이런 식으로 모든 범죄를 분석한다면 도대체 누가 가해자가 되고 누가 피해자가 되는가. 이 세상엔 피해자만 가득하고 아무도 잘못이 없게 된다. 이건 아니지 않은가. 문득 작년 여름에 발생했던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사건이 생각났다. 그 때도 범인도 마찬가지로 사회로부터 보호를 받지 못한 또 한명의 피해자이다, 라는 견해가 나왔었다. 또 어떤 사건의 재판에서 정신병을 주장하며 피고의 죄를 감형하려는 노력도 많이 보인다. 이렇게 되면, 과연 진짜 피해자들은 어디에서 위로받고 보상받아야 할까. 모두가 피해자라고 한다면 범인과 희생자가 동격으로 취급받게 된다. 그러면 안 되지 않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해답이 안 나온다.
6. 구리하시 히로미와 다카이 가즈아키가 같이 죽고 난 후 세상이 두 사람을 범인으로 인정할 때, 그 둘의 가족들은 집을 떠나 방황하게 된다. 구리하시의 부모가 도망친 것은 나름 고소해했다. 구리하시는 정말 천벌을 받을 잔인한 놈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착하게 살아온 다카이가 누명을 쓰고 죽어버린 후에 아버지는 병원에 입원하고 어머니와 유미코가 지인의 집으로 피해서 살아야 하는 것은 안타까웠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럴 필요가 없는 착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고, 내가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론적으로 보면 어떤 사건의 가해자는 한 개인이다. 하지만 그 고통을 받는 것은 그의 가족이다. 특히 이 소설속의 경우로 보면 그 가해자가 죽어버리고 없자 그 책임과 비난은 가족들에게 돌아간다. 가족들 또한 죄인의 심정으로 그것을 말없이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도 말이 안 되지 않는가. 내가 잘못하지 않았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이유로 모든 일상을 포기해야 하는가.
이 글을 쓰면서 나는 나의 이중적인 면을 보았다. 몇 줄 위에 줄 친 부분 "구리하시의 부모가 도망친 것은 나름 고소해했다." - 구리하시는 너무나 못된 놈이기에 그의 가족이 그런 취급을 받는 것도 마땅하다, 그런 취급을 받아도 싸다, 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금방, 죄를 저지른 개인과 그의 가족은 별개라고 말해놓고 말이다. 스스로에게 실망스럽다.
7. 이 소설을 읽으면서 영화 <그놈목소리>가 연상이 되었다. 무엇이 무엇을 모방한 것인가. 인터넷으로 검색도 해보았다. 영화 <그놈목소리>의 실화였던 그 사건은 1991년에 발생했었고, 이 소설은 1995년부터 주간지에 연재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사실만 두고 보면 혹시 미야베 미유키는 한국에서 일어난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일까. 궁금증이 인다.
또 만화 <데스노트>도 연상되었다. 범인과 그를 잡으려는 사람과의 두뇌싸움이라는 측면에서 유사했다. 만화와 조금 다른 점은 경찰이 그렇게 무능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만화에서는 L이라는 사립탐정이 일본경찰을 지휘했고, 사실상 혼자서 모든 일을 다 해결했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경찰은 매스컴에 휘둘리기도 하고 선수를 빼앗기기도 하지만 차근차근히 실속있게 사건의 실마리를 잡고 있었다.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처럼 경찰이라는 집단을 무능하고 답답한 단체로 그리지 않아서 좋았다. 특별히 경찰을 신뢰하거나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한 나라의 치안을 담당하는 곳인데 무작정 답답하게 그리는 것이 마음이 조금 불편했었던 것뿐이다.
아,, 이 소설은 정말 나에게 많은 걸 생각하게 해준다. 이 서평을 쓰고 있는 중에도 새로운 관점이 튀어나오고 내 생각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1번부터 7번까지 번호를 매기면서 글을 써나갔는데 지금 퍼뜩 드는 생각은, 나는 가장 중요한 생각꺼리를 일부러 피해가고 있다, 는 생각이다.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서 표현하려고 했던 것은 아마도 '인간성'이라는 것 아닐까. 피스의 끝을 알 수 없는 사악함 그 자체, 악의 근원. 구리하시의 악. 히구치 메구미의 악. 등등 인간 내면에 숨은 악을 표현하려 했던 것이 아닐까. 이건 너무나 어려운 주제라서 아무리 생각을 하고 머리를 굴려봐도 나는 이해하지 못하겠다. 선천적으로 유하게 태어난 나는 이런 범인들의 속내를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아예 그 부분은 생각조차 않으려고 피해가고 있는 것이다. 사소한 것까지도 7번까지 번호를 매기며 기록하고 있으면서. 이건 다른 여러가지 책들을 더 접해보고 많은 경험을 해보고 난 다음에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문득, 이 소설을 가지고 토론을 벌여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주 많은 이야기가 터져나올 것 같다. 오랜만의 유쾌한 책읽기였다. 미야베 미유키의 다른 책들을 좀더 찾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