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당신이 결정한다
샤론 모알렘 지음, 정경 옮김 / 김영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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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나의 기존 알량하게 알던 지식체제를 가장 많이 뒤흔든 책이다.
내 유전학에 대한 지식은 멘델에 멈춰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평소에 궁금했던 것들,
예를 들어,
왜 어떤 사람은 커피를 마셔도 잠을 잘 잘까?
왜 임신 초기에 엽산을 먹어야 하지?
왜 유전자 조작 옥수수에 사람들이 걱정할까?
왜 여왕벌은 로열젤리를 먹을까?
왜 시금치를 먹으면 암 발병률을 낮춰질까?
왜 영향 보조제가 만능이 아닐까?
등등 수많은 궁금증에 대해 많이 풀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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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몸과 관련해서 파생되는 많은 상식, 의문점을 의학이 아닌 유전자 발현 관점으로 알려준다.
그렇다고 단순 ‘건강하게 삽시다.’ 책은 아니다.
유전학에 대한 최신 지식을 농도 깊게 알려준다.
유전학에 특별히 관심 있었던 사람이 아니라면,
나처럼 콩으로 배웠던 멘델의 법칙에 지식이 묶여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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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처음에는 유전을 흑백의 멘델 렌즈를 통해 이해했을지 몰라도 오늘날 우리는 유전 발현을 유전학적 총 천연색으로 보는 힘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51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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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의 세계를 총 천연색으로 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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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컨데,
완두콩이 덩그러니 그려지고,
옆에 유전자, 당신이 결정한다는 책표지를 봤을 때 흥미를 그닥 못 느꼈다.
건강을 챙겨야 하는 나이가 되었건만,
애써 젊은이인 척 하는 마음 때문인지,
건강 관련 책을 피하고 있었다.
건성건성 한 마음으로 1장 유전학자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살펴보다가,
관심의 불이 여기저기 켜지면서 몰입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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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유전학자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에서는 영화 관상이 딱 떠오르는 에피소드들로 사람을 제대로 업장(책 속)으로 끌고 간다.
유전학자들은 유전자 검사를 하기 전에도,
환자의 얼굴을 보며 어떤 질환이 의심되며,
잠재적으로 발병할 병명이 머릿속에 그려진다고 한다.
흡사,
관상가 한 장면 같기도 하고 비과학적인 이야기 같지만,
다운증후군을 앓고 계신 분의 얼굴을 한 번 떠올려보자.
1996년에 나와 각종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던,
영화 ‘제8요일’은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주인공이 나온다.
영화를 보고 관련 다운증후군 환자 이야기를 보다면,
다른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분들도 유전자 발현 문제 때문에 주인공 조지와 얼굴과 인상이 거의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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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증후군은 얼굴에 눈에 띄게 나타난 경우고,
대부분 전문가가 아니면 찾기 힘들거나 오히려 장점으로 보이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신비롭고 풍성한 눈썹은 FOXC2 돌연변이에 의한 것이라든지 등.
이를 알면 우린 관상가 흉내를 낼 수 있다.
FOXC2 유전자 돌연변이는 풍성한 눈썹(이중 눈썹)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림프액 부족으로 다리가 쉽게 붓는 증상도 있다.
당신이 엘리자베스 테일러 한테 가서 ‘관상’을 본다며,
다리가 쉽게 붓는 관상이라는 얘기 같은 굉장히 사적인 부분까지 짚어내면,
관상을 믿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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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내내,
과거 관상가라는 게 전혀 말이 안 되는 것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조선 시대에 생활 방식, 직업 등 인생이 상대적으로 무척 단순했을 것이고,
관상가가 얼굴로 보이는 유전학적 질환을 경험적으로 알 수 있다면,
사망 원인도 추정할 수 있지 않았을까?
예를 들어,
특정 유전질환은 자식대에 발현되는데,
관상가가 어떤 사람의 얼굴에서 경험적 유전 질환을 찾아내어 ‘자식에 문제가 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할 관상이로다’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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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을 읽고 나면,
열린 마음으로 앞으로 펼쳐질 유전자의 세계를 받아들일 준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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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독자들에게 이미 알려지거나 알려지지 않은 사실 사이의 경계에 묶인 단단한 줄 위에서 줄타기를 하락 종용할 것이다. 물론 그 위는 많이 흔들릴 것이다. 하지만 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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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제목은 유전자 바꾸기다.
내가 저자가 저명한 유전학자라는걸 몰랐던 당장 책을 던져버렸을 것이다.
건강식품 판매 카탈로그라고 생각해버렸을 것이다.
유전자를 바꾼다고?
이건 무슨 비과학적인 얘기람.
책을 읽어보면 이 황당무개한 이야기에 또 훅 빠져든다.
‘아~, 내가 유전학에 대해 무지했구나’
자,
주제는 유전자의 발현이다.
특정 유전자의 기능을 끄고나 켜서 발현을 조절한다는 후성유전학이다.
유전자 조작없이도,
특정 유전자 스위치 조절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부분에서 거만하게 팔짱끼고 '자 형씨, 한 번 나를 설득해보시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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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꿀벌을 쓱 이야기 주머니에서 꺼낸다.
그리고 여왕벌과 꿀벌을 보여준다.
둘이 유전자 자체가 달라 보이는 족속지만,
당연히 둘의 유전자는 서로 같다.
그리고 여왕벌은 로얄제리를 먹어야 된다는 것 까진 알것이다.
근데 왜?
하필 로얄제리인가?
자,
벌의 애벌레 유전자에는 DNA메틸절달효소가 있다.
이 효소는 애벌레를 평범한 일벌로 만든다.
근데 이 효소를 억제하면,
애벌레는 여왕벌이된다.
이 효소를 억제하는게 바로 로얄제리다.
로얄제리를 어렸을 때부터 퍼먹으면,
메틸절달효소가 억제되어,
평민이 될 아이를 여왕으로 만든다.
허허,
단지 음식으로 말이다.
자 포인트는 이 효소는 사람들도 가지고 있다.
여왕벌이 된다는 것은 아니고 여러 유전자 발현을 억제, 활성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한테도 꿀벌의 로얄제리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자연계에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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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과 4장을 보면,
다시 유전자에 대한 기본 상식들이 깨지기 시작한다.
특히, 멘델의 유전법칙!
유전자는 전달되고 확정된다는 믿음은 여지없이 쨍그랑.
최근 연구에 따르면,
유전자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유전자 발현이다.
즉,
나의 행동에 따라 특정 유전자 스위치가 켜지거나 꺼진다.
심지어 후대에 전달된다는 것이다.
왕따가 어떻게 사람의 유전자까지 영향을 주고,
심지어 후대에 절달 될 수 있는지를 보면 다소 충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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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6장은 음식, 약품, 건강 보조제등 우리 입을 지나가는 것들이 배탈나냐 마냐 문제가 아닌,
유전자 스위치들을 켜냐,
끄냐 문제까지 이어진다.
책상 앞에 있는 건강 보조제를 가만히 노려보면서 성분을 살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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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에선 왼손잡이가 유전이냐 아니냐에 대해 얘기한다.
이즈음 되면 유전자 만능에 빠질 것 같다.
8장은 세르파 같은 가히 엑스맨급 사람들 얘기다.
사람이 가진 수억개의 유전자 중 단 한 개가 변이를 이르키면,
일반인 보다 50%의 산소활용률을 자랑하는 세르파가 된다.
많은 마블 영웅들은 외적인 변이에 의해 영웅이 된다.
책을 읽다보면,
우리가 가진 유전자 중 몇 가지 스위치만 조작해도 엑스맨이 될 수 있다.
9장은 엑스맨이 문제가 아니라 성별까지 바뀌는 것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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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촘히 빼곡하게 채워진 이야기에 요약조차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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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게릭병 치료를 위한 모금인 아이스 버킷이 한창일 때,
이런 목소리도 나왔었다.
치료가 불확실하고,
소수의 사람만 고통받는 희귀유전 질환에 투자하기보다는 보편적인 질병에 투자하는 게 어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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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어보면,
희귀유전 질환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발견되는 다수를 위한 치료 지식을 준 고통 받는 환자들에게 감사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유전학은 한 마디로 노가다 같다.
수억 개의 유전자 중 단 한 개가 변했을 때 사람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 지 찾아야 한다.
어떻게 찾을까?
그 유전자 변이로 고통받는 환자를 관찰하면서 발견한다.
그러면서,
인류의 보편적인 질병에 대한 치료법에 대한 아이디어를 찾아간다.
예를 들어,
성장호르몬 면역 때문에 왜소증을 가진 라론 증후군을 앓고 있는 환자는 아이러니하게 암에 대해 완벽한 면역을 가지고 있다.
유전학자들은 이 유전 질환을 통해 암에 대한 지식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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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으며,
최신 유전학에 대한 지식을 꽉꽉 채워놓는 것 외에,
희귀 유전 질환으로 고통받는 환자에 대한 인식도 바뀐다.
어떤 시대와 사회에서는 이런 희귀 유전병을 가진 사람을 불길하게 여겼겠지만,
이분들이 본인의 그 불편한 삶 그 자체가 인류에게 이바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아이스 버킷 같은 희소병에 대한 성금, 모금에 대한 경제성에 대해 따지는 사람들도,
유전 질환 연구에 따른 일반 사람들에게 돌아갈 면을 고려한다면,
이보다 더 경제성이 있는 기부 활동도 없으리라 생각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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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정말 좋아하는 농담
김하나 지음 / 김영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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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제일 좋아하는 농담이 뭐였지?
정전기처럼 빠지직 그 순간에만 벼락처럼 개그 코드를 치는 거라 기억이 두고두고 남는 농담이 없는 모양이다.
저자는 과연 ‘내가 제일 좋아하는 농담’이란 제목으로 어떻게 써내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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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내가 좋아하는 농담은 온도는 낮고 겉감은 거칠진 듯하지만 실제 먹으면 부드럽고 한 1분 후에 아하 하고 반응이 오는 블랙 유머다.
책을 후루룩 펼쳐보니,
저자는 다소 따뜻하고 말랑말랑하고 모양도 제법 예쁜 농담을 좋아할 것 같네.
저자가 좋아하는 농담과 내가 좋아하는 농담이 같지 않진 않은데.
‘흐음’하는 마인드로 몸을 뒤로 젖히며 읽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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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저자가 정말 좋아하는 농담은 이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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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바 : (밤하늘을 보며) 티몬, 저 위에 반짝이는 점들이 뭔지 궁금하지 않아?
티몬 : (한심하다는 듯) 품바, 난 안 궁금해. 난 알거든.
품바 : 오, 저게 뭐야?
티몬 : 저건 바딧불이야. 반딧불들이 저 크고 검푸른 것에 끼여 있는 거야.
품바 : 이런. 난 언제나 저것들이 몇 십 억 마일 떨어진 곳에서 타오르는 가스 덩어리라고 생각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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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직원이라면 어느 코너에 꽂아야 할지 조금 애매한 책이다.
어깨에 힘을 쫙 빼 편안해 보이는 인문교양서라고 해야 할지,
그냥 수필이라고 부르기엔 독자를 꽤 자기계발 시키는 듯하고.
제목만 들어본 인문 서적이나 낯선 해외 토픽으로 깊이에의 강요도 없이,
한 번 스쳐 지나가면서 들어봤을 법한 토픽을 가지고 유유자적하게 풀어나간다.
‘연탄재 발로 함부로 차지 말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시처럼 일상에서 소소한 일, 물건, 이야기를 아이디어로 얻듯 말이다.
쓸데없이,
4,000만 광년에 떨어진 태양보다 35배 뜨거운 벨레성운(Bug Nebula) 이야기를 하면서 진지하게 ‘우주에 한 번이라도 뜨거운 존재이었느냐’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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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점에서 내 관심 레이더에 애매한 부분에 자리 잡고 있다.
나도 책을 편식하는 편이라 흘러가는 데로 있다 보면,
특정 분야에 편중된다.
이런 책은 소스를 제공한다.
일종의 맑은 지식의 수프라고 해야 할까?
무겁지도 가볍지도,
당장 어디에서 써먹을지 생각은 안 하지만,
써먹을 얘기들이 있을 것 같은 그런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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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축약의 축약을 하고,
책 덮은 지 48시간이 지난 지금 딱 생각나는 이야기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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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마이트.
영국 사람들이 빵에 발라먹는 맛이 요상한 잼.
호불호가 갈리는 것을 마케팅 포인트로 잡음.
마마이트의 슬로건은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이다.
우리는 영국적인 것의 정수를 지닌 제품과 그 제품이 세계 인구 대다수에겐 매력이 없다는 것에 강한 자부심을 느낍니다.
미움받을 용기가 떠오르기도 하고,
‘빠’와 ‘까’의 끝없는 전쟁으로 노이즈 마케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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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 TV.
노르웨이 국영방송 NRK는 <슬로 TV>라는 프로그램을 내보내는데, 이것은 참으로 별일 없는 방송으로  NRK는 이 분야의 세계 최강자다. 2011년 크루즈선이 피오르해안을 따라 항해하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134시간 동안이나 방송했다.
세상이 복잡해지다 보니,
멍때림도 니즈가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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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소설.
작가 조르주 페렉이 처음부터 끝까지 알파벳 e없이 썼다는 소설 “실종”도 떠올렸다.
이런 책은 어떻게 번역해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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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 스톤, 앤드루 가필드 파파라치를 이용하는 새로운 방법
뉴욕의 한 식당에서 거리로 나온 앤드류 가필드와 엠마 스톤 커플은 자신들을 노리고 있는 파파라치들을 향해 직접 글씨를 쓴 종이를 꺼내보였다.
앤드류 가필드와 엠마 스톤이 든 종이에는 “우리는 식사 중에 파파라치들이 밖에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이렇게 관심 받을 기회를 그럴 만한 자격이 있는 단체에게 주는 건 어떨까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라는 메시지와 함께 WWO(세계고아지원재단), GILDA‘S CLUB(암환자 지원 기관)의 사이트 주소가 적혀있었다. 이 재치 있는 커플은 자신들이 후원하고 있는 자선단체를 파파라치 사진을 통해 홍보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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쫑이 산책 음료.
가게에서 키우는 개를 산책할 시간이 없어 고객에게 전가하는 방법.
개를 산책시키면 음료가 공짜.
서로윈윈.
이런 게 창의적인 방법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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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낭만주의자에 관해.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을 경우 현실주의자는 그 일을 그냥 내버려두지만, 낭만주의는 그 소동을 깨끗이 정리하고 싶은 마음에 쫓겨 무언가 해명을 해야 한다는 쓸데없는 생각을 떨쳐 버리지 못한다.
끄덕, 끄덕 그런 사람들이 있었더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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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말 그대로,
얇은 지식 쇼핑한다.
둘러보다 흥미를 느껴 더 파볼 수 있는 주제가 저자의 시각으로 예쁘게 진열되어 있다.
흥미로운 농담들은 멈춰서 다시 둘러보고,
어떤 것인지 더 파보고,
내 머릿속에 비어있던 부분을 얕게 칠할 수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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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그 자체 - 40억년 전 어느 날의 우연
프랜시스 크릭 지음, 김명남 옮김, 이인식 해제 / 김영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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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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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그 자체 : 40억 년 전 어느 날의 우연.

책 제목만으로도 경외심이 생겨 존댓말이 나올 지경이지만,

책의 큰 주제인 ‘정향 범종설’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또 갸웃한다.

‘이건 뭐 SF소설인가?’

왜냐하면,

정향 범종설은 한 마디로 생명의 기원은 지구 밖이라는 것이다.

운석에서 묻어온 어떤 생명의 씨앗이 지구에 뿌려졌다는 거지.

멍하니 읽다 보니 문득 떠오르는 SF영화 한 장면이 있다.

영화 프로메테우스의 첫 장면이 바로 정향 범종설이다.

첫 장면은 ‘엔지니어’라고 하는 인간과 비슷한 외계인이 검은색 액체를 마신 후 물에 뛰어든다.

몸이 완전히 분해되어 물속에 없어진 후,

화면 가득 DNA 모양의 이중 나선이 분열 및 복제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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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과학자가 할 얘기인가?

과학서를 쓰랬더니 소설을 쓰고 앉았네라고 치부하기에는 또 저자가 너무 거물이다.

우리가 DNA 하면 생각이 나는 이중나선.

그래,

이거 이것만 나오면 갑자기 생물학자가 빙의하는 그 모양.

저자 프랜시스 크릭은 ‘DNA 이중나선 구조’라는 논문을 써 생명공학 혁명의 깃발을 처음 올린 사람이오,

제임스 왓슨, 모리스 월키스와 함께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사람이다.

소설이라도 찰스 다윈만큼이나 생물학의 한 획을 그은 양반이면 뭔가 다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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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땅 다 읽은 내가 결론부터 말하면,

책을 덮을 때 즈음 생명에 대한 경외심이 생길 것이다.

너무 경이로워서 무신론자인 내가 신이 어디 숨어있나 두리번거릴 정도다.

책 제목만 보면 뭇사람들도 나처럼,

세포 하나에서 인간이 되는 과정이 신기하지만 그 정도인가?

아니지.

이 정도라면 내 머릿속으로 어떻게든 이해를 했겠지.

그게 아니지.

그 세포를 구성하는 초기 생명의 조각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얘기한다.

그냥 일반 분자가 평범한 일반 화학 반응이 우연의 우연을 걸쳐 DNA가 되고,

그 DNA는 스스로 분열 복제를 시작하며 세포를 만들게 된다.

세포까지 오면 최소한 생명체라는 생각이 들어서 인간까지 되는 것은 뭐 그럴 수 있겠지.

분자로 크게 비유하자면,

그냥 아무런 의지도 없는 길에 있는 돌덩이들이 비바람 맞으며,

우연한 화학반응이 연속을 걸치다 보니 스스로 복제할 수 있게 되었고,

더 나아가 팔다리가 쑥 생겨 처자식 만들어 대를 이어가는 꼴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종교가 없는 나조차 신이 정말 있건가 싶을 정도다.

아마 신이 있다면 그건 무구한 ‘시간’ 그 자체일 것이다.

이런 엄청난 우연들을 빼곡히 세워서 돌멩이를 사람으로 만들 정도의 밀집된 우연들.

정말 몇 억 년의 시간이 주어지면,

 단순 돌덩이기에도 생명을 갖게 할 수 있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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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전체적으로 훑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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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시간과 거리, 큰 것과 작은 것

2장 우주의 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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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장은 본격 생명에 대해 얘기 하기 앞서,

우주가 얼마나 넓고,

지구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기를 팍 죽이는 역할을 한다.

저자는 지구에 생명체가 있는 게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생명체가 생기는 데 필요한 시간을 한 번 느껴봐라 욘석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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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가 얼마나 넓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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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이 오렌지만 하다고 하자. 그렇다면 지구는 태양으로부터 9m 거리에서 궤도를 도는 모래알이다. 지구보다 11배 더 큰 목성은 태양으로부터 60m 거리에서, 즉 도시의 한 블록 거리만큼 떨어져서 공전하는 체리 씨다. 은하는 오렌지 1,000억 개로 이루어져 있는데, 한 오렌지와 이웃 오렌지의 평균 거리는 1,600㎞다. -31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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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0킬로면 대만 정도 거리다.

서울에 있는 오렌지에서 가장 가까운 것은 대만에 있는 오렌지다.

인터넷에서 하는 드립들이 과학에 근거한다고 느끼는 게,

안드로메다가 그나마 가장 가까운 은하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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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넓은 곳에서 하필 지구에 생명체가 어떻게 생겼을꼬.

도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흐른 걸까?

손에 잡힐 수 있는 사물을 통한 비유는 이 책의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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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자체가 캄브리아기 시작에서부터 현재까지의 시간에 해당한다고 하자. 대략 6억만 년이다. 그러면 한 페이지는 약 300만 년을 뜻하고, 한 줄은 약 9만 년, 한 글자나 빈칸은 약 1,300만 년이다. 이때 지구의 기원은 책 7권쯤 더 앞선 시점이었을 테고, 우주의 기원(정확한 연대는 대략적으로만 측정된다)은 그보다도 10권 더 앞섰을 것이다. 기록된 인류 역사는 이 책의 마지막 두세 글자 안에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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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이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한 번에 한 글자(글자 하나가 1,500만 년)씩 천천히 읽는다면, 우리가 다루어야 할 시간이 얼마나 광활한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30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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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가 팍 죽었으니 인제 생명에 대한 생화학을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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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생화학의 통일성

4장 생명의 일반적인 성격

5장 핵산과 분자 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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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체에 대한 경외의 눈을 모두 깡그리 거둬 버리고,

단순 화학물질로 보면 결국 핵산과 단백질로 구성된 어떤 것이며,

이것들은 스스로 계속 복제를 할 수 있다.

생명의 속성이란 게 참으로 단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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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계는 자신의 지침을 직접 복제할 수 있어야 하고, 복제에 필요한 장치도 간접적으로 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유전물질의 복제는 꽤 정확해야 하지만, 한편으로 돌연변이가 낮은 비율로 반드시 발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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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자들이 평범한 일련의 화학작용이 계속 적절이 이루어지다 보면,

고분자 물질인 핵산과 단백질이 생성된 것이다.

너무나 많은 경우의 수이기 때문에 우리가 재현할 수 없을 뿐.

마치,

주사위 두 개를 굴렸는데 몇백만 번 계속 일이 두 개가 나오는 스네이크 아이가 계속 나오는 확률보다 더하다.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완전 100% 또라이는 아니란 얘기다.

정말 로또를 연달아 10년간 매주 맞을 확률만 한 우연한 길을 간다면 생명체를 창조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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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원시지구

7장 통계의 오류

8장 다른 적합한 행성들

9장 고등 문명들

10장 생명은 언제 시작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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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비밀을 밝혀주겠다는 이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머릿속이 하얘지는 기분이다.

인지 영역을 밥 먹듯이 벗어나는 얘기들 때문에.

몇십억 년 동안 온 지구 곳곳에서 발생한 화학반응 중 하나가 기가 막히게 우연과 우연으로 딱딱 반응하여 생명이 나온다.

물론 알겠는데 그 우연이란 게 너무 기가 막혀 헛웃음만 나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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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억 마리 원숭이에게 10억 대의 타자기를 주더라도, 우주의 현재 수명에 해당하는 시간 내에 윌리엄 셰익스피어 의 소네트 4행 1연으로 이루어진 정형시 중 가장 대표적인 형식)가 정확하게 타이핑되어 나올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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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대목까지 나오고,

게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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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 밝혀진 지식을 모두 숙지한 사람이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무엇일까? 지금으로써는 생명의 발생이 어떤 면에서든 기적이나 다름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이는 생명이 발생하기 위해서 충족 되어야 할 조건이 너무 많기 때문인데, 이 말을 오해하지는 말자. 상당히 평범한 화학반응들이 적절하게 계속 이어졌기 때문에 지구에서 생명이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뜻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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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SF영화에 나올 법한 외계의 요소로 인해 지구에 생명이 탄생했다는 정향 범종설 주장이 슬슬 그럴싸해 보일 지경이다.

도무지 아무리 영겁의 시간을 줘도 저런 우연들이 계속되는 게 말이 되겠느냐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우주가 아무리 넓어도 정말 지구에만 생명이 있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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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의 진화론에 관한 책을 읽고 있노라면,

그래,

신은 없지라고 생각이 든다.

Here is 스파르타는 아닌 불가지론!

그런데 이 최초의 생명체에 해당하는 핵산과 단백질이 발생 과정을 읽노라면,

음,

오히려 세상에 창조주라는 게 정말 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 정도로 경이롭다.

40억이라는 시간 그 자체가 창조주인 게 아닐까.

창조주라는 게 어떤 형상이 아닌 시간 그 자체가 아니겠느냐는 철학적인 생각마저 든다.

.

솔직히 설계도를 주어진다 해도 워낙 우연한 산물이 필요하므로,

40억 년을 줘도 인간을 만들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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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장 그들은 무엇을 보냈는가

12장 로켓의 설계

13장 두 이론 비교하기

14장 다시 생각해보는 페르미의 질문

15장 왜 신경을 써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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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저자가 생각하는 정향 범종설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는 이렇게 접근해 본다.

만약 우리라면 어떻게 다른 은하계로 진출할 수 있을까?

우리 외의 문명이 존재한다면 그 존재도 역시 같은 생각을 하겠지.

너무 진지하게 하다 보니 SF영화 시나리오 같다고 느껴진다.

요약하면,

질량 때문에 사람은 안 돼요.

한정된 자원이라면 세균을 보내는 것이 적당하다.

현재 로켓 방식으로는 이론적으로 광속의 1/100밖에 속도를 못 내기 때문에 가까운 은하계까지 걸리는 시간이 몇천, 몇 만 년이다.

당연히 그만큼의 연료를 채우기 힘들다.

이 문제에 대해 과학자들의 기발한 상상들이 나온다.

지구에서 레이저를 쏴서 에너지를 공급하는 방식,

얇은 태양광 돛을 만들어 태양광의 흐름을 타서 멀리 까지 보내는 방법 등.

도대체 누가 상상력을 가지기 위해 인문학이 필요하다고 했나.

상상력은 인문학의 전유물이 아닙디다.

과학이 펼치는 상상의 날개는 몇 곱절 더 커 보인다.

생명의 기원부터,

생명을 우주로 보내기 위한 온갖 상상들,

하지만 철저히 과학에 입각한 상상력은 백 년의 고독과 같은 마술적 사실주의처럼 느껴질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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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끔찍한 부작용.

책은 우주, 생명, 진화 거창하디 거창한 주제를 다룬다.

인지 영역을 넘어서는 우주의 광활한 모습,

어쩌면 신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우연한 우연으로 만들어진 생명,

거기서 진화 그리고 은하계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가 나타날 미래까지.

이런 것들에 푹 빠지다 보면,

이 우주의 작은 먼지의 흠집안에 껴 있는 때보다 미천한 내 인생!

뭐 이리 아웅다웅 사느냐는 생각이 들면서,

인생 좀 막 살게 된다.

에라이 그냥 술이나 먹자,

에라이 그냥 퍼 자자,

에라이 야식이나 잔뜩 먹자,

회사 일도 귀찮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고 나면 못 노나니.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오히려 인생이 너무 복잡하여,

머릿속에서 잡념들이 광란의 파티를 하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

읽어 보아라,

경이로운 세계에 압도되고 그 손 바닥위에서 마음의 평화를 느낄 수도 있다.

'나는 누구고, 여기는 어디인가’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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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금 핀테크인가 - 송금, 결제에서 인터넷 전문은행까지 손끝에서 이뤄지는 금융 신세계
현경민 외 지음 / 미래의창 / 2015년 8월
평점 :
품절



배트맨과 로빈

금융권 IT와 핀테크에 종사하고 있는 지인은 늘 현 정권에 대한 문제를 성토한다.

단지 IT분야 말고 전방위로 말이다.

하지만,

딱 하나 정말 딱 하나 칭찬하는 게 있다.

하나라도 있다는 것에 난 놀랐다.

벤처, 스타트업에 대한 지원이다.

그 양반 말을 빌리자면,

'지금 단군이래 가장 창업하기 좋은 시기'

특히 핀테크가 주목받으면서 IT 인력의 위상이 커지고 있다고 한다.

금융기관에서 IT는 생명유지나 다름 없는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정작 IT인력은 그만큼 인정받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열심히 악당을 물리치는 배트맨과 로빈 관계라고 할까?

갑자기 찾아온 핀테크붐과 함께 금융권 내 IT 위상 부쩍 커졌다.

로빈이 배트맨만큼 중요해졌다.

아니,

심지어 배트맨의 자리를 위협할 지경이다.

‘이제 그만 그 자리를 내놓으시죠, 브루스 웨인! 카드도 같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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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테크.

그냥 거품으로 끝날지,

창조적 파괴가 될지,

패러다임 시프트가 일어날지는 아직 지켜봐야한다.

그렇다고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자니 시대에 뒤떨어질 것이다.

요사이 신문지상에 원체 '핀테크'라는 단어가 많이 나와서,

개념을 모른다면 읽기가 지루할 지경이다.

핀테크를 매번 검색해도 조각조각 있는 기사들뿐.

전체 그림을 조망해 줄 단행본이 없었다.

슬슬 나올 때 되었다고 생각했던 찰라,

드디어 핀테크라는 타이틀을 가진 책이 나왔다.

<왜 지금 핀테크인가?>

핀테크가 뭐지 궁금증을 안고 거북목과 함께 온종일 인터넷 검색을 할 바에는,

이 책 한 권으로 편하게 정리하는 것이 편하다.

특히,

최신 자료가 잘 정리되어 있어 뉴스 못지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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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림표

워낙 특집 기사처럼 정리되어있어 금방금방 읽는다.

대충 책의 차림표를 보자면,

1장 핀테크 시대가 열린다

내가 블로그에 하도 핀테크에 대한 글을 쓰다보니,

얼마전 친구가 물었다.

넌 맨날 핀테크 얘기 많이 하는데 그게 정확히 뭐야?

‘이래서 문돌이는 안돼!’라고 자신있게 설명하려 했는데,

‘어버버…어버버…’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머릿속에는 이미지가 있는 말로 전환시키기 참 어렵다.

뭐랄까,

‘너 소개팅 할래?’

‘누구 닮았는데?’

루디빈 사니에 -지금은 늙었지만 프랑소와 오종 감독의 히로인으로 활동하던 2000년대 초에는…- 를 닮았는데 이 녀석은 루디빈 사니에게 누군지 모르고.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하지.

이런 답답한 기분이랄까?

대충 내 머릿속에 있는 핀테크라는 것은 이렇다.

 

다행히 이 책은 글로 충실히 잘 설명해놨다.

‘거, 핀테크 입문하기 딱 좋은 날씨다.’

.

2장은 현재 핀테크 관련 업계별 최신,

내가 뉴스를 검색하나 싶을 정도로 아주 최신 소식이 잘 정리되어있다.

2015년 상반기 얘기들까지 나오니 말이다.

핀테크가 기존 금융서비스 대체이니 만큼 금융 서비스별로 나누어 전장을 보여준다.

송금,

결제,크라우드 펀딩,

자산관리와 소셜 투자,

빅데이터,

보험, 사물인터넷.

그리고,

나는 별로 동의 안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핀테크 끝판왕으로 여겨지는 인터넷 전문은행 대왕님에 대해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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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핀테크 돌아가는 소식 아는 나에게는 오히려 4장이 가장 유용했다.

4장은 각 종 법, 규제와 보안에 대한 얘기가 주다.

앞서 말했듯 금융기관만 제공하던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려 한다.

근데 금융은 규제 사업이라 조금만 벗어나도 바로 오프사이트 삐! 된다.

듣기만 해도 고개 무거워지는 졸려운 주제지만,

이렇게 정리해주지 않으면 죽어도 안 봤을 것이다.

현재 산적한 문제들,

핀테크가 커지면서 충돌하는 규제의 접경지대 이야기를 잘 정리해 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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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오세요

깔끔하게 정리된 입문용 책이다.

책 입구에 ‘두려워 마세요’ 표지판과 함께 ‘어서 오세요’ 빨간 카펫이 깔린 느낌이 들 정도로 말이다.

핀테크가 뭔지 검색어 가지고 폭풍이 몰아치는 인터넷 바다를 헤맬 바에는 이 책 한 권 사서 정리하길 바란다.

우선 가볍게 나오는 기사들은 다 소화할 수 있는 튼튼한 위장을 선사할 것이고,

그 후 지면상 나오는 핀테크라는 단어가 들어간 기사는 어느 정도 볼 수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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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이란 무엇인가 - 하버드대 최고의 심리학 명강의
브라이언 리틀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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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이란 무엇인가? '내 성격' 말고 그냥 '성격'
하버드대 최고의 심리학 명강의라는 타이틀이 떡하니 붙어 있는 책 &lt성격이란 무엇인가?&gt!
오해의 소지가 있는 제목이다.
'내 성격'이란 무엇인가가 아니다.
'성격'이란 무엇인가다.
이 책의 관심사는 '당신 성격'이 아닌 '성격' 그 자체다.
B형 남자, A형 여자 같은 혈액형 별 성격을 얘기하는 게 아니오,
ENTP, ISTJ, INFO 같은 MBTI 성격 유형 같은 것을 다루는건 아니다.
보통 성격 관련 책을 보면,
진단표가 나오고 A 요소, B 요소, C 요소를 이용하여 내 성격을 뽑아내고 그것을 얘기한다.
이렇게 말이다.
'당신의 A+B+C로 보아 당신의 성격은 이렇소'
그리고 결과물인 유형별 성격에 대해 주야장창 설명한다.
우와 나 같은 사람도 있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보는 책 말이다.
이 책은 다르다.
최종 결과물인 내 성격보다는,
A, B, C 요소들에 대해 집중적으로 파고든다.
물론 그 요소들은 훨씬 복잡하고 상호연관적이다.
성격을 바라보게 되는 관점이 훨씬 입체적이고 복잡해진다.
그러다 보니 자칫 지루해할 사람도 있을 터.
영화로 비유하면,
성격유형 책이 할리우드 시원시원한 액션영화라면,
쾅쾅 터지고 부서지고 선악 구별 명확하고 말이다.
이 책은 뜨뜻미지근한 것 같으면서 주인공들이 흑도 아니고 백도 아닌 회색 지대에 있는 데다 이야기마저 종잡기 힘든 유럽 영화 같다.
단점이라면,
아 그래서 난 어떤 사람인데 한마디로 정리해줘 이런 맛은 없다.
장점이라면,
성격이라는 블랙박스 내부 설계도와 이루어진 부품을 최대한 많이 알 수 있게 된다.
수십 가지 색의 성격 팔레트를 주는 게 아니라,
마치 성격의 삼원색을 주는 격이다.
세 가지 색을 어떻게 조합하느냐 따라 무궁무진한 성격의 색을 만들어 수 있다.
무궁무진한 성격의 색을 가지고 타인을 그려볼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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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를 샤샤샥 훑어보자
책은 총 열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처음 읽을 때 각 장 내용 쫓아가기 급급했는데,
한 번 읽고 다시 가볍게 훑어보니 각 장은 긴밀히 연결되어 있고 하나의 큰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다.
내가 과연 이 모든 것을 가볍게 압축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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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1 첫인상을 의심하라.
책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핵심 개념은 바로 &lt개인 구성개념&gt이다.
이것은 테트리스의 작대기 마냥 이 책의 어느 페이지든 가지고 있어야 하는 개념이다.
재수 없게 아는 척하면서 설명하자면,
'부분적인 사례를 관찰한 뒤 그것을 개인적으로 재구성해 만든 개념, 겉모습이나 행동을 보고 그 사람에 대해 주관적으로 해석해 구성한 정보'
내 개인적이니 견해는,
돼지 눈에는 돼지가 보이고 부처님 눈에는 부처님이 보이는 것으로 이해하니 편하더이다.
부처님의 개인 구성개념을 가지고 있다면,
사람들의 행동이 부처님이 보이는 것 말이다.
.
이 개인 구성개념은 성격을 설명하는 중요한 요소다.
프로이트가 정신분석 이론의 중요 요소로 성욕, 무의식 욕구, 금기로 설명하는 것처럼,
스키너 같은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은 성격을 상황에 따라 우연히 발생하는 보상과 처벌에서 나오는 행동으로 설명하는 것처럼,
이 책은 개인 구성개념으로 시작한다.
이 개인 구성개념은 삶에 등장하는 사람과 사물과 사건에 대해 가설을 세우고 시험, 확인, 수정되고,
다시 우리는 이를 통해 세상을 들여다본다.
결국, 어떻게 들여다보느냐는 다시 행동으로 나타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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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를 또다시 샤샤샥 훑어보자
장 2 서른 살이 되면 성격이 석고처럼 굳어지는가.
여기서는 개인 구성개념으로 이루어진 성격 특성을 설명한다.
성격의 특성을 크게 성실성, 친화성, 정서적 안정성, 경험 개방성, 외향성 다섯 가지 요소로 나누고 설명한다.
읽다 보니,
나 자신이 상당히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경험 개방성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내 딸에게 가장 발달시켜주고 싶은 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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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3 왜 나는 가정과 직장에서 전혀 다른 사람이 되는가.
이랬다저랬다 나 이중인격 미친놈인가요?
아니다.
성격의 생물학적인 근원, 사회로부터 학습, 그리고 나의 목적에 따른 변화의 충돌로 인한 자연스러운 현상.
단,
그 격차가 지속하면 물론 부작용이 온다.
그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회복 지대'를 가져야 한다.
영화 '셸 위 댄스'는 그 회복지대를 잘 보여준다.
일에 짓눌린 지루한 아저씨는 '춤'이라는 회복지대를 찾아서 분열된 나를 잠시 일체 시키는 기회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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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4 양파와 아보카도
내 고유의 성격이 있지만, 타인을 의식하는 정도에 따라 달리 나타난다.
이를 자기 점검도라고 한다.
자기 점검 정도가 높은 사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내 행동 이내 속한 환경의 규범과 기대를 반영하는지에 관심을 둔다.
자기 점검 정도가 낮은 사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에 관심이 적고,
내가 속한 환경의 기대보다 나만의 특성과 가치에 따라 행동한다.
한마디로 내 길.
내가 소심할지라도 자기 점검 정도가 높은 사람은 직업상 무대에서 미국 춤도 출 수 있다.
반면 자기 점검 정도가 낮으면 비즈니스라 할지 다로 미국 춤은 도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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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5 삶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는 믿음에 대하여
장 6 강인하고 건강하게
성격에 따른 건강 이야기를 한다.
드라마에서 불같은 성격을 가진 회장님들이 맨날 뒷목 잡고 쓰러지는 이유 말이다.
막장 드라마이긴 하지만 성격에 따른 건강은 잘 재현해 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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챕터 7 나 홀로 영웅의 허상, 창조적인 사람은 행복할까.
창조적인 사람의 공통요소를 주의 깊게 본다.
많은 사람이 무척 흥미로워할 주제일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창조적인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창조경제를 만드는 사람 말고 말이다.
특히,
연구결과에 어린 시절과 관계된 이야기가 많다 보니,
내 아이 가정교육과 연결하여 생각하게 된다.
'얘야 나중에 스티브 잡스 같은 사람이 돼서 나의 꿈의 차를 사주렴.
아빠는 이번 생에는 자력으로 사는 것은 포기했단다.'
.
장 8 나는 어디에 있는가?
성격과 장소의 궁합 얘기,
선택의 여지가 없는 한국에 있다 보니 별반 관심이 안 가는 장이다.
내가 살고 싶은 곳들은 내 꿈의 차 처람 이번 생에는 자력으로 불가능하니까.
.
챕터 9 목표가 행복과 불행에 관여하는 방식.
성격은 DNA 혹은 사회적인 교육일 수 있지만,
개인 목표에 따른 결과일 수도 있다.
개인 목표의 핵심적인 특징 하나는 삶의 의미를 제공한다.
재미있는 연구 결과가 하나 나온다.
개인 목표를 세우는 것만으로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느냐?
노!
의미 있는 목표를 추구해도 삶의 질은 아주 미미하게 향상될 뿐이다.
연구 결과를 보면, 목표의 의미보다 성취 가능성이 삶의 질을 향상할 공산이 크다.
한 목표 안에 성취 가능성과 의미가 공존할 때 삶의 질이 높아진다는 것.
인생에 실현 가능한 목표는 삶의 질을 향상하느니.
.
장 10 서로 다른 두 자아와 잘사는 법.
그중 목표를 지속해서 추구하기 위한 필수 전략.
목표를 재해석하고, 목표를 설정한 자기 자신을 변화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맥락 관찰을 통해 상황을 정확히 살펴야 추구할 힘도 생기고 목표의 생명력이 길어진다.
작심삼일을 늘리기 위한 심리적인 꼼수들을 알려준다.
.
무척 심드렁하게 살펴보았지만,
책은 절대 그렇지 않다.
읽고 나면 왠지 심리학이 대가라도 되는 양 자신감이 붙는다.
카우치 소파 하나 사다 놓고 상담하고 싶어지는걸.
'아직도 한밤에 깨어나지, 그렇지? 어둠 속에 일어나 양들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이런 대사와 hannibal@lecter.com 이메일 주소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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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알아서 뭐하게?
이 책을 읽으며 얻은 것.
우선, 인간의 본성과 다양한 삶의 질을 바라보는 새롭고 다양한 관점을 얻을지어다.
어차피 난 나에 대해서는 맞든 틀리든 한 없이 '확고'에 가까운 '상'이 있었던 터라,
따로 나의 성격이 궁금치는 않았다.
하지만,
타인을 바라보는 모형을 좀 더 정교하게 다듬을 수 있었다.
마치,
'그 자식 성격은 개야!' 라는 생각이 책을 읽은 후,
'그 자식 성격은 비굴이야'라는 좀 더 섬세한 상을 그릴 수 있다.
.
둘째, 아이 가정 교육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교육도 어떤 목표에 대한 하나의 수단일 것 아닌가.
최종 목표를 아이의 행복일 텐데.
보통 부모가 '공부'를 강요하는 것은 그것만큼 좋은 '물고기 잡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공부로 좋은 직장을 얻어 행복을 성취하길 바라잖아.
하지만 말이야.
얘가 물고기 잡는 게 행복하지 않은 아이라면,
그냥 물을 보는 게 행복한 아이라면.
물고기 없이 풀만 뜯어 먹어도 살 수 있는 아이라면 말이다.
예전부터 차라리 행복을 유지하는데 비용이 적은 아이였으면 했었다.
막연한 바램이었건만,
이 책을 보며 조금이나 가정교육의 철학에 대한 힌트를 얻었다.
행복을 유지하는데 비용이 적게 드는 아이.
아보카도처럼 안에 단단한 씨앗이 자리 잡는 아이.
외적 평가보다 내적 보상체제가 확실한 아이.
성격에 경험 개방성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아이.
본인이 좋아하는 것에 털이 곤두설 수 있는 아이.
강요는 안 하겠지만,
최소한 애 고유 특성을 놓치지 않고 알아줄 수 있을 것 같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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