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들의 실패
로저 로웬스타인 지음, 이승욱 옮김 / 동방미디어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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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CM(Long Term Capital Management)!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설렌다. 똘똘뭉친 세계적인 경제 이론가들이 만나서, 신금융기법을 어떻게 구사해서 어떻게 성공했는지, 흔히 말하듯이 소설보다도 더 드라마틱하게 나와있다. 헤지펀드니 그런 말도 궁금했고, 겸사겸사 읽었는데 참 재미있었다.

사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이들이 어떻게 망해갔나 하는 것이다. 이들이 하루하루 망해가는 모습과 그리고 그 실패의 뒤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세상이 이렇게 몇몇의 놀음(?)에 저렇게 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하지만, 거대한 금융 조직도 하지 못했던 것들을 몇 명이 했다는 것을 보면 - 그곳에는 언제나 <구멍>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고, 이렇게 작은 것으로 큰 것을 물리 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사실 기분은 좋다. 비록 내가 저렇게 똑똑하지는 못할 지언정, 누군가 나 아닌 다른 미치광이 천재들이 - 세상의 다른 이면에서 저런 <짓>으로 우리는 기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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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단편전집) 카프카 전집 1
프란츠 카프카 지음, 이주동 옮김 / 솔출판사 / 199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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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초 새해를 맞이하여 무슨 책을 읽은 것인가를 생각했다. 카프카의 <변신>을 선택했다. 솔직히 무엇인가 대단한 것을 기대했었다. 변신은 굉장히 실망을 주는 작품이다. 주인공 <그레그르>가 어느 날 읽어나 보니 갑자기 벌레 변신되어 있다는 것에 어떤 필연성이나 우연성도 없다. 그리고, 벌레로의 변신은 변신이란 멋있는 말을 쓰기에는 좀 문제가 있는 듯하다.

다음 벌레로서의 그의 삶이다. 반이상을 그냥 허부적 허부적 그의 방을 기어 다니는 생활에 할애하고 있다. 그 생활은 그 자체로도 별 흥미가 없고, 나중에 그 어떤 것과도 이어지지가 않는다. 그가 죽게 되는 그 사건을 보자. 가족은 피폐해진 삶을 이겨나가기 위해서 각자 직장을 갖기 시작하고, 하숙을 친다. 그러던중 우연히 자신의 벌레인 모습을 드레내보이고, 소동이 일어나고 죽는다. 다음 가족들은 하루 휴가를 내어서 교외로 놀러간다. 그레고르의 죽음으로 인해 그들의 삶은 어둠에서 갑자기 빛을 맞는다.

도대체 이 단편이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먼저, 이 소설이 너무나 어려워서 도저히 내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종종 일어나는 일이기에 이렇게 생각하려고 한다. 다음에는 당시 문예사조의 흐름에 비취어 볼 때 이것은 혁명적인 소설인 것이다. 그래서, 후대에서도 계속 이야기 되는 것이다. 이런 이유가 아니라면 이 소설은 짐작하건데, 하나, 20세기에 집필된 것으로 비취어 볼 때 이 소설은 현대산업사회에서 인간은 그저 벌레같은 존재이고, 밥벌이 못하는 인간은 필요없는 존재이다, 없어져야 한다라고 말하는 지도 모른다.

둘째, 어쩌면 페미니즘 소설일지도 모른다. 남자인 그레고르가 죽자 모든 집안의 관심이나 금전적인 주체가 딸인 <그레페>로 넘어간다. 그것은 페미니즘적이 아닐지 생각한다. 하지만, 만약 이것을 페미니즘으로 본다면 이제까지의 여자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소설을 모두 페미니즘으로 보아야 한다는 소리인데, 내가 봐도 얼토당토한 소리이다. 이렇게 쓸데없는 소설이지만, 길지 않는 이야기를 읽는데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카프카의 저력일까? 지금은 장편 [심판]을 읽을까 하다가 산뜻한 편집의 펭귄문고판(10 X 15cm의 작은 크기이지만, 가격은 무려 2,500원이다)

책을 읽고, <문예사조의 이해(최유찬著)>에서 카프카를 찾아보았다. 두 권의 책에는 카프카에 대한 어떤 평도 없었기에. 내가 앞에서 말한 두 가지가 맞아 떨어지는 듯 하다. 먼저, 이 책은 카프카를 '현대문명의 일상성 속에서 소외된 인간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형사화하고 있다'라고 기술하고 있으며, [변신]에서의 <그레고르>는 체코어로 '나는 고독하다'라는 뜻이라 한다.

또, 카프카처럼 '현대의 인간소외, 자기부재의 상황을 이 정도로 가혹하게 즉물적으로 묘사하여 독자 앞에 내민 작자는 달리 없다'니 두번째도 그런대로 맞는 듯 하다. 이 책을 통해 내가 못보고 있는 부분을 알게 되었다. 그 표현을 그래도 옮기자면 : 독충이 되어 파멸당하는 자가 실은 자기의 본심으로 되돌아간 자라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죄를 의식하는 자가 최고의 구원에 한층 가까이 접근해 있고, 이른바 죄없는 사람들은 언제까지나 현세의 여러 권력에 예속되어 있는 사람들이라는 사람이다 / 누이동생이 맛보는 해방감에는 이 현대의 생의 황야에 대한 가장 가공할 만할 저주가 내포되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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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용 민음 오늘의 시인 총서 2
김춘수 지음 / 민음사 / 199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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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지 개화기의 한국문학의 유치하게 느꼈다. 당시로서는 혁신적이거나 대단한 것인지는 몰라도 지금보면 그저 그렇거나, 시대에 많이 뒤떨어졌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은 내가 전문적인 문학 연구가가 아니기에 그렇지만. 하지만, 그것은 그저 나의 적은 경험에 의한 쓸데없는 편견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김춘수 시선인 <처용>을 접하게 되었다. 이 시집에는 어떤 것에서도 느낄 수 없는 그러한 감정들이 배어있다. 자연과 기본적인 인간 삶을 노래했기에 시대와 공간을 간단하게 초월해버리고, 진솔하게 만날 수 있다. 때론 한폭의 수채화처럼, 때론 감상적인 연애시처럼 시를 읊다가도 어느 순간 변하여 나에게 이해할 수 없는 삶의 모습을 들려주는 김춘수는 어떤 사람일까 궁금하다. 대학교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이런 시선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 것도 좀 놀랍기도 하다.

시를 읽으면서 좋은 것들에는 제목에 동그라미를 치는데, 이 시집에는 그런 시들이 굉장히 많고, <소묘집>, <타령조>등의 파트는 전부가 좋다. 앞으로 민음사의 이 한국시집시리즈를 많이 읽을 것 같다. 갑자기, 탈사회적인란 말이 생각이난다. 이 시들도 그럴지도 모르지만, 세상의 어떤 변두리의 넘실대는 감정과 느낌이 들어있고, 화려한 도심에서 소외받은 현대인들이 몰려있는 곳이니 어쩜 상당한 사회성을 지니고 있다고 괴변적인 말을 하고 싶다. 사실은 눈큰아이가 좋아한 그녀의 말에 의하면 <탈사회적인> 작가가 갑자기 생각이 났다. 그래서, 사회성에 관해서 써보았다.

그리고, 호석이와 이야기를 하다가 호석이가 장정일의 <내게 거짓말을 해봐>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한번 접하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좀 나중에. 왜냐면, 장정일을 왜 읽는지 모르기 때문에 일단은 꺼리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다른 읽을 책들이 많이 남아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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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방의 영혼
마루야마 겐지 / 예문 / 199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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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야마 겐지의 소설은 <보통>의 소설은 아니다. 일상적인 이야기를 다루기도 하지만, 인간속의 욕망을 표현하기도 한다. 그 표현은 가끔은 사실적이고, 더 가끔은 환상적이다 - 그렇다고 포스트 모던하지는 않다. 그저 공상에 가깝다. <좁은 방의 영혼>에서 날아 다니는 자아나, <만월의 시>에서 그림을 읽는 나, <흔들다리를 건너다>에서 흔들다리 건너편에 있는 자아로 보이는 자아 등등. 초현실적이지 않고, 공상적이기에 더 가까이 다가온다.

표제작 <좁은 방의 영혼>은 상상의 소설이다. 갇혀있는 자아가 환상의 세계에서 자유롭게 나니는, 정말로 기분좋은 내 영혼이 자유로워지는 소설이다. 중편 <여름의 흐름>은 법에 따라 죄수를 사형시키는 간수의 이야기이다. 괴로워하는 간수 그래서 사표를 쓰고, 일상이 되어버린 나이 든 간수는 그냥 살아가는데... 인간이 인간을 사형시킨다는 것이 옳은 것인지 아닌지, 그리고 일상이 되어 버린 사람은... 단편 <바다> <흔들다리를 건너다>에서 작가는 일상에 젖어버린 사람의 모습과 일상에 벗어버린 사람의 모습을 보여준다. <바다>에서의 말은 <동상이몽>의 감독의 말과 이어진다. 잘 죽는 것. 어쩜 그것이 인간의 삶의 목적일 수 있다. 경험상 힘든 시간이라도 결실이 좋으면, 그것이 보람되지지만 그렇지 아닐 경우 힘든 시간으로만 남게 된다.

인간의 삶이라는 것이 이상하게도 열심히 산다고 좋은 결과를 맺는 것도 아니니까. 환경과 운, 자신의 노력 등등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은가. 하지만, 잘 죽는다는 것에 결론은 죽을 때 이승에 대한 욕망에 최소한으로 남아있는 상태가 아닐까? 그만큼 삶을 열심히 살았다면 삶에 대한 미련이 없는 것이 아닐지...

<흔들다리를 건너다>에서는 여자 문제로 삶을 떠나려는 자가, 그 속으로 갔다가 돌아오는 자기 자신의 모습으로 추측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결국 삶이란 열심히 헤쳐가야하는 것이 아닌지. 개인적으로 여관주인이 말하는 남자들의 속성에 대해서는 거의 맞는 말인 것 같다.

이 소설이 일정시기의 이야기가 아닌 선택된 소설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굉장히 좋은 소설들로 이루어져 있다. 대부분의 소설집은 한 편 정도는 밀도가 낮게 마련인데 이것은 그렇지 않다. 처음부터 끝까지가 클라이맥스이다. <달에 울다>도 읽고 싶은데, 곧 읽을 듯.

마지막으로, 이미 많은 일본어 소설을 번역해 유명한 김춘미씨의 번역도 매끄러웠다고 쓰고 싶지만, 사실 책을 읽으면서 번역자의 문체같은 것을 감지할 정도로 내 소설을 읽는 눈이 탁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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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나를 기억하라
틱낫한 지음, 서보경 옮김 / 지혜의나무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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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 난 몇 글자의 서평을 읽고 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 책에는 머 대단한 것도 특별한 것도 없습니다. 지식이란 더더군다나 없고, 당신이 알고 있는 아주 평범한 진실들이 들어 있습니다.

틱낫한은 그러한 아주 사소로운 진실들을 당신이 실천하게끔 합니다. 그 사소한 것들이란 화났을 때나 어쩔 때나 숨을 깊이 마시고 내쉬면서... 등등 입니다.

하지만, 그것들을 조금이나마 따라하신다면 변하고 있는 당신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세상을 조금 더 여유롭게 살아갈 수 있다는 말 입니다.

평소에 다리를 떨만큼 주위가 산만했던 저는 - 사실 그런지도 몰랐습니다만 - 이 책을 읽게 되고, 큰 숨 한 번 들이마시는 습관으로 - 차분한 마음을 먹으려고 하다보니, 이제는 다리를 떨지는 않는답니다. 30년 동안 나도 모르게 떨던 - 어찌보면 아주 사소로운 습관을 고칠 수 있게 되었답니다.

굳이 이 책이 아니라도 좋습니다. 요즘 틱낫한님의 책들이 많이 번역되고 있으니까여.한번쯤 자신의 마음을 위해서 읽어보신다면 - 특히 이런저런 번잡한 일들로 자신이 괴롭다면 옆에서 읽어드리고 싶은 책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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