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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방의 영혼
마루야마 겐지 / 예문 / 1996년 7월
평점 :
품절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은 <보통>의 소설은 아니다. 일상적인 이야기를 다루기도 하지만, 인간속의 욕망을 표현하기도 한다. 그 표현은 가끔은 사실적이고, 더 가끔은 환상적이다 - 그렇다고 포스트 모던하지는 않다. 그저 공상에 가깝다. <좁은 방의 영혼>에서 날아 다니는 자아나, <만월의 시>에서 그림을 읽는 나, <흔들다리를 건너다>에서 흔들다리 건너편에 있는 자아로 보이는 자아 등등. 초현실적이지 않고, 공상적이기에 더 가까이 다가온다.
표제작 <좁은 방의 영혼>은 상상의 소설이다. 갇혀있는 자아가 환상의 세계에서 자유롭게 나니는, 정말로 기분좋은 내 영혼이 자유로워지는 소설이다. 중편 <여름의 흐름>은 법에 따라 죄수를 사형시키는 간수의 이야기이다. 괴로워하는 간수 그래서 사표를 쓰고, 일상이 되어버린 나이 든 간수는 그냥 살아가는데... 인간이 인간을 사형시킨다는 것이 옳은 것인지 아닌지, 그리고 일상이 되어 버린 사람은... 단편 <바다> <흔들다리를 건너다>에서 작가는 일상에 젖어버린 사람의 모습과 일상에 벗어버린 사람의 모습을 보여준다. <바다>에서의 말은 <동상이몽>의 감독의 말과 이어진다. 잘 죽는 것. 어쩜 그것이 인간의 삶의 목적일 수 있다. 경험상 힘든 시간이라도 결실이 좋으면, 그것이 보람되지지만 그렇지 아닐 경우 힘든 시간으로만 남게 된다.
인간의 삶이라는 것이 이상하게도 열심히 산다고 좋은 결과를 맺는 것도 아니니까. 환경과 운, 자신의 노력 등등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은가. 하지만, 잘 죽는다는 것에 결론은 죽을 때 이승에 대한 욕망에 최소한으로 남아있는 상태가 아닐까? 그만큼 삶을 열심히 살았다면 삶에 대한 미련이 없는 것이 아닐지...
<흔들다리를 건너다>에서는 여자 문제로 삶을 떠나려는 자가, 그 속으로 갔다가 돌아오는 자기 자신의 모습으로 추측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결국 삶이란 열심히 헤쳐가야하는 것이 아닌지. 개인적으로 여관주인이 말하는 남자들의 속성에 대해서는 거의 맞는 말인 것 같다.
이 소설이 일정시기의 이야기가 아닌 선택된 소설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굉장히 좋은 소설들로 이루어져 있다. 대부분의 소설집은 한 편 정도는 밀도가 낮게 마련인데 이것은 그렇지 않다. 처음부터 끝까지가 클라이맥스이다. <달에 울다>도 읽고 싶은데, 곧 읽을 듯.
마지막으로, 이미 많은 일본어 소설을 번역해 유명한 김춘미씨의 번역도 매끄러웠다고 쓰고 싶지만, 사실 책을 읽으면서 번역자의 문체같은 것을 감지할 정도로 내 소설을 읽는 눈이 탁월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