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줄만 내 마음에 새긴다고 해도 - 나민애의 인생 시 필사 노트
나민애 지음 / 포레스트북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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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나에게 ‘시’는 시험 문제의 지문일 뿐이었다.

교과서에 실린 유명한 시들은 분석하고 이해해야 할 대상으로만 다가왔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초등학생 시절 백일장이 열릴 때마다 나는 짧지만 어려운 ‘시’보다는 길지만 내 마음과 생각을 풀어 쓸 수 있는 산문을 택하는 것이 훨씬 쉽고 편하게 느껴졌다.



그런 나에게, 나민애 교수님의 『단 한 줄만 내 마음에 새긴다고 해도』는 ‘시’가 분석의 대상이 아니라, 삶을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해 주는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 책이다.

문학 작품, 특히 ‘시’는 읽는 이의 상황이나 관점에 따라 같은 작품이라도 전혀 다르게 읽힐 수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교수님이 선별한 시를 먼저 읽고 나의 생각을 정리한 뒤, 덧붙인 해설을 읽으면 같은 시라도 전혀 다른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또한 내가 가졌던 시선이 다른 방식으로도 읽힐 수 있다는 사실이 신선하게 다가와, 시를 읽는 재미를 더욱 깊게 해 준다.

나민애 교수님은 총 77편의 시를 다섯 가지 주제로 나누어 소개한다.

독자들은 가장 먼저 마음에 와닿는, 혹은 끌리는 주제를 골라 읽기 시작해도 좋다.



1. 처음 맛보는 시

2. 작은 위로가 필요한 날

3. 사랑을 곁에 두었다

4. 가을이나 바람처럼 쓸쓸한 것들

5. 나에게 말을 건네는 시

나민애 교수님과 내가 서로 다른 관점으로 읽은 시는 이상국 시인의 「국수가 먹고 싶다」였다.



나는 이 시를 말 그대로 ‘국수 예찬론’쯤으로 이해했는데, 교수님의 해설을 읽고 나서야 이 시에 더 깊은 고민과 걱정, 따뜻한 위로가 녹아 있음을 알게 되었다. 교수님의 관점이 담긴 해설을 읽은 후 다시 시를 읽어보니, 힘들고 아픈 이들과 함께하고자 하는 시인의 진정성 있는 마음과 ‘국수’에 담긴 위로의 의미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부처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는 식으로, 마음을 다치고 보니 지나간 사람, 이긴 사람보다 조금 부족하고 마음을 다친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시인처럼 순박하고 속이 훤히 보여서 남을 속이지도, 이기지도 못하는 사람들만 눈에 들어왔다. 시인은 그런 사람들 곁에서 뜨겁게 울고 싶다는 말을 ‘국수가 먹고 싶다’는 말로 대신했다.” (p.99)

p,99

반대로, 나민애 교수님과 내가 같은 관점으로 읽은 시는 김용택 시인의 「그랬다지요」였다.

이 책에서 처음 접한 시였지만, 금세 내가 가장 좋아하게 된 시가 되었다.

그랬다지요 – 김용택

그 여자네 집, 창비, 1998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사는 게 이게 아닌데

이러는 동안

어느새 봄이 와서 꽃은 피어나고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그러는 동안 봄이 가며

꽃이 집니다

그러면서,

그러면서 사람들은 살았다지요

그랬다지요

나민애 교수님은 이 시를 이렇게 해석한다.

“이 시는 ‘이게 아닌데’의 삶을 두둔한다. 완벽하지 못한 삶, 꿈이 이루어지지 않은 삶도 소중히 여긴다. 온 우주가 진심으로 나만 미워하는 것 같을 때, 이 시를 읽자.

내 인생은 어쩜 이렇게도 가여울까 싶을 때, 남들만 행복한 인스타그램을 보는 대신 피는 꽃과 지는 꽃을 바라보자.

‘이게 아닌데’를 뱉었다고 해서 내 인생 자체가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무던히 사는 삶도 삶이다. 아주 귀한 삶이다.”

p.117


요즘 삶의 방향성에 대해 고민하던 내게, 이 시와 해설은 큰 위로가 되었다.

해설을 읽고 난 후 다시 시를 읊조리며 종이 위에 연필로 꾹꾹 눌러 써보았다. 아니, 마음에 깊이 새겨보았다.

나민애 교수님이 큐레이션하고, 해설까지 곁들여 소개한 77편의 시를 음미하다 보면 어느새 내 삶도 더 충만해지고, 시와 한층 가까워진 느낌이 든다.

77편의 시뿐 아니라, 교수님의 문장 하나하나가 아름답고 주옥같아 자주 꺼내어 다시 읽고 싶은 책이다.

“어쩌다 시작되었지만 어쩌다 소중해진 인생을 위해서, ‘나’라는 의미를 확인하기 위해 시를 읽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같은 시 속에서 서로 다른 의미를 줍는다고 해도 우리는 함께 기뻐할 수 있을 겁니다.”

― 서문 「다만 의미를 찾고 싶을 뿐」 중에서

p.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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