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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언덕 ㅣ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11
에밀리 브론테 지음, 황유원 옮김 / 휴머니스트 / 2022년 10월
평점 :
폭풍의 언덕- 에밀리 브론테
30세의 요절 작가가 이렇게 파격적이고 슬픈 사랑의 이야기를 썼다니. 그것도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말이다. 그렇다. 이 소설은 19세기 초 영국의 시골 마을의 지주계급에서 일어난 파멸적 사랑의 이야기이다. 거세게 몰아친 폭우가 창문 사이로 흘러내리고 눈을 부릅뜨고 죽은 한 남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피할 수 없는 운명적 만남은 한 사람의 삶을 송두리째 뽑아버리고, 심지어 주변의 생물들마저도 살 수 없는 황폐한 곳으로 만들어 버린다. 히스(들에 핀 야생화) 클리프(벼랑), 히스클리프는 그런 인간이었다. 여기서 내가 그를 사람이라고 칭하지 않은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이다. 어머니를 잃고서 홀아비 힌들러와 살아가는 어린 캐서린의 나머지 한쪽의 부목이 되어준 히스클리프. 그는 복수의 화신이자, 파괴주의자였다. 아니, 누군가는 틀림없이 싸이코패스라고 여겼을 것이다. 물론 캐서린도 그렇게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극단적 조울증에 시달리는 캐서린은 정신 분열을 일으켰다. 누구보다 더 히스클리프와 관계된 일에는 이성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결혼한 여자가 할 행동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행동을 하는 그녀는 또 다른 자신의 분신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다. 운명의 사슬은 그렇게 자기가 안아보지 못한 어린 핏덩이에게 감기고야 말았다. 물론 그 끊을 수 없는 동아줄을 잡은 이는 다름 아닌 히스클리프였지만 말이다.
제 아들마저 수단의 대상으로 만든 히스클리프. 오직 복수의 일념으로 사랑하지도 않는 여자의 순정을 무참히 짓밟고 태어난 아들 린턴을 이용해 캐서린의 딸을 결혼시킨다. 그리고 린턴가의 모든 재산을 차지해버렸으나, 결국 아무것도 그의 곁에 남기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다.
등장인물들의 생동감 있는 사건들 하나하나가 당시에 공감대를 불러일으키기에는 무겁게 느껴졌을 것이다. 오늘날에 빈번히 일어나는 가정 문제를 200여 년 전에 영국의 시골 마을에서 보게 되다니, 작가의 상상력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고 말할 수 있다. 만약에 드라마나 소설로 썼다면 연말 시상식 대상감이었을 것이다. 막장드라마의 짜릿한 쾌감과 반전은 언제나 사람들의 마음의 혀를 자극하고 귀를 즐겁게 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소설이 영미문학 3대 비극으로 불리는 이유를 이해하였다. 역시 막장은 막장이기에 말이다. 그렇다고 이 위대한 소설을 비하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렇지만, 히스클리프. 그 인간은 용서하기가 쉽지 않다. 어떻게 자기 친아들을 길가에 떨어진 낙엽보다 더 초라하게 만드냐는 말이다. 그 아이가 죽을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갑자기 나도 짜증이 난다. 히스클리프의 내면의 악마가 혹시 나에게도 꿈틀거리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