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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땅의 야수들 - 2024 톨스토이 문학상 수상작
김주혜 지음, 박소현 옮김 / 다산책방 / 2022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작은 땅의 야수들
이 이야기는 무엇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것인가? 암울했던 우리의 과거에 전쟁이란 화마가 휩쓸고 간 들판에 피어난 잡초들의 인생을 누가 알아준단 말인가? 이렇게 말하면 분명히 나는 잡초보다 못한 인간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누구나 자기가 원하는 인생을 살기에 버거운 삶의 무게를 지고 있기에 말이다.
어둠이 깔린 한강의 도로를 운전을 하다가 보면 화려한 서울의 향연을 만끽하곤 한다. 수많은 빌딩과 아파트의 불빛들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부와 권력의 아치를 뽐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불과 100년 전에 아니 70여 년 전에 식민지와 전쟁에서 버티고 있는 가냘픈 촛불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으니 말이다.
가난한 소작농의 삶이나, 장안에서 내로라하는 부잣집 아들의 삶이나 다를 바가 없었던 세상. 꿈도 희망도 사랑도 ‘개나 줘버려!’라고 외칠 수밖에 없던 그 세상. 그저 보리죽 한그룻과 물 한 대접만 있으면 잠을 잘 수 있던 세상. 꽃다운 15세의 나이에 순결을 쓰레기 같은 놈들에게 짓밟혀야 했던 소녀들의 세상. 그런 더러운 세상이 불과 얼마 전까지 있었단 말이다.
지금은 달라졌을까?
일본식민지 시절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라 하지만, 나는 언제나 그렇듯 소설 속의 ‘나’라는 관점을 찾아보곤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먼 이야기가 아니었다. 저 광화문에서 아무 이유 없이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사람도, 핵발전소를 반대하는 피켓을 든 사람들도, 점심시간에 바쁘게 움직이는 수많은 인파도 모두 같은 소리를 내고 있을 것이다.
나는 책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 가운데 공산주의자 이명보를 생각해 보았다. 순수 이상주의란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속에 허상을 키워낸다. 현실 부정이 강하게 자리잡히면 누구나 종교나 정치적 이상주의에 빠져들기 마련인 것이다. 나는 그를 비평하고 싶지는 않다. 무엇이 그를 그가 가지고 있는 부를 포기하게 만든 것인지는 몰라도 적어도 그의 선택은 존중한다. 프롤레타리아가 어떻고 레닌의 공산주의가 어떻고 노동자의 평등이 어떻든 상관없다. 어떤 선택이든 간에 그것은 오로지 그의 몫이다.
작은 땅의 야수들
작가는 3자의 관점에서 일본 장교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을 작은 땅의 야수들이라고 말했다고 했다. 호랑이가 시베리아 반도에서 혹독한 겨울을 견디고 살아가는 것처럼 어쩌면 그 사람들의 삶이 투영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남정호, 월향, 옥희, 연화, 단이, 한철의 삶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