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꽃 향기
김하인 지음 / 팩토리나인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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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꽃 향기

 

바람이 분다. 처량한 나뭇가지를 흔들고 세차게 불어온다. 오랜만이다. 책을 읽고서 느낀 슬픔과 뜨거움은 나를 그렇게 깨웠다. 무딘 세월 속에 일상적 삶의 나태함과 고마움을 잊은 시점에서 실로 오랜만이었다.

 

아픈 사랑에 대한 기억은 시간이란 배를 타고 저 멀리 항해한다. 주인공 승우와 미주처럼 말이다. 순수했던 어린 시절, 저돌적이고 무모하기까지 한, 십 대 시절의 사랑은 그렇게 바람을 타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러나 나에게도 승우처럼 향기가 느껴진다. 손만 잡아도 짜릿했던 그 순간의 향기는 지금도 내 마음의 후각에 또렷하게 남아있다.

 

밤하늘에 펼쳐진 수많은 별들 가운데 누구나 저마다의 보금자리를 가지게 된다. 승우와 미주와 그리고 그들의 딸 주미처럼, 오리온자리가 겨울 하늘을 수놓고 있을 것이다. 그 별자리가 특별한 이유는 우리 각자의 보금자리이기 때문이겠지.

 

숨을 쉴 틈 없이 소설을 읽어 내려갔다. 밥도 거르고 싶을 정도로 빠져들었다. 내가 승우인것처럼 그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을 그리면서 미주와의 사랑을 키워나갔다. 동해의 백사장에 우뚝하게 서 있는 해송처럼, 늘 그 자리에서 몇 해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이겨내고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다. 승우의 사랑을 몸에 새긴 채 말이다.

 

아픈 사랑은 때로는 누군가에게는 상처로 남기도 한다. 저 멀리 부서지는 파도처럼 사라지면 좋으련만, 왜 아픈 사랑은 승우가 새겨넣은 나무의 글씨처럼 남아있을까? 세월이 가도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런 사랑을 해보았기에 어쩌면 나도 이만큼 성숙하게 된 것은 아닐는지.

 

시속 300킬로미터를 넘는 속도로 질주하는 사랑은 이제는 싫다. 마치 자전거를 타고 천천히 풍경을 감상하는 듯한 그런 사랑이 좋다. 화사한 봄꽃들도 바라보고, 산들바람에 일렁이는 호숫가의 물결들도 바라보고, 아이스크림을 들고 신나게 뛰어가는 아이도 바라보는 그런 사랑 말이다. 이제 그럴 때가 되었다. 나는 언제가 김하인 작가님에게 가 보고 싶다. 고성 앞바다에 자리를 잡으신 특별한 작가의 사랑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 국화꽃 향기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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