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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목요일마다 우리를 죽인다 - 증오 대신 사랑을, 절망 대신 희망을 선택한 한 사형수 이야기
앤서니 레이 힌턴 지음, 이은숙 옮김 / 혜윰터 / 2019년 11월
평점 :
절판
앤서니 레이 힌턴. 그는 꿈많은 20대의 청년이었다. 단지 그가 흑인이라는 이유로 가난한 앨리버마의 시골 청년이라는 이유로 겪은 경험은 상상조차 못 할 일이었다.
강도 살인범으로서 살인감방교도소에서 30년을 복역했던 그의 사연은 훗날 미국 전역을 뛰어넘어서 전 세계를 놀라게 하였다. 그가 억울한 피해자였기에 말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지? 세계적인 로스쿨과 법대들이 있는 미국이라는 사회에서 말이다. 민주주의 사법제도를 부정하지 않지만, 인종적 편견이 가득한 현실사회가 어떻게 선량한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아 갔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극단적인 편향성과 우월주의가 나은 인종적 편견은 사라지지 않았다. 내가 이 책을 읽고서 느낀 점은 그런 가운데서도 힌턴과 그를 도왔던 브라이언 스티븐슨 그리고 그토록 오랜 세월 그를 찾아주었던 그의 친구 레스터의 헌신적인 노력이 그를 지켜주었던 큰 힘이 아닐까 생각한다. 특히 그의 마음속에 늘 함께 해주었던 사랑하는 어머니 또한 버팀목이었을 것이라. 오랫동안 그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한 수많은 노력에 그들이 함께하였다.
그들은 목요일마다 우리를 죽인다. 그의 감방으로부터 8m 거리에서 사형수들의 집행이 이루어졌다. 전기의자에서 머리에 검은 복면을 씌우고 사형수들이 차례로 죽어갔다. 목요일마다 그렇게 죽어갔다.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것. 우리는 나에게 죄를 지은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가? 그것도 마음으로부터 말이다. 단언컨대, 쉬운 일이 아니다. 하물며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죽어간 사람들이야 오죽하겠는가? 30년 동안 아무 죄도 없이 죽음의 순간을 기다리던 힌턴은 그러했다. 인종차별과 편견으로 자신을 판결했던 검사와 판사 그리고 거짓 증언자들까지도 모두 용서했다. 심지어 그들을 위해 기도했다.
사형제도에 관한 찬반에 관하여.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사회공정을 위해 사형제도는 부활해야 한다는 의견이 두드러진다. 요즘 같은 상황에서 말이다. 아동청소년 및 사회적 약자에 대한 잔인한 범죄를 사람들은 결코 용서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나 또한 그런 사람임이 틀림없다. 힌턴을 선고했던 검사나 판사처럼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법칙이 생명은 생명으로 죽음은 죽음으로라는 정의와 맞물려 있다고 말해왔다. 정직하게 말해서 지금도 내 생각에 변화가 있다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미국 앨리버마의 경우처럼 사형수 10명 중의 1명이 억울한 사건에 연루되었다면 경우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사형제도에 관해서 무엇이 옳은지 판단할 수 없지만, 억울하게 누명을 쓴 사람들의 죽음은 막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