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진 신드롬 블랙홀 청소년 문고 11
박경희 지음 / 블랙홀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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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진 신드롬

 

슬프다. 지독하게 슬프고 아프다. 집을 나와 거리에서 춤을 추는 은휘나 엄마를 위해 성당에 나가고 거기서 만난 남자 친구로부터 폭력을 경험하는 미지나 지독한 가난과 열등감으로 원조교제를 하는 리나 그리고 무기력증에 빠져서 무작정 아빠를 따라 머나먼 아프리카로 간 해미 그리고 진주와 설화.

 

너희들은 왜 아프니? 꼭 시지프스가 무거운 바위를 언덕으로 밀고 올라가는 것처럼 아무 목적도 아무 희망도 없는 거니? 라고 누군가 묻고 싶겠지만, 나는 안다. 너희들의 삶은 그저 태어났기에 그저 숨을 쉬고 살아있기에 겪는 고통을 뛰어넘은 것이라고 말이다.

 

전에 내가 알던 17세 가출 소녀가 있었다. 그 아이는 부모를 따라서 종교집회에 나오고 또 봉사 활동에 참여했던 아이였다. 그런데 갑자기 그 아이가 사라졌어. 그렇게 한 달 그리고 일 년을 만날 수 없었지. 태연하게 종교 활동을 하는 그 아이의 엄마가 도저히 이해가 안 되었지. 그 타는 속을 누가 알겠느냐마는. 그리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났어.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말이야. 사람들은 뒤에서 수군댔지. 어쩌면 가출을 하고 어린 나이에 남자를 사귀고 공중화장실에서 쭈그리고 자다가 잡혀 오고 저렇게 뻔뻔스러운지 말이야. 그렇게 사람들은 수군댔어. 결국, 그 아이가 다시 발붙이지 못하고 또다시 보이지 않았단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라도 그 아이에게 따뜻한 밥이라도 한 번 사줄걸, 아니 그 또래들이 좋아하는 떡볶이라도 한 번 사줄 걸 그랬어. 아무 말 없이 그저 아무 말 없이 말이야.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야. 더군다나 가족이 아닌 남을 이해한다는 것은 더 그렇겠지. 그래서 더 남을 판단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지. 은휘야, 미지야, 리나야, 해미야, 진주야, 설화야. 너희들이 자신들을 판단하고 손가락질하는 어른들은 참 이기적이고 나쁜 사람들이야. 어쩌면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악마일지도 모르지.

그런데 그거 아니? 그걸 다르게 바라볼 수 있다면 아마도 너희들의 인생도 조금은 바뀌지 않을까? 성에 대한 너희들의 인식도 아름답게 그리고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책을 읽고서 에피소드의 주인공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니 속이 후련했다. 17세를 바라보는 내 딸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름을 한번 불러보았다.

하윤아! 그냥 불러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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