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이야기
미아키 스가루 지음, 이기웅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너의 이야기

 

책 표지의 소녀에게서 슬픔이 묻어난다. 이루지 못한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가 펼쳐질 것을 기대하며 책을 읽어 내려 가본다.

소설의 첫 부분을 읽기 전 반드시 앞에 설명된 용어설명을 먼저 읽을 것을 권한다. 무턱대고 첫 부분부터 읽었던 나는 처음 접하는 단어들을 이해할 수 없어 사전을 찾아봤지만, 그 단어 자체가 없어 당황했다. 다시 앞으로 와서 용어설명을 해둔 부분을 보고 옮긴이의 친절함을 건너뛴 나 자신의 덜렁거림을 질책했다.

 

사람은 한 번쯤 과거를 돌이켜보며 현재의 삶이 과거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빚어진 결과물이라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만약 과거로 돌아간다면 그때처럼 행동하거나 말하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 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후회하기도 한다. 이 소설은 좀 더 다른 접근을 통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삶을 조정하며 치유하는 방법을 가공해 내었다.

 

아마가이 치히로는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했고 학창시절에도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어색해서 책을 읽으려는 목적이 아니라 도피하기 위해 도서관에 가 있었던 소심하고 행복하지 않은 청년이다. 그 부모는 의억, 즉 가짜 기억을 나노로봇을 통해 주입하여 대부분의 삶을 살아간다. 부모의 이혼 후 엄마가 과거의 기억을 모두 제거하는 레테를 사용했는지 아들인 치히로조차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가는 장면은 의억의 약점을 드러내 준다. 어쨌든 자기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고 전혀 경험하지 않은 가짜의 좋은 기억들을 주입한다는 생각은 신선하긴 하지만 현실에서 활용된다면 엄청난 사회적 혼란을 가져올 것이다.

 

부모가 의억기공사로부터 의억을 주입하여 사는 것을 지켜봐 왔기 때문에 치히로도 6세부터 15세까지의 기억을 모두 없애기로 결심하고 의억기공사와 상담을 통해 레테를 구입하여 복용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린그린을 복용하여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소꿉친구가 그의 기억 속에 들어와 버렸다. 소설은 치히로가 의억을 통해 갖게 된 소꿉친구를 현실에서 만나게 해 준다. 나는 치히로가 느끼는 혼란을 똑같이 느꼈다. ‘어떻게 된 거지? 가공인물인데, 상상 속의 소녀가 어떻게 현재의 치히로의 집에 찾아와서 요리를 하고 함께 자전거를 탈 수 있지?’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허구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소설의 전개가 사뭇 기대되었다.

 

그 대답은 그 소녀, 도카의 말에 있었다. 그리고 이 소설의 제목이 치히로의 이야기가 아니라 너의 이야기’, 다시말해 그 소녀의 이야기임을 알 수 있었다.

레코드판은 A면이 끝나면 뒤집어서 B면으로 바꿔줘야 해

 

도카는 치히로의 의억 기공사이며 치히로처럼 고독한 소녀이다. 불행하게도 자신의 기억을 잊어가는 신형 알츠하이머병에 걸렸다. 그녀는 자신이 우연히 발견한 치히로의 이력서를 보고 자신의 운명적인 상대, 즉 그가 자신의 궁극의 남자라고 생각하며 죽기 전 자신도 사랑받는 존재가 되고 싶어 치히로의 현실의 세계로 들어가서 치히로의 기억에 있는 소꿉친구가 된다. 이런 전개방식은 너무나 신선하여 책을 읽는 동안 전율을 느꼈다. 소설 후반부에서는 선배의 도움으로 도카의 존재를 알게 된 치히로가 그녀가 입원한 병원에 찾아가 그녀의 진정한 친구이자 연인이 되어주는 장면이 따스하게 펼쳐진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이라는 소설은 수면의 6단계에 도착해 자신의 뇌에서 과거의 어떤 경험이 잘못되었는지를 파악하게 하고 치유하도록 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면, 이 소설은 자신에게 있는 기억을 제거하거나, 없는 기억을 주입하여 자신의 삶을 치유하는 과정을 그렸다. 과학은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다. 어린 시절에 우리가 현재 누리고 있는 과학의 산물들에 대해 들었다면 믿을 수 없다고 말했을 것이다. 이 두 소설에서 다루는 과학적인 이야기들이 허구가 아니라 실재하는 세상도 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 다만 사회적 도덕적 혼란을 일으키는 일이 없다는 전제하에 일어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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