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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정신이라는 착각 - 확신에 찬 헛소리들과 그 이유에 대하여
필리프 슈테르처 지음, 유영미 옮김 / 김영사 / 2023년 9월
평점 :
불확실한, 비합리적
위 단어들의 느낌은 어떠한가요? 아마 부정적인 느낌을 받는 분이 많겠지요. 사회를 살아가는 틀에서 크게 벗어나 있으니까요. 긍정적인 단어와는 연이 닿지 않아 보입니다. 그런데 <제정신이라는 착각>에서 ‘확신’이라는 단어와 함께 사용됩니다. 어쩌다 ‘확신’이 위의 단어들과 어울리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사회
먼저 ‘확신’의 뜻부터 살펴볼게요. 굳게 믿는 것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믿음의 대상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사회에서 ‘비정상’이라고 일컬어지는 현상도 포함됩니다. 누군가가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거나 어떤 위험이 자신에게 닥칠지도 모른다고 믿는 겁니다. 이런 확신이 지속될 경우, ‘비정상’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마르가레트 G.의 사례를 읽어 보세요.(36쪽) 그녀를 ‘비정상’으로 정의한 기준은 딸과 의사의 확신이었습니다. 그녀의 확신이 옳을지도 모르는 데도요. 이 사례를 통해 확신은 ‘옳을 수도 옳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어요. ‘불확실한 확신’은 이런 이유로 탄생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실제로 책을 읽다 보면 저자는 독자에게 한 가지 사실을 계속 언급합니다. 망상 증상이 곧 정신적 질환을 뜻하지 않으며, 정신적 질환에 걸린 사람이 망상 증상을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고요. 망상에도 강도가 있으며, 평범한 사람도 망상을 할 때가 있다고 언급합니다. 망상을 부정적으로만 보는 독자의 시각을 환기하려는 목적이 있지 않을까요?.
확신과 망상의 적응적 진화
1부 3장 조현병은 왜 생겨날까?(97쪽~)
2부 6장 균형을 잃은 사람들(221쪽~)
2부 7장 여기서 병든 사람은 누구일까?(270쪽~)
위의 챕터를 통해서 독자는 망상의 원인, 과정, 결과를 알 수 있습니다. 저자는 심리학, 뇌과학, 유전학, 신경학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를 예로 들며 독자에게 망상 증세를 설명합니다. 저자의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단어 ‘적응적’이 자주 등장합니다. 여기서 ‘적응적’이란 말은 생존과 번식에 직접적으로 긍정적 효과를 발휘한다는(153쪽) 뜻입니다. 생존을 위해 비합리성이 ‘적응적’으로 진화해 왔다는 내용이 주요 골자입니다. 확률은 낮지만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치명적인 오류를 피하고, 비용-편익을 고려하고, 빠른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 이끈 현상이라고 합니다. 이런 적응적 이점이 사람의 확신 또는 망상을 더욱 굳힙니다. 설령 그것이 비합리적이라고 해도요. 이것이 ‘비합리적 확신’이 나오게 된 배경입니다.
사실 이 책의 주제는 프롤로그에 나와 있습니다.
어떤 확신이 ’정상적인 것으로 혹은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해도, 그것은 언제나 가설에 불과하다는 것이다.(19쪽)
이 명제를 설명하기 위해서 저자가 온갖 근거를 설명합니다. 그런데 에필로그에서 데이터는 완전할 수 없기에, 새로운 데이터나 인식이 등장하면 과학의 진술도 변할 수 있고, 변해야 한다(325쪽)고 덧붙입니다. 자신의 주장조차도 불확실한 확신, 비합리적인 확신일 수 있다고 소개하는 셈이지요. 수많은 실험을 토대로 삼은 주장도 불확실하다는데, 경험에만 의존하는 개인의 생각은 오죽하겠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부족한 경험의 양이 착각을 부르고, 착각이 불확실한·비합리적 확신으로 굳어지는 원리를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합니다. 다양한 예시를 들어서 독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내용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제정신’이라는 가설을 파헤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