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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가정
백승연 지음 / 해피북스투유 / 2025년 11월
평점 :
우리는 ‘합리적’이라는 단어를 언제 사용할까요? 쌍방이 서로 이해한 뒤, 결론을 내리고 행동할 때 사용합니다. 그 과정은 지난합니다. 처음부터 목표가 다르기도 하고, 목표는 같은데 목표를 이루는 방식이 다르기도 합니다. 같은 의견일 줄 알았는데 세부사항에서 차이가 나기도 합니다. 이 의견들을 제시하고 이익을 나누는 과정이 회의, 토의, 논의, 토론, 협상이겠지요. 그 결과에 단어 ‘합리적’을 더하여 객관적이고 논리적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줍니다. 모두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한 느낌입니다.
그렇다면 ‘가정’ 앞에 붙은 ‘합리적’은 어떤 느낌을 주나요? 애써서 지키고 있다는 이미지가 강합니다. 가정 내의 역할극을 견디며 지켜내는 느낌입니다. 역할극을 제대로 수행하며 꾸리는 가정이 마치 합리적인 가정이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소설에는 두 가정이 나옵니다. 원래부터 영림동 주택단지에 살아온 유림 가정. 성공을 이루고 영림동 주택단지로 들어온 희진 가정. 두 가정은 정원 하나를 사이에 두고 공유하고 있습니다. 정원에서 이루어지는 행동이 각 집의 창문을 통해서 보입니다. 희진은 옆집 뒷마당에서 건우가 유림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장면을 목격합니다.(241쪽) 이런 장면을 목격했을 때, 이상적 합리를 대입한다면 희진이 경찰서에 신고를 하고, 정원으로 내려가서 유림을 지켜야 합니다. 하지만 희진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희진이 그 장면을 보고 지나쳐도 되는 합리적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점을 건우도 알고 있습니다. 유림이 당해도 싸다는 마음이 도덕적 선을 이긴 셈입니다.
이렇게 보면 제목 <합리적 가정>은 집단과 잡단의 교류에도 합리를 적용합니다. 더 나아가 개인과 개인 사이에도 ‘합리적’ 관계를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숨겨두고 있습니다. 희진이 직장 후배 하영의 상담을 할 때 이 말을 던집니다. “하영아, 그래서 억울해?”(251쪽) 이 한 마디가 소설을 관통하는 합리의 의미입니다.
소설의 세상은 이상적 합리가 들어맞지 않는 상황에서 비이상적 합리적 행동을 할 줄도 알아야 버틸 수 있는 세상입니다. 이상적 합리란 무엇일까요? 직장으로 좁혀서 생각해 볼까요? 새로운 사람이 제대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끄는 사수, 실력 있는 사람이 진급하는 시스템, 경쟁자이되 긴급한 순간에는 하나의 목표에 집중하는 각 부서. 이런 사항을 들 수 있겠지요. 어떤 집단에서도 새로운 사람은 등장하고, 그들을 이끌어야 하는 사람이 있고, 힘을 합치기도 해야 할 때가 있는 것. 직장이 아니라 가정으로 좁혀도, 사회와 세상으로 넓혀도 일맥상통하는 지점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잖아요. 희진도 알고 나도 알고 너도 알잖아요. 어떤 집단이라도 개개인은 자신이 일방적으로 희생되는 상황을 원하지 않습니다. 서로 공통으로 얻는 이익이 있거나, 같이 움직여서 각자가 얻는 이익이 존재해야 합니다. 그래야 같이 배를 탈 수 있습니다. 이익을 얻고 다른 이익을 위해 배를 갈아탑니다. 같은 배를 계속 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상적 합리를 그대로 지켜내기에는 세상에는 사람이 너무 다양합니다. 약속을 안 지키고, 뒤통수를 때리고, 도를 넘는 사람이 있습니다. 비이상적 합리를 들이미는 사람들입니다. 이상적 합리와 비이상적 합리가 뒤엉킨 세상입니다. 희진의 말처럼 세상은 전쟁터입니다.(251쪽)
사실 이상적 합리와 비이상적 합리가 뒤엉키는 시스템은 끝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엎치락뒤치락하면서 계속 경합을 벌여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 경합에는 권력의 권익뿐만 아니라 생존과 삶의 권익도 참여해야 합니다. 생존과 삶의 권익을 무시한 경합의 결과는 이상적 합리를 위한 과정이 아닙니다. 경합이 개인을 어느 젊은 소설가의 아내로 만들지 않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