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집
전경린 지음 / 다산책방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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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변했다.’ 사람의 어떤 점이 변했다는 뜻일까요?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겉모습이 달라질 수 있지요. 언행을 통해서 느낄 수 있는 느낌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후자의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생존과 직면했을 때 그렇습니다. <자기만의 집>에는 이 기로에서 서로 다른 길을 선택한 이들이 등장합니다. 호은의 부모입니다. 호은의 엄마는 언행을 바꾸고, 호은의 아빠는 언행을 바꾸지 않습니다. 두 사람은 갈라섭니다. 교차점은 사라진 듯 보입니다.

 

그런데 호은의 아빠는 승지를 호은에게 맡기면서 괜찮을거라고 말합니다. 호은의 아빠는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요? 호은의 엄마와 함께 살벌한 현실과 대치했던 경험 때문입니다. 성공 여부는 둘째로 하고, 규칙적·지속적으로 교류를 했습니다. 하나의 목표지점으로 함께 나아가며 형성한 바닥을 쉽게 버리기는 어렵습니다. 자신의 청춘을 바쳤기 때문입니다. 호은의 아빠는 호은의 엄마에게도 청춘에 형성한 바닥이 단단하게 남아있다고 믿었던 게 아닐까요?

 

호은의 엄마는 호은의 아빠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죽지 않았고, 범죄자도 되지 않았고, 주정뱅이도 되지 않았고, 제 청춘에 변질도 하지 않았다. 자신의 바닥을 버티며 사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말합니다.(113-114)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이 구축한 바닥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려는 사람을 마냥 비난할 수 없다는 뜻이겠지요. 바닥을 사회의 변화와 다르게 구축하면 사회적 시선을 견뎌내야 합니다. 사회적 기준을 지키지 못한 사람으로 분류될지도 모릅니다. 자연스럽게 사회에 녹아들어갈 길이 막힙니다. SOS를 칠 사람이 없습니다. 호은의 아빠는 이 환경을 버티며 살아온 사람입니다. 그 사실을 알기에 호은의 엄마는 승지를 잠시 맡아주었을지도 모릅니다. 비록 그것이 사회적 시선을 견뎌야 하는 길일지라도.

 

우리의 바닥은 어떨까요? 호은의 부모처럼 관계를 바탕으로 형성됐을까요? 아니면 사회적 시선을 바탕으로 형성됐을까요? 사회적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는 방법을 다루는 책이 많은 걸 보면 후자가 많아 보입니다. 늘 시선 안에 머물기 위해 전전긍긍합니다. 자신만의 가치관이 없으니, 누군가와 무언가를 경험하지 못합니다. 관계를 형성하지 못합니다. SOS를 칠 사람이 없습니다. 바닥이 불안정해집니다. 안정감을 얻으려고 다시 사회적 시선에 자신을 맞춥니다. 이 순환의 연속입니다. 이 순환에 변화를 줄 수 있는 방법은 있을까요?

 

같은 목표를 지닌 사람을 찾아야 하겠지요. 함께 배를 타고 그곳으로 향합니다. 그곳에 도착해서 목표가 바뀌면 흩어질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함께한 경험은 세상 어느 곳에는 자신처럼 순환하는 이가 있다는 안정감을 형성해 줍니다. 이 경험의 대전제는 목표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사소한 목표라도 상관없습니다. ‘함께하는 경험을 위한 것이니까요. 새해 목표를 정했다면 동료를 찾아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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