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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연물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 / 리드비 / 2024년 8월
평점 :
여러분은 순환이 잘 되는 조직에 속해 있나요? <가연물>을 읽으면 시스템 순환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가쓰라 경부는 자신의 업무에 충실합니다. 사건이 발생합니다. 일련의 정보를 모으고 분석합니다. 용의자를 추립니다. 시간을 들여 범인을 체포합니다. 범인을 잡았다고 들뜨지 않습니다. 덤덤하게 다른 사건의 용의자를 추적합니다. 범인을 체포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꾸준히 해 나갑니다. 그 과정에서 범인을 체포할 뿐 다른 판단은 하지 않습니다. 범인이 저지른 죄의 무게, 범인이 받는 처벌 강도를 결정하는 권한은 자신에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업무 구분이 명확합니다. 업무가 명확하니 다른 길로 새지 않습니다. 당연히 부하도 자신의 업무를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상사와 부하가 서로 자신의 업무 범위를 알고, 맡은 바를 수행합니다. 이 순환이 지속될 때, 우리는 시스템 순환이 잘 이루어진다고 말합니다.
이 지점에서 가쓰라 경부가 업무를 건조하게 수행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소설에서는 가쓰라 경부 개인의 성격으로 묘사됩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시스템을 잘 굴러가게 만들기 위해서, 조직이 구성원들에게 감정을 배제할 것을 요구한다고. 구성원이 감정을 이정한 수준으로 유지해야 시스템에 쉽게 적응할 수 있습니다. 조직의 이익으로도 이어집니다. 즉, 조직의 시스템은 조직의 이익이 최우선입니다. 구성원들의 삶을 뒤로 미룹니다. 이런 시스템 속에서는 튕겨나는 구성원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조직은 어떤 선택을 할까요? 시스템을 개선하지 않고, 그 자리에 다른 구성원을 앉힙니다. 이런 조직을 시스템 순환이 잘 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물론 건조한 언행이 시스템 순환을 돕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아랫사람이 웃어른들과 대화를 나눈다고 생각해 보세요. 아랫사람은 웃어른에게 미주알고주알 이야기를 털어놓지 않습니다. 적당히 맞장구를 쳐줄 수 있는 화제만을 이야기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현재에 웃어른이 자신의 과거를 대입하기 때문입니다. 과거를 통해 문제해결 방식을 배울 수 있습니다. 과정을 배우는 것이지, 환경을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환경은 실시간으로 바뀝니다. 과거에 용인됐던 것들을 현대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는 사실을 웃어른에게 설명해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아랫사람인 자신이 웃어른의 방식에 묶이게 될 뿐입니다. ‘웃어른은 나이를 먹으며 뇌가 굳어 이해하기 어려울 거야.’ 이렇게 생각하며 불편한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몹시 건조합니다. 그래도 얼굴을 붉히는 일 없이 관계를 유지하니 시스템 순환이 잘 된 셈이지요.
그렇다고 위의 경우처럼 건조한 언행이 지속된다면 사회는 어떻게 변할까요? 웃어른은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합니다. 아랫사람은 웃어른의 문제 해결 과정에서 배우는 기회를 얻지 못합니다. 즉, 시간과 함께 가르치는 이와 배우는 이의 관계가 끊임없이 바뀌는 셈입니다. 그 과정에서 얼굴을 붉히더라도 함께 배우며 성장하는 관계를 유지하는 것, 이것이 진정한 시스템 순환이 아닐까요? 시스템 순환은 비스니스 관계에만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