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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이의 고독
양선미 지음 / 파람북 / 2025년 7월
평점 :
이 작품을 한 마디로 정의하면 영이의 삶입니다. 어려운 가정 형편을 알기에 사격부에서 버티려고 노력합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야간 대학을 다니면서 살아갈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계약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되기 위해서 실적을 달성하려고 노력합니다. 추후에는 실질적으로 가장이 되어 살림을 꾸립니다. 가족을 이루고 무너지고 다시 이루어지는 과정 속에 영이의 삶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선택의 기로는 늘 먹고 사는 문제와 직결됩니다. 원하는 선택지를 고르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이가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깨순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영이에게 깨순이는 오래된 친구입니다. 두 사람은 비슷한 환경에서 지냅니다. 서로 공감하며 꿋꿋하게 성장합니다. 어른의 문턱이 가까워졌을 때, 두 사람은 관계가 소원해집니다. 서로 각자의 길을 걷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영이는 깨순이의 연락을 받습니다. 두 사람은 바다로 갑니다. 그곳에서 다른 사람이 지은 모래성을 봅니다. 모래성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영이와 깨순이가 친했던 과거의 시간을 상징합니다. 영이는 깨순이와 자신의 내밀한 감정을 공유합니다. 서로 공감하며 하루하루 버티었던 시절입니다. 영이는 어른이 되고 나서 때때로 그 시간을 떠올립니다. 서로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반응하며 내일을 버틸 힘을 얻었던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깨순이가 옆에 있었다면, 먼저 서로 상황을 공감해 주겠지요. 자연스럽게 감정이 가라앉고 이성적 사고를 하겠지요. 과거의 그 때처럼. 그러나 어른의 관계는 안정을 갖출 시간을 주지 않을 때가 더 많습니다. 깨순이와의 시간이 그리울 수밖에 없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감정의 희미해질지도 모릅니다. 모래성이 풍화되듯. 그래도 그 자리에는 흔적이 남습니다. 깨순이의 연락이 바다 여행의 도화선이 된 이유입니다.
둘째, 다른 사람이 구축한 휴식처를 상징합니다. 영이는 눈앞에 닥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에 급급합니다. 물러나서 쉴 곳이 전혀 없는 전쟁 상황과 같습니다. 다른 생존자들은 저마다 모래성을 쌓습니다. 언제 파도에 휩쓸릴지 모르는 모래성을 쌓습니다. 영이는 그 틈에서 밥그릇을 챙기는 방법을 몰라서 격전지로 떠밀립니다. 격전지에서 공격을 피하려고 노력합니다. 막으려고 노력합니다.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쉴 틈 없이 위기가 벌어집니다. 후방의 생존자가 쌓은 모래성이 떠오릅니다. 모래성조차도 굳건한 성 같습니다. 바깥에서 있는 힘껏 싸우다 들어가서 쉴 공간을, 쉴 시간을 얻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영이는 압니다. 즉, 모래성은 영이의 유일한 구원이며 소망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모래성은 우리의 구원이자 소망입니다. 우리의 주위에는 모래성이 많습니다. 완성된 모래성도 있고, 짓다 만 모래성도 있습니다. 모래성을 세우려고 다져놓은 곳도 있고, 모래성이 무너진 곳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위의 예시 중에 어떤 곳을 발견하고 싶나요? 저는 모래성을 세우려고 다져놓은 곳을 발견하고 싶습니다. 땅을 다져놓았다는 말은 모래성을 쌓으려는 사람이 있다는 뜻입니다.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관찰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저에게 적용할 수 있는 방식을 찾고 싶습니다. 어쩌면 그들의 뒤를 따라가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방식을 제가 실천할 수 있는 방식으로 바꾸기 때문에 마냥 따라간다고만은 말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제가 바꾼 방식을 본 원래 주인이 제 방식을 따라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서로 보여주고 따라하며 같이 나아가는 동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지금 쌓은 모래성이 무너지는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다음에는 수워할 테니까요. 품앗이를 해 줄 동료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모래성을 쌓으려는 사람의 터를 발견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