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아워
폴라 호킨스 지음, 이은선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당신이 떠올리는 섬은 어떤 섬인가요?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곳인가요? 다른 특징을 지닌 섬을 떠올릴 수 있나요? <블루 아워>에는 다른 종류의 섬이 등장합니다. 밀물일 때는 섬이 되고, 썰물일 때는 육지의 일부가 되는 섬입니다. 고립됐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외부와 지속적으로 교류하기는 어렵습니다. 바로 에리스섬입니다. 우거진 숲과 깎아지른 절벽이 존재감을 과시합니다. 에리스섬 주위에 밀물이 서서히 차오르면 한층 더 깊은 어둠에 잠깁니다.

 

그런 곳에도 사람이 살아갑니다. 그레이스 헤스웰도 그 중 한 명입니다. 간호사입니다. 간호사로서 섬 주민들을 살뜰하게 살핍니다. 남편의 폭력에 휘둘려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마거리트를 매일 방문하여 살핍니다. 은둔 예술가 버네사 체프먼의 집에 머물면서 집안일을 돕기도 합니다. 그레이스 헤스웰은 간호사로서 신체의 상처뿐만 아니라 마음의 상처까지 섬세히 살핍니다. 그래서일까요? 그레이스 헤스웰은 숲에서 절벽에서 바다에서 흉터를 느낍니다. 흉터는 무엇을 가리킬까요? 제 생각에는 그레이스 헤스웰 자신의 생명입니다.

 

그레이스 헤스웰이 에리스섬에 들어오기까지의 여정, 에리스섬에서 보낸 고요한 시간, 그곳에서 버네사 체프먼을 만나면서 깨어나는 감각에 휩쓸리는 여정. 이 여정 속에서 고비를 겪을 때마다 그레이스 헤스웰이 묻어왔던 순간들. 그 순간들이 모두 모여서 하나가 됐을 때, 그레이스 헤스웰의 생명을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 그레이스 헤스웰의 대학 시절 이야기를 읽으면서 강하게 느꼈습니다. 그레이스 헤스웰은 두 명의 친구와 겉돌면서 생활합니다. 같이 겉도는 사람이 있기에 안정감을 느낍니다. 그러던 중 두 명의 친구가 증발하면서 안정감이 깨집니다. 그레이스 헤스웰은 그 이유를 모릅니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졌는지 알아내고 싶습니다. 동시에 이런 문제에 매달리는 사람은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레이스 헤스뤨은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사회의 일원이 되는 과정을 밟습니다. 사회가 원하는 사람이 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존 본능이 발동했다고 볼 수도 있겠지요. 그레이스 헤스웰 스스로도 모범답안이라고 표현했을 정도니까요.

 

그레이스 헤스웰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사회는 사회를 뒷받침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원합니다. 설령 흉터를 끌어안고 있어도 자신의 역할을 수행할 줄 아는 사람을 원합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흉터를 구석에 밀어두고 사회의 일원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합니다. 해야 할 일에 떠밀려 흉터를 돌볼 여력이 없습니다. 흉터는 부패됩니다. 흉터가 부패될수록 혼자서 감당할 수준을 넘어섭니다. 끝내는 완치되지 않은 흉터를 알립니다. 나와 같은 흉터가 있다면 함께 바꿔보자고 호소합니다. 그 순간부터 사회의 냉대를 견뎌야 합니다. 사회의 일원이 되고자 몸부림을 치다가 사회의 눈총을 받는 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흉터를 드러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기꺼이 힘을 보태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혼자가 아니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혼자서는 실패하면 주눅이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 명이라면 실패해도 좌절해도 앞으로는 이렇게 해 보자고 의논할 기회가 생깁니다. 다시 나아갈 길과 용기를 얻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흉터를 같이 돌볼 사회적 기반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