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부카를 위한 소나타
아단 미오 지음, 김은모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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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 이 단어를 어떤 뜻으로 기억하고 계시나요? 아마 대부분 더 나은 상태로 변화한다는 뜻을 떠올리겠지요. 그런데 진화에는 또 다른 뜻도 있습니다. 들끓은 상태를 가라앉힌다는 뜻입니다. 다치바나는 두 가지 진화를 모두 이루어냅니다.

 

그는 첼로와 관련된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이 트라우마는 그를 불면증에 시달리게 합니다. 그는 불면증을 동반하며 직장생활을 합니다. 병원에 갈 때마다 자신 말고도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위안으로 삼으면서.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트라우마의 발단인 첼로를 다루어야 하는 업무를 맡게 됩니다. 거절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는 한 개의 바퀴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가 구르지 않으면 다른 바퀴와 맞물리지 않아서 업무 진행이 삐걱일 확률이 높습니다. 그는 원만한 직장생활을 위해 업무를 맡습니다. 첼로와 다시 마주합니다. 업무를 진행할수록 첼로를 진심으로 다루게 됩니다. 이제 자신과 상관없다고 믿었던 첼로를 다루며 그의 꿈은 구체성을 띱니다.

 

그의 꿈은 늘 암흑이었습니다. 실체를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첼로를 다시 다루면서 꿈은 조금씩 변화합니다. 잊을 수 없는 그 날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꿈이 구체적으로 변화할수록 그는 두렵습니다. 하지만 그 날과 다른, 첼로가 맺어준 새로운 환경은 그에게 희망을 줍니다. 트라우마와 직시할 기회입니다. 첼로를 능숙하게 연주하게 될수록 그 날의 기억이 두렵지 않습니다. 업무를 위해 다룬 첼로가 불투명한 꿈의 파편을 자신을 받쳐주는 기둥으로 탈바꿈했습니다. 첼로를 매개로 그는 기억을 진화했고, 자신의 삶에 첼로가 새롭게 자리잡을 수 있도록 진화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누구에게나 그 날을 상기하게 만듭니다. 그 날, 자신을 보호하기에는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었던 날. 그 날에만 머무를 수 없어서 다 잊은 척 후유증을 지닌 채로 자라온 나날. 그 날을 외면할수록 깊어지는 후유증. 그 후유증을 완치하려면 결국 그 날과 직시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어느 순간.

 

방어기제는 바뀌어야만 한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 자신을 방어해 주던 방법을 죽을 때까지 가지고 갈 수는 없다고 합니다. 시간과 함께 불안을 형성하는 환경이 어린 시절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환경의 변화에 맞는 방어기제를 형성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겠지요. 이 사실을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닙니다. 익숙하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불안할 때 제일 오랫동안 자신을 지켜준 방어기제가 불쑥 튀어나옵니다. 본능입니다. 그 본능을 억지로 바꾸려고 하는 자체가 큰 불안으로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방어기제를 진화하는 것도 방편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 어렸을 때 불안을 진화하기 위해 아무 글이나 해독했다고 해 볼까요? 그 때는 글에 담긴 의미, 주제는 필요 없습니다. 한 줄 한 줄 읽는 행위에 집중하다 보면 마음이 평온해집니다. 그 행위는 무언가를 읽는 습관을 만들어 냅니다. 그 습관을 진화한다면 어떻게 바뀔까요? 해독이 독해로 바뀌지 않을까요? 저자의 의도는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다른 작품들과 어떻게 다르고 무엇이 다른지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감정이나 환경에 적용해 볼 수 있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마음의 진화에만 집중됐던 소극적 방어기제가 자신의 행동 양식을 진화하려는 적극적 방어기제로 바뀝니다. 그러니 어린 시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자책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신의 방어기제를 진화시켜 진화할 방법을 한 번 찾아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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