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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독서 (특별증보판) - 세상을 바꾼 위험하고 위대한 생각들
유시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5년 4월
평점 :
사실 이 책을 읽기가 겁이 납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저자의 다른 도서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를 읽었는데 어려웠습니다. 과학적 지식도 어렵지만, 이해하기 쉽도록 들어주는 예시도 선뜻 이해되지 않았거든요. 저자의 다른 책의 난이도도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와 비슷하겠다고 생각해서 선뜻 손이 가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독서 에세이가 나왔습니다. 목차를 살펴보니 읽은 책은 한 권도 없었습니다. 감상의 주제도 정치, 사회 분야로 어려워 보였습니다. 그래도 다양한 장르의 책을 읽자고 결심했으니, 책의 추천사를 읽는 기분으로 읽자는 마음으로 읽게 되었습니다.
<청춘의 독서>를 다 읽은 뒤, 문구 하나가 각인됐습니다. ‘역할의 전도’ 챕터8에 등장합니다. 저자는 <사기>의 한고조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역할의 전도’를 언급합니다. 한고조는 수많은 전쟁을 치르며 나라를 통합합니다. 여러 나라가 하나로 이루어졌으니 다스리기 위한 공통된 제도가 필요합니다. 문관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시기입니다. 무관의 쓸모가 사라지지는 않았으나 전쟁이 비일비재했던 때보다 활약할 기회가 적습니다. 저자는 이 시기를 ‘역할의 전도’가 일어난 시기라고 합니다. 국가를 다스리는 통치 방식의 비중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제 생각을 하나 덧붙이자면, 한고조의 역할 변화도 ‘역할의 전도’입니다. 한고조는 역할이 전장의 우두머리에서 국가의 황제로 바뀝니다. 자신이 겪어 보지 않은 영역까지 두루 살펴야 합니다. 역할이 바뀌면서 다스려야 할 영역이 더 넓어진 셈입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사람은 그대로인데 환경이 변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전쟁터와 다르게 돌아가는 조정.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동료도 사라진 환경. 이런 낯선 환경 속에서 한고조가 버틸 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일까요?
끊임없이 쏟아지는 국정 문제입니다. 한고조는 수많은 나라를 한 국가로 통합하면서 무엇을 꿈꿨을까요? 화살을 맞아서 생긴 부상을 치료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대목을 보면 한 국가를 탄생시키겠다는 꿈은 있었으나, 국가를 세운 뒤의 꿈은 없었던 듯합니다. 한고조는 국가의 최고 지위에 오른 사람입니다. 꿈이 있었다면 국정이 안정되어야 합니다. 국가 유지는 꿈을 이룰 수 있는 토대를 다지는 일입니다. 수많은 신하, 수많은 백성. 국가의 구성원이 만족을 느낄 수 있도록 유지하면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한고조는 이루고 싶은 꿈을 생각할 틈이 없었습니다. 국가 곳곳에서 반란과 봉기가 일어납니다. 조정에는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사람도 없습니다. 수시로 발등에 처리해야 할 문제가 떨어집니다. 끝이 없습니다. 한고조는 화살이 꽂힐 때까지 황제의 의무를 수행하는 데 급급해서 꿈을 꿀 기회조차도 잃은 것은 아닐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상을 입고 죽기 전까지 한고조는 버티어 냈습니다. 국가에 자신의 역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황제로서 국정에 참여합니다. 자신이 세운 국가에 보탬이 되는 삶을 보냈습니다. 비록 주어진 역할에 충실한 소극적 삶이어도 국가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역할의 전도’를 깨닫고 자신의 방식으로 실천했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내 쓸모는 아무 데도 없다고. 그렇지 않습니다. 이미 우리는 역할에 맞는 쓸모 있는 삶을 지내고 있습니다. 부모로서 자식으로서 학생으로서 직장인으로서 다양한 역할에게 맡겨진 일을 해내고 있습니다. 심지어 연령대별로 장소별로 어울리는 처세까지 생각하는 사고방식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세상이 필요로 하는 쓸모만을 갖추었다고 해서 자책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그 또한 세상을 살아가는 삶의 방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