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근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하빌리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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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생계를 위해 임시 교사로 일을 합니다. 뚜렷한 교육 철학도 없고 학생들에 대한 애정도 없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주인공의 시각으로 바라본 교실의 풍경은 몹시 건조합니다. 주인공은 학교 내에서 벌어지는 일을 서술할 뿐 감정 묘사는 전혀 하지 않습니다. 관찰하면서 이상한 점을 발견해도 학교는 원래 그런 곳이라며 그냥 넘어갑니다. 다만 교사라는 입장에서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에는 관여합니다. 교사의 죽음, 지갑 도난 발생 같은 일입니다. 보통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면 통쾌하거나 안도감이 드는데, 이 소설은 찜찜합니다. 무미건조한 주인공의 한 마디가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학교는 세상의 축소판이다. 흔하게 쓰이는 비유입니다. 왜 이런 말이 나왔을까요? 사회의 어른들의 역할을, 교실의 학생들이 모방하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은 어른을 모방하면서 사회에서 자신이 맡을 역할을 배워 나갑니다. 문제는 학생들이 어른의 잘못된 행동을 별 생각 없이 따라할 때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행동을 하는 학생들을 어른이 꾸짖으면 의문을 드러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른이 자신과 똑같은 행동을 해도 처벌을 제대로 받지 않는데 왜 학생은 벌을 받나요?’ 이 질문을 받으면 어른은 말문이 막힙니다. 세상에는 선을 지키지 않는 어른이 분명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어른들도 분명 학창시절에 선을 배웠습니다. 선을 넘지 않고 사는 삶이 올바른 삶이라는 지식을 배웠습니다. 어른들을 관찰하며 무엇이 올바른 행동이고 올바르지 않은 행동인지 배웠습니다. 그런데 왜 선을 넘는 어른이 생기는 걸까요? 바로 어른들도 현재의 학생들과 같은 의문을 품었기 때문입니다. ‘어른이 자신과 똑같은 행동을 해도 처벌을 제대로 받지 않는데 왜 학생은 벌을 받나요?’ 어쩌면 학생은 어른의 행동을 관찰하며 자신의 행동이 어디까지 허용되는지 가늠하는 척도로 삼을지도 모릅니다. ‘저렇게 되고 싶지 않아.’라고 다짐하는 척도인 셈이지요. 그런데 선을 넘은 어른이 제대로 처벌을 받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학생은 어른이 자신에게 가르치는 교육 도덕, 윤리, 사회 등- 을 웃기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현재의 어른이 과거 학생시절에 이렇게 생각하며 교육을 받았다고 생각해 보세요. 당연히 배움을 실천하지 않는 어른으로 성장한 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 과거나 지금이나 어른의 사회와 학생의 사회를 비교했을 때 큰 차이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언제부터 교육이라는 시스템이 생계를 위한 직업을 갖추는 수단으로 전락하고 말았을까요? 자신이 습득한 지식을 토대로 행동양식을 실천해서 더 나은 사회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어쩌면 생계를 꾸리기에 바빠서 자신의 실천의 가치를 낮추어 보는 사람이 많은 사회로 변했을지도 모릅니다. 나 한 명 실천하고 바뀌는 게 없다고 좌절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선을 실천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학생들이 본보기로 삼을 수 있는 어른이 더 많아집니다. 우리는 선순환을 그릴 수 있는 구성원입니다. 주인공 역시 그럴 수 있는 어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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