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우어
천선란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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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우어> 제목을 보자마자 단어 모국어를 떠올렸습니다. 모국어는 한 나라의 언어입니다. 언어는 사람에 의해 문장을 이룹니다. 문장이 모여서 의미를 전달합니다. 그런데 사람마다 언어를 활용하거나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릅니다. 그 차이로 인해 하나의 문장에서도 여러 가지 의미가 탄생합니다. 같은 뜻의 모국어를 배운 사람들 사이에서도 의미가 달라지는 사회입니다. 하물며 서로 다른 외국어로 존재하는 세계는 언어의 차이가 심하게 나타나겠지요. 그 세계는 다수가 주로 사용하는 의미와 소수가 사용하는 의미가 혼재된 언어가 분명히 존재하겠지요. 이 때, 다수는 소수의 의미를 품어줄까요? 아니면 버릴까요? 아마도 소수의 의미조차도 품고 가 주는, 만약 품고 갈 수 없다면 소수가 다수의 세상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세계를 보여줄지도 모른다는 생각하며 읽었습니다.

 

이 소설집에서 가장 큰 울림을 준 작품은 <서프비트>입니다. 이 소설에는 미다스로 지칭되는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미다스는 세계에서 규정한 평범한사람의 기준을 초월한 어떤 능력을 지닌 사람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3명의 미다스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물속에서 숨을 오래 참을 수 있는 이주영. 어두운 세계를 보지도 느끼지도 못하는 이도영. 벽을 통과하는 능력을 지닌 유태이. 이들은 자신의 능력은 어떤 사람이 먼저 알아봤는지에 따라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 다릅니다.

 

이주영과 이도영은 미다스가 모인 하우스라는 단체에 소속되어 자신의 능력을 가다듬고 평범한 이들을 돕는 방식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 대신 이들이 포기한 가치가 있습니다. 바로 자유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생활 일거수일투족을 단체가 관찰할 수 있도록 합니다. 이주영은 자유의 가치를 몰랐고, 이도영은 거리에 버려져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두 사람은 그렇게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 어떻게 교육을 받으면 평범한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데이터를 단체에 제공하는 셈입니다. 이 데이터가 꾸준히 쌓이면 먼 훗날에는 능력을 지닌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선한 능력을 발휘하며 살아갈 토대를 마련되겠지요.

 

반면에 유태이는 자신의 능력을 다루는 방법을 배우지 못합니다. 자신의 능력을 다른 사람에게 숨김없이 보여줍니다. 그 탓에 그 능력을 눈여겨 본 이기적 개인에게 이용당합니다. 유태이는 다른 능력을 지닌 미다스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배우지 못합니다. 자신의 능력을 선하게 발휘할 방법이 있다는 사실을 배우지 못합니다. 자신 같은 사람이 살아갈 방법은 악한 의도에 휘둘리는 방법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유태이 같은 미다스를 이용했던 개인들이 우연히 서로 만나게 된다면 그들은 어떻게 행동할까요? 그들의 능력을 선하게 발휘할 방법을 찾을까요? 아니면 그들이 해 왔던 방식을 집단화할까요?

 

이 의문을 지닌 사람이 이도영입니다. 어두운 세상을 보지도 느끼지도 못했던 이도영은 유태이를 보고 처음 어둡다는 말의 의미를 깨닫습니다. 자신들은 운이 좋아서 선한 의도로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방법을 배우지만, 그렇지 않은 미다스가 있다는 사실을 유태이를 보고 깨닫습니다. 이도영은 그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능력으로 다른 사람을 돕는 방법을 배운 이도영은 유태이를 돕기 위해 움직입니다. 혼자서.

 

이도영은 왜 혼자서 움직였을까요? 하우스에 이런 의문을 제시했다면 하우스에서 도와주지 않았을까요? 어쩌면 이도영은 하우스가 자신이 발견한 미다스를 포용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우스는 아직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선하게 발휘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단체입니다. 그 단계는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미 능력을 악하게 발휘한 미다스를 교육해서 선하게 살아갈 수 있는 시스템은 없습니다. 자신들의 시스템을 벗어난 미다스가 있다는 보고를 받은 하우스는 어떻게 할까요? 그 미다스들을 어떻게 대할까요? 벌을 주며 선한 의도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제대로 교육을 시킬지도 모릅니다. 이와 반대로 이미 나쁜 길로 빠진 미다스들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악용할지도 모릅니다. 이 지점을 우려해서 이도영은 혼자 움직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도영이 하우스에 보고했어야 한다고 합니다. 하우스가 존재한다는 뜻은 미다스는 소수지만 여러 명이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그중에서도 살아가는 방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소수의 미다스가 존재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 소수들을 찾아서 돕는 일에는 돈과 인력이 많이 필요합니다. 그 일을 결코 이도영 혼자서는 할 수 없습니다. 선한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과 미다스들이 모여서 소수의 미다스들을 교육해야 합니다. 말을 듣지 않을 때는 악한 행위를 통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다치고 아픈지 알리고 벌을 주기도 해야 합니다. 그 때서야 선과 악을 구분하고 자신이 선을 넘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렇게 한 명씩 사회를 살아가는 방법을 깨달을 때마다 선한 의도로 살아가고 싶은 미다스들이 많아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들끼리 선하게 살아가고 싶다고 연대하고 싶다고 연대하는 목소리도 나올 겁니다. 자신들을 이용했던 악한 사람들의 존재를 알리면서. 그 때, 그들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고 연대해 주는 사람들과 선한 미다스들의 의식. 그 의식을 갖추기 위해서라도 하우스에 보고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위와 같은 지점에서 소설 <서프비트> 소설집 <모우어>의 인상을 강하게 반영하는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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