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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누군가를 죽였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최고은 옮김 / 북다 / 2024년 7월
평점 :
추리 소설을 좋아하시나요? 추리소설의 제목을 찬찬히 둘러보기도 하시나요? 저는 제목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제목이 힌트가 되어줄 수 있으니까요. 탐정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곳에서 사건이 벌어졌는지, 어떤 사람들의 이야기인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블랙쇼맨과 환상의 여자> <녹나무의 파수꾼> <유성의 인연>을 꼽을 수 있습니다. 먼저 <블랙쇼맨과 환상의 여자>를 볼까요? 블랙은 음지이고, 쇼는 범인을 색출하려고 트릭을 미리 설계해 놓는 탐정일지도 모른다고 추측할 수 있지요. <녹나무의 파수꾼>은 녹나무와 파수꾼 중 어떤 요소가 사건 해결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녹나무가 존재하는 곳에서 사건이 벌어졌겠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유성의 인연>을 볼까요? 인물이나 장소를 구체적으로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러나 유성은 오랜 간격을 두고 발생하는 현상입니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인연을 맺은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피해자인지 가해자인지 알 수는 없지만요.
이제 <당신이 누군가를 죽였다>를 보세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보통 추리소설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인원을 제목으로 드러내지 않습니다. 사건을 해결하는 중요한 열쇠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책은 복수의 사람들이라고 당당히 밝힙니다. ‘누군가를’라는 표현은 여러 명의 사람 중에서 한 명을 불특정으로 짚는 표현입니다. ‘당신’이라는 표현은 여러 명의 사람 중 한 명을 꼭 짚어서 가리킬 때 표현합니다. 즉, 가해자도 피해자도 다수의 사람 중 불특정 한 명이라고 말하는 셈입니다. 그래서 당신이 누군가를 죽인 이유는 하나가 아니며, 저마다 다른 이유로 죽였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에 호기심을 느끼며 이 책을 읽었습니다.
이 책을 다 읽은 뒤, 온라인의 생태계의 부정 작용을 지적한다고 생각합니다. 등장인물들은 범인을 찾는 과정에서 온라인을 활용합니다. 온라인으로 소식을 접하고, 온라인의 반응을 살핍니다. 온라인에서 자신이 범인이라고 밝힌 사람이 등장했을 때, 그들은 그 사람을 범인으로 확정짓기 위해 증거와 근거를 찾습니다. 자신들 중 한 명이 범인으로 밝혀졌을 때, 자신에게 이목이 쏠리는 현상을 피하기 위해서입니다.
자, 그렇다면 등장인물들은 어떤 방법으로 증거와 근거를 찾을까요? 온라인에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기사에 자신의 추리와 견해를 덧붙입니다. 기사들이 사실인지 확인하지도 않고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그곳에 자신의 견해를 덧붙입니다. 견해를 뒷받침하는 근거도 자신의 추측이 전부입니다. 즉, 등장인물들의 대화는 팩트체크가 없는 상상력으로 이루어지는 셈입니다. 무엇이 사실이고 거짓인지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그 대화를 토대로 범인을 추측하는 독자들도 알아차리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구세주가 한 명 나타납니다. 가가입니다. 그는 등장인물들의 대화를 취합하여 사건 당시의 상황을 정리합니다. 그 속에서 근거가 약한 지점을 찾아냅니다. 그 지점을 보완하려고 꾸준히 기사를 읽고 등장인물과 대화를 나누며 새로운 사실을 밝히려고 노력합니다. 이 과정에서 가가는 아래의 사항을 강조합니다.
질문에는 솔직히 대답한다, 즉 거짓말을 하지 말아달라는 뜻입니다. 답하기 싫으시면 그렇게 말씀해 주십시오. 조금이라도 거짓이 섞이면 진상 규명은 멀어집니다. 그 점을 결코 잊지 마시기를 부탁드립니다. (117쪽) |
자신에게 불리한 대답을 해야 할 때, 쓸 데 없이 거짓을 말해서 진상 규명을 방해하지 말고 침묵하라는 뜻입니다. 침묵의 이유는 자신이 찾아낸다는 뜻이기도 하지요. 가가의 노력 덕분에 독자는 온라인 세상에 휩쓸리지 않고 상황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가가의 이런 태도를 개인에게만 적용해야 한다는 말은 애석합니다. 조직의 의견을 결정하는 과정에도 적용해야 합니다. 개인이 모여서 조직이 됩니다. 개인의 의견을 모아서 조직의 의견을 결정합니다. 개인의 의견이 사실뿐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개인의 침묵 속에 사실이 섞여 있을 수도 있습니다. 팩트체크로 사실을 찾아야 합니다. 그 사실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명확할 때, 조직의 의견으로 발표해야 합니다. 그러나 조직이 미처 파악하지 못한 사실이 있을 수도 있고 사실에 대한 근거가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그 점을 보완하려고 다른 의견을 지닌 조직들이 서로 토론과 대화를 합니다. 이 과정이 건강하게 작용되는 세상을 꿈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