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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욕 - 바른 욕망
아사이 료 지음, 민경욱 옮김 / 리드비 / 2024년 3월
평점 :
법이 있고 도덕이 있습니다. 안전과 행복을 위해 마련한 기준입니다. 기준을 준수하며 드러내는 욕망에는 취향이라는 이름을 줍니다. 기준과 어긋나는 욕망에는 법적, 도덕적, 사회적 죄목을 줍니다. 그러나 세상은 변화하고 사람들의 사고방식도 함께 바뀝니다. 인터넷의 보급으로 한 사람의 의문이 다수의 주장으로 이어지는 현상도 생겨납니다. 세상은 이들에게 ‘다양성’, ‘소수자’라는 이름을 줍니다. 지금까지 만들어 놓은 기준과 충돌하지만, 죄로 다스리기에는 ‘자유’라는 선택 안에 속할 여지가 있는 욕망들. 이런 욕망을 지닌 사람들은 평범함이 가장 미덕으로 일컬어지는 세상 속에서 어떤 형태로 자리 잡고 있을까요?
<정욕>은 성(性)적 욕망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입니다. 성(性)적 욕망은 세상이 인간이 본능적으로 타고 났다고 인정하는 유일한 욕망입니다. 올바른 방식으로 드러낸다는 전제 하에 용인되는 욕망입니다. 이 욕망에 대해 이야기할 때, 변하지 않는 기준 하나가 있습니다. 욕망의 대상은 성인이어야 합니다.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인간이어야 한다는 뜻이겠지요. 과거에는 이것에 이성이어야 한다는 기준이 따라다녔지만, 요즘에는 동성, 트랜스젠더 같은 경우를 ‘다양성’이라는 이름 아래 허용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유럽 쪽에는 동성의 결혼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사례도 있고요.
이 다양성의 범주는 이름에 걸맞은 관대함을 지니고 있을까요? <정욕>은 성(性)적 욕망의 대상을 물로 통일시킵니다. 그냥 물이 아니라 변화하는 물입니다. 쏟아지는 물, 솟구치는 물, 튀는 물……. 무형(無形)에 성(性)적 욕망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세상은 그 사람을 어떻게 볼까요? 차라리 각종 미디어의 캐릭터에 성(性)적 욕망을 느끼는 쪽이 더 인간답다고 생각할까요?
소설에는 후반부에 가장 현실적인 인물이 자신이 무형(無形)에 성(性)적 욕망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장면이 나옵니다. 성인이 되어 시간이 꽤 흐른 뒤에야 알게 됩니다. 평범함의 기준 속에서 자란 사람이 사실 평범함·다양성 어떤 기준에도 속하지 못하게 될 때, 세상은 어떤 이름을 붙여줄까요? 태어나면서부터 무형(無形)에 성(性)적 욕망을 지닌 사람은 받아들이고, 성인이 되어 바뀐 사람은 다른 이름을 붙이며 받아들이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정욕>은 다양성을 하나의 예로 들면서 세상의 기준이 얼마나 모호한지 이야기합니다. 다양성이라는 단어의 탄생은 평범한 삶의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현상이 아니라고 합니다. 자신들과 다른 사람이라고 구분하며 멀리하기 위한 명칭일 수도 있다고 깨닫게 합니다. 당신은 타인을 ‘다양성’의 범주에 넣어본 적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