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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나무의 여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24년 5월
평점 :
기록을 다양하게 남길 수 있는 시대입니다.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글뿐만 아니라 사진으로 남기기도 어렵지 않습니다. 무엇을 위해 기록을 남길까요? 현재의 설렘을 남겨두고 싶은 마음 때문입니다. 시간이 흘러서 기록을 보면 가장 설렜던 순간이 되살아나겠지요. 즉, 우리는 서서히 잊히는 순간을 되살리기 위한 장치로 기록을 선택한 셈입니다.
여기 매일 기록을 하는 소년이 있습니다. 소년은 수술 후유증으로 한 번 잠들면 전날의 경험을 전부 잊어버립니다. 하루하루 생활을 이어가려면 기록을 해야만 합니다. 기록의 내용은 무미건조합니다. 제일 감정적인 내용이 스타워즈는 재미있다는 것뿐입니다. 이외의 내용은 새로 만난 사람들, 하루하루 겪은 일을 짤막하게 쓸 뿐이지요. 즉, 오늘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정하려고 기록을 남기는 셈입니다.
소년에게 기록은 설렘일까요? 저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기록을 보면 어제도 똑같은 행동을 했지만, 오늘의 소년이 겪은 일은 아닙니다. 오늘 일은 오늘의 소년이 겪기 때문에 어제의 소년과 다른 감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어제는 재미있게 봤다는 기록이 있어도 오늘의 소년은 재미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감정 표현이 단출해도 자신이 느꼈을 감정을 상상해 보는 설렘으로 다가오지 않을까요?
짧게 보면 일상 속에서 감정을 상상할 수 있는 설렘입니다. 길게 생각하면 어떨까요? 감정이 이어지지 않아서 설렘 이외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상황에 놓일지도 모릅니다. 소년이 소녀와 같이 책을 쓸 때, 상세히 기록하기 시작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소년은 처음으로 실제 느꼈던 감정을 내일이 되어도 되살리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입니다. 기록을 남기는 진정한 이유입니다.
제가 이렇게 독서 기록을 남기는 이유도 똑같습니다. 먼 훗날, 이 책을 읽었던 과거의 제가 느낀 감정을 살필 수 있기에 적습니다. 무엇을 기억하고 싶었는지, 그것이 미래의 제가 어떻게 받아들여서 삶에 적용할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