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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몰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24년 5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도망칠 수 있다면 도망쳐도 좋아’ ‘도망만 치지 말고 마주봐야 해’ 여러분은 어느 쪽에 표를 던지겠습니까? ‘도망’이란 단어는 긍정적•부정적 감정 모두 담긴 단어 같습니다. 사람을 나약하게도 만들었다가 용기를 낼 수 있게도 해 주니까요. 이 소설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도망’ 같습니다.
<두 소녀가 지켜본 도망>
가이 치히로와 하세베 가오리는 각각 어렸을 때 가족의 죽음을 겪습니다. 두 사람은 그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요? 어린 만큼 죽음을 이해하기 어려웠겠지요. 그만큼 주위 어른의 태도를 닮아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가이 치히로의 어머니는 치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마치 치호가 살아서 유학을 떠난 듯 행동합니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장단에 맞춥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치히로는 치호의 죽음에 어머니가 너무 아파서 그런 거라고 납득하며 언니가 살아있는 설정에 동참합니다. 그 기간 동안 치히로는 지켜봤겠지요. 사고일 뿐이라고 납득할 수 없는 어머니의 마음을. 어쩌면 치호가 사고를 당한 원인이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부터 도망치는 어머니의 마음을.
한편, 하세베 가오리는 히로다카를 잃습니다. 히로다카는 영화를 보러 간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하고 집에 돌아오지 않습니다. 히로다카는 스스로 죽었으며, 그 이유는 어머니일 거라는 이야기가 동네에 번집니다. 원래 심약했던 가오리의 어머니는 가오리에게 자신 탓이 아니라고 매달립니다. 그러나 어린 가오리가 봤을 때는 그 소문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히로다카와 자신을 이상에 맞추려고 닦달했던 사람은 어머니이니까요. 히로다카의 죽음 앞에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도망치는 어머니의 모습을 가오리는 어떻게 지켜봤을까요?
<두 사람이 도망친 곳>
치호는 피아노를 배웁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대회용 연주와 자신이 치고 싶은 연주가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 상이점에 슬럼프를 겪습니다. 그것을 극복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철봉 돌기 성공을 도전합니다. 그곳에서 만난 소년. 그 소년과 보내는 시간은 슬럼프와 고민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도록 해 줍니다.
한편, 히로다카는 영화를 좋아합니다. 히로다카는 늘 아내에게 시달립니다. 왜 아직도 이런 시골에서 벗어나게 해 주지 못하느냐, 나를 이렇게 만든 사람은 시어머니가 아니냐는 소리를 듣고 삽니다. 히로다카는 늘 묵묵부답입니다. 그렇게 속으로 삭히기만 해서는 버틸 수 없었겠지요. 그래서 영화를 보러 갑니다. 그곳에서 만난 관람객들. 그들과의 대화가 히로다카에게 다시 살아갈 이유를 마련해 주었겠지요.
치호도 히로다카도 힘든 시간을 겪습니다. 그 시간을 버티어 낼 수 있었던 이유는 잠시나마 도망칠 수 있는 곳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서 둘은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게 아닙니다. 치호는 철봉 돌기를 성공하며 자신감을, 히로다카는 다음 시리즈에 대한 기대감을 마음에 품습니다. 오늘을 보내고 내일을 맞이하는 일상의 힘을 기른 셈입니다.
<힘껏 도망도 쳐요>
어느덧 하반기에 접어든 2024년. 상반기에 세운 목표와 계획을 잘 실천하고 계시나요? 혹시 뜻대로 되지 않아서 속상하지 않나요? 그런데요. 목표나 계획이 너무 크거나 작으면 이루기 힘들다는 말이 있잖아요. 자신의 일상을 이루면서 실천할 수 있는 정도여야 한다는 뜻이겠지요. 그런데 그 일상에서 ‘휴식’을 제외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보세요. 목표를 향해 달려가려면 에너지가 필요하고, 에너지를 충전하려면 당연히 휴식도 필요합니다. 혹시 저장된 에너지까지 끌어 쓰고 있다면 잠시 힘껏 도망도 치세요. 일상적 에너지가 차오르면 저절로 힘이 날 거예요. 치호와 히로다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