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텔카스텐
숀케 아렌스 지음, 김수진 옮김 / 인간희극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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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뒤표지를 보면 메모 상자(제텔카스텐)의 장점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그중 한 문구에 시선이 갔습니다.

 

외부 텍스트를 자기 언어로 번역함으로써 생각의 증발을 막는다.’

 

우리가 접하는 외부 텍스트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신문도 책도 있겠지만, 그것들을 디지털로 접하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디지털로 접하는 모든 글들을 외부 텍스트라고 볼 수 있겠지요. 독자의 시선을 끌기 위해 매체는 핵심만 짧게 요약해서 보여주는 방식을 선택합니다. 독자도 그 사실을 알고 있으므로 깊이 생각하며 읽지 않습니다. 외부 텍스트는 언젠가 어쩌다 우연히 봤던 글에 불과하게 됩니다. 그 기억조차도 빠른 시간 안에 휘발됩니다. 자신에게 필요 없는 정보라면 더 빨리 잊겠지요.

 

필요한 것만 빠르게 주고받는 텍스트의 세계에서 생각은 어쩌면 고리타분하게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생각이 시간 낭비로도 읽히는 세상이고요. 그런 세상에서 생각의 증발을 막는다고 선언합니다. 어떤 면에서 생각이 이롭고, 어떻게 생각하는 습관을 들이는데 메모 상자가 도움이 되는지 알아보고 싶어집니다.

 

메모 상자를 가장 유용하게 활용하는 방법은 링크같습니다. 하나의 메모를 적고 그 주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새로운 메모를 그 메모와 같이 묶어서 철합니다. 하나의 주제에 필요한 정보를 한 군데에 모으는 것이지요. 다양한 출처를 통해 묶인 한 개의 메모 상자 속에서 기존의 틀을 벗어나는 아이디어를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그 아이디어를 뒷받침해 줄 근거를 이미 모아 놓았으니 사람들을 설득하는 글을 쓰기에 무리도 없습니다.

 

문제라면 외부 텍스트를 읽을 때, 자신의 생각과 관련이 있는지 확인하고, 연관되어 있다면 어떤 점이 링크되는지 파악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망각의 동물입니다. 꾸준히 접하지 않으면 서서히 잊습니다. 메모 상자에 적어놓은 생각도 잊을 수 있는 셈이지요. 외부 텍스트를 접할 때, 자신의 생각과 링크될 수도 있는 지점을 그냥 지나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그 상황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 독서(혹은 학습)할 때 밑줄을 긋고, 여백에 메모를 남기고, 플래그잇을 붙입니다. 독서 노트를 작성하면서 진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만 남깁니다. 외부 텍스트를 접하면서 이 과정이 소용없다고 느낀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이 과정을 쓸모없는 과정으로 취급합니다. 처음에는 지금까지 실천해 온 습관을 부정당하는 듯해서 기분이 몹시 나빴습니다. 메모 상자는 얼마나 훌륭한 시스템이기에 학교 때부터 배우는 학습 방법과 저장 능력을 옳지 않다고 여기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이 책을 마지막까지 읽고 나서야 그 의미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생각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짐작해 봅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저자는 꾸준히 사전 지식과 연결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합니다.(186) 사전 지식이 무엇이겠습니까? 학습해서 기억해 둔 내용이겠지요. 그 내용과 새로 접하는 외부 텍스트를 링크하는 과정이 바로 생각입니다. 그런데 밑줄을 치고, 여백에 글을 남기는 행위는 기억하지 않고 나중에 확인하면 되겠지라는 마음을 들게 합니다. , 생각을 하다가 멈춰버리는 경우가 생기는 셈이지요. 이런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거칠게 표현하지 않았을까요?

 

저장 능력보다 검색 능력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저자에게 묻고 싶습니다. 저장 능력이 좋은 사람이 더 뛰어난 사전 지식을 갖추고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더 구체적이고 자세한 답을 얻을 질문을 검색할 수 있는 게 아니냐고. 그래서 저는 밑줄을 칠 것이고, 왜 그곳에 밑줄을 쳤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기록하려고 합니다. 만약 그 과정이 쓸모가 없다고 한다면 <제텔카스텐>에 등장하는 임시 메모로 생각하면 그만이니까요. <메모 독서법><제텔카스텐>을 적절히 섞어서 저만의 메모 상자를 만들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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