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의 감정들 - 나를 살아내는 일
쑥 지음 / 딥앤와이드(Deep&WIde)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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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을 꿈꾸던 때가 있었습니다. 원이 되어 다른 원들과 맞물리며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설령 제가 그 자리를 이탈했을 때, 그 자리는 쉽게 다른 원이 채울 수 있다고 해도요. 가끔 밤하늘을 올려다봅니다. 별이 빛을 뿌립니다. 저 별처럼 재능을 다듬을 수 있었을까 생각합니다.

 

별은 처음부터 오각형이었을까요? 오각형보다 꼭짓점이 많았을까요, 적었을까요? 꼭짓점이 많았다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사각형에 가까울 정도로 많았던 꼭짓점이 굴러가는 동안 다섯 개만 빼고 전부 닳아 없어진 것이지요. 그 닳아 없어진 꼭짓점을 다시 되살리려고 노력하지 않고, 자신에게 남은 꼭짓점을 더 날카롭고 뾰족하게 다듬은 거지요. 다른 원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어서 맞물리지는 못해도, 그 자체로 빛이 나기 때문에 원들에게 길을 밝혀주는 역할을 맡습니다. 원이 되지 않더라도 살아갈 수 있다는 빛이 되어주지요.

 

그런데 제 꼭짓점은 참 웃겨요. 닳을 거면 닳아서 원이 될 것이지, 짧은 선분이 되어 꼭짓점을 유지해요. 선분이 짧으니 다른 원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맞물릴 수 있어요. 그렇게 맞물리다 선분이 길어지면 다른 원이 절 튕기지요. 그러면 또 다시 굴러서 선분의 길이를 짧게 만들고, 다시 튕기고. 이것을 반복합니다. 별처럼 두드러지는 꼭짓점이라도 있었다면 그걸 날카롭게 다듬을 텐데, 그런 것도 아니고요.

 

원도, 별도 될 수 없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개척해 놓은 길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 때마다 저 같은 사람이 너무 많은데, 다들 원이 되기 바빠서 별이 될 생각을 하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또 한 번 밤하늘을 올려다봅니다. 별빛을 보며 다시 구르자고 결심합니다. 이번에는 다섯 개의 꼭짓점만 남길 수 있다는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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