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 밀크
데버라 리비 지음, 권경희 옮김 / 비채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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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아는 행동의 자유를 잃은 로즈를 위해 동분서주합니다. 로즈와 함께 병원을 돌아다니며 진단을 받게 하고 약을 먹입니다. 그렇게 해야 로즈가 잠잠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약이 없었다면 소피아도, 로즈도 무기력해지고 히스테리를 부렸겠지요. 서로의 평온을 위해 약을 필수로 챙겨야 합니다. 그 과정은 세상에서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느끼게 합니다. 성실함. 성실함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속마음을 짐작조차도 못하고 소피아는 로즈를 차에 태우고 움직입니다.

 

소피아가 운전을 할 때, 로즈는 잠잠히 있다가도 훈수를 둡니다. 왜 갑자기 훈수를 두는지 짐작할 수 없습니다. 그저 어떤 자극이 로즈를 자극했으리라 짐작할 따름입니다. 그나마 약을 먹고 있기 때문에 덜 자극을 받고 덜 거칩니다. 약을 먹어야만 버텨내는 로즈는 마치 소피아의 괴로운 기억 같습니다. 기억이 어린아이일 때는 소피아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었기에 그냥 같이 살며 조용한 어른으로 키운 거지요. 이제 노인이 된 기억은 소피아의 마음 한 구석을 차지한 채 소리를 냅니다. 난 많이 늙었고 힘드니 소피아, 네가 날 지켜야 한다고.

 

소피아는 이제 선택해야 합니다. 자신의 차에서 로즈를 내리게 할지 계속 같이 갈지. 나이가 들고 약에 내성이 생겨서 약발도 듣지 않는 로즈와 남은 여정을 같이 보내기는 꽤 힘들겠지요. 그 모든 걸 떠안을 각오를 소피아는 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로즈의 말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단단한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그 또한 만만한 일은 아니지요.

 

문득 <홀로서기 심리학>(하라E. 필딩 지음, 메이븐)이 떠오릅니다. 평소에 얌전하던 승객(감정)도 자신이 탑승하게 된 계기와 비슷한 자극을 느끼는 순간, 운전자에게 난동을 부린다는 겁니다. 그 사태를 진전시키려는 노력이 방어기제를 구축한다고 합니다.(78, 홀로서기 심리학) 소피아는 방어기제를 높이 쌓은 사람입니다. 그 경계를 허물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고메스 의사는 소피아에게 다른 방식으로 살아갈 준비를 해야 한다(192)고 충고합니다. 케케묵은 감정을 빨리 털어버리라는 뜻이겠지요. 로즈를 위해 자신이 이렇게까지 희생했다고 곱씹을수록 희생의 길만 보일 테니까요. 부디 소피아가 약에 사로잡히지 않는 길을 선택하기를 바랍니다, 간절히.

당신에게 운전면허가 있다고 생각해도 될까요?...(중략)...당신은 당신 어머니를 방패 삼아 스스로 살아갈 자기 인생을 막고 있습니다. 나는 당신들 둘 다에게서 약을 지워버렸습니다. 집중하세요. 당신은 다른 방식을 찾아야 합니다. - P192

"소피아, 우리 모두 이 악몽에서 깨어나 약을 먹어야 해요." 나는 어머니의 약 목록에서 알약을 삭제한 고메스가 생각났다. 하지만 계모에게 이 문제를 의논하진 않았다. - P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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