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록
듀나 지음 / 래빗홀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집단이라는 괴물 앞에서 개인이 소거되는 과정을 그린, 하드보일드 SF 마니아들을 위한 듀나 월드의 가장 거칠고 강렬한 원형 #도서협찬 #서평단

-
🕵️ 20세기 말, 통일되지 않은 한국과 실패한 공산주의 이후의 중국과 러시아가 뒤엉킨 이곳은 마약과 테러와 범죄가 일상처럼 스며든 가상 도시 의천. 어느 날부터 이 음습한 도시의 골목에서 머리가 잘린 시체들이 발견되기 시작한다. 단순한 연쇄 살인인가. 혼란과 광기 속에서 의천의 밤은 점점 더 깊은 어둠으로 빠져든다.

_
📜 이 작품은 한국 SF의 대체 불가능한 아이콘, 듀나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다. PC통신 시절 연재되었던 이 초기작은 우리가 익히 아는 작품들과는 사뭇 다른 결을 보여준다. 훨씬 더 거칠고, 뜨겁고, 날것의 에너지가 꿈틀댄다. 이것은 듀나라는 작가가 어떻게 지금의 독보적인 세계를 구축하게 되었는지 보여주는 빅뱅 이전의 혼돈과도 같다.

비정한 도시의 냉기와 날것의 전율이 공존하는 하드보일드 SF를 사랑한다면, 당신은 필연적으로 이 책에 매료될 수밖에 없다. 듀나의 오랜 팬은 물론, 묵직한 디스토피아 느와르에 목마른 장르 독자들의 갈증을 단숨에 해소해 줄 걸작이다.

제목 ‘몰록(Μόλοχ)’은 고대 신화 속에서 어린아이를 제물로 바치기를 요구했던 신의 이름이다. 소설 속에서 몰록은 거대한 시스템이자 집단을 상징한다. 주인공 미향은 학교라는 작은 사회에서 아웃사이더로 지내며 사람들이 집단을 형성하고 그 안에서 안도감을 느끼는 동시에 서서히 ‘나’라는 고유한 자아를 삭제당하는 과정을 목격한다.

작가는 성별도 나이도 얼굴도 공개하지 않은 채 오직 텍스트로만 존재하는 자신의 삶처럼, 시스템에 포획되지 않으려는 처절한 몸부림을 이 소설에 담았다. 내가 하는 생각은 진짜 나의 것인가, 아니면 집단이 주입한 환영인가. 이 질문은 거대한 시스템의 부속품으로 전락해가는 현대인들에게 서늘한 경종을 울린다. <몰록>은 단순한 스릴러가 아니라, ‘우리’라는 이름 뒤에 숨어 ‘나’를 지우려는 세상에 던지는 작가의 선전포고다.

_
🗝️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러 개 그룹에 동시에 속해 있어요. 우선 저 아저씨를 보세요. 일단 한국인이고, 남자이고, 알코올 중독자인 데다가, 축구광이지요. 벌써 넷이에요. 몸과 정신은 하나지만 네 개의 그룹은 저 아저씨를 각자 다른 방식으로 동시에 지배해요.” -p.200

우리는 소속감을 위해 기꺼이 가면을 쓴다. 하지만 그 가면들이 내 얼굴을 완전히 덮어버린다면, 가면 아래 진짜 내 얼굴은 남아있을까? 집단이 주는 안정감이라는 마약에 취해 스스로 생각하기를 멈춘 순간, 우리는 시스템의 먹이가 된다.

_
🔦 소속된 집단의 논리와 내 안의 신념이 충돌할 때, 당신은 침묵했는가 아니면 저항했는가?

🔦 개인의 고유성을 집어삼키고 획일화를 강요하는, 우리 시대의 ‘몰록’은 무엇인가?

🔦 당신의 취향과 생각 중, 외부의 영향 없이 온전히 ‘스스로’ 만들어낸 것은 몇 퍼센트나 되는가?

🔦 당신은 몇 개의 그룹에 의해 동시에 지배되고 있는가?

출판사 래빗홀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눈먼 암살자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1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 민음사 / 201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명망 있는 집안의 장녀 아이리스 체이스는 가문의 몰락을 막기 위해 열여덟 살의 나이에 사업가 리처드 그리픈과 정략결혼을 한다. 그 결혼은 구원이 아니라 서서히 진행되는 굴복의 과정이었다. 아버지를 잃고, 집을 잃고, 곁에는 오직 여동생 로라만이 남았다. 그러나 리처드의 지배 아래에서 두 자매의 운명은 엇갈리고, 로라는 끝내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세월이 흘러 노년의 아이리스는 붕괴된 기억을 붙잡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한다. 허구와 현실, 기억과 글쓰기가 서로의 경계를 녹이며 아이리스의 진짜 고백이 서서히 드러난다.

_
📜 읽는 내내 분노와 슬픔이 번갈아 밀려왔다. 리처드와 위니프리드, 그 집안의 가스라이팅은 너무도 일상적이어서 오히려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들은 젊은 여성의 순수함과 두려움을 이용해 권력을 유지했고, 아이리스와 로라는 그 속에서 서로를 잃어갔다.

애트우드는 ‘여성의 침묵’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아주 냉정하게 보여준다. 아이리스는 살아남기 위해 잠들었고, 로라는 깨어 있으려다 세상에서 사라졌다. 아이리스의 회고는 일종의 참회의 일기처럼 읽힌다. 젊은 시절의 무력함, 사랑을 택하지 못했던 죄책감, 그리고 로라를 지키지 못한 슬픔.

현재의 아이리스가 회고를 시작하면 과거의 장면이 떠오르고, 그 장면 속에서 또 다른 이야기, 즉 소설 속의 <눈먼 암살자>가 펼쳐진다. 이중 구조와 복수의 서사가 얽히면서 독자는 점점 기억의 미로 속으로 들어간다.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상상인지 구분되지 않지만, 그것이 바로 애트우드가 말하는 진실의 형태다.

리처드의 폭력과 위니프리드의 조종은 단지 한 여성을 침묵시키는 장치로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사회가 여성의 언어를 빼앗는 방식의 은유다. 아이리스는 너무 오랫동안 ‘기록되지 않은 존재’로 살아왔다. 그녀는 글을 통해 처음으로 자기 목소리를 회복한다. 그녀의 문장은 침묵의 재건이며, 기록되지 못한 자들을 위한 추모의 노래다. 로라는 아이리스의 기억 속에서 다시 살아난다. 그녀는 글 속에서 잠들지 않는다.


_
🗝️ 나는 우리 둘의 사진을 주워 들었다. “나는 왜 푸른색이야?” ”언니는 자고 있으니까.” 로라는 말했다. -1권 p.338

🗝️ 그녀는 이제 정말로 잠에서 깨어난다. -2권 p.315

그녀는 글을 통해 ‘깨어 있는 자’가 되고자 한다. 로라의 이름으로 출간된 <눈먼 암살자>는 결국 아이리스 자신의 고백서다. 자신의 목소리를 타인의 이름으로 남겨야만 했던 한 여자의 역설적인 복수.

이 작품의 구조는 미로처럼 복잡하지만 퍼즐 조각이 맞춰질 때의 쾌감은 압도적이다. 아이리스의 회고록, 신문 기사, 로라의 소설이 교차하며 하나의 진실을 향해 나아간다.

_
🔦 아이리스의 회고는 죄의 고백일까, 아니면 자기 구원의 시도일까

🔦로라가 깨어 있는 동안 아이리스는 왜 잠들어 있어야 했을까

🔦 진실을 기록하는 일이 곧 죄의 고백이 된다면, 우리는 어디까지 쓸 수 있을까

.

#눈먼암살자 #마거릿애트우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리아스
호메로스 지음, 이준석 옮김 / 아카넷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 인간의 맹렬한 분노가 전쟁터를 불태우고 결국엔 뜨거운 눈물로 식어가는 과정을 담은 인류 최초이자 최고의 서사시. 두꺼운 분량에 겁먹지 말고 도전한다면 예상치 못한 몰입감을 선물 받을 것이다.

-
-
🕵️ 누구나 트로이 전쟁을 알지만 <일리아스>의 진짜 얼굴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이 방대한 서사시는 10년에 걸친 전쟁의 기록이 아니다. 전쟁의 막바지, 그중에서도 단 4일의 짧고도 강렬한 시간을 다룬다.

모든 것은 한 영웅의 ‘분노’에서 시작되었다. 그리스 연합군 최고의 전사 아킬레우스. 그가 모종의 이유로 전장에서 이탈하고 칼을 거두자, 승리의 여신은 트로이 쪽으로 미소를 짓기 시작한다. 인간의 오기와 신들의 변덕이 뒤엉킨 전장은 피비린내 나는 살육터로 변해간다.

우리가 아는 ‘트로이 목마’나 ‘아킬레스건’의 최후는 이 책에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두꺼운 벽돌책은 도대체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가. 신들마저 참전하여 인간을 장기말처럼 부리는 이 잔혹한 전쟁터에서, 영웅들은 무엇을 위해 싸우고 또 죽어가는가.

_
📜 두껍고 오래된 고전이라는 선입견과 달리 <일리아스>는 놀라울 만큼 속도감 있다. 밤을 새워 이틀 만에 완독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야기가 지루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 생생했기 때문이다. 특히 한빛비즈에서 출간한 <만화로 보는 일리아스>는 서사의 길잡이 역할을 훌륭하게 해낸다.

놀랍게도 책장을 넘기는 순간 지루할 틈이 없다. ‘누구의 아들’이라는 수식어와 끝없이 나열되는 엑스트라의 이름들은 지루한 목록이 아니라, 마치 스포츠 중계 캐스터가 선수를 호명하듯 생생한 현장감을 불어넣는다. 고대 그리스의 음유시인이 청중을 사로잡기 위해 구사했던 이 화법은 3천 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

<일리아스>는 트로이 전쟁 전체를 다루지 않는다. 아킬레우스가 죽는 장면도 없다. 대신 시선은 한 영웅의 분노에 집요하게 머문다. 모욕에서 비롯된 분노는 철수로 이어지고 그 공백은 더 큰 학살을 낳는다. 친구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은 분노를 절정으로 밀어 올리고 헥토르의 죽음으로 폭발한다. 그러나 서사의 마지막은 승리의 환호가 아니다. 아들의 시신을 돌려달라며 무릎 꿇은 프리아모스 앞에서 아킬레우스는 처음으로 분노를 내려놓는다.

이 작품에서 전쟁은 배경에 가깝다. 중심에는 인간의 감정이 있다. 신들조차 체면과 편애 때문에 인간의 싸움에 끼어든다. 누군가를 돕고 누군가를 넘어뜨리는 신들의 개입은 전쟁이 정의나 명분이 아니라 감정과 욕망의 연장선임을 드러낸다. 그래서 <일리아스>는 영웅담이기보다 인간학에 가깝다. 분노가 어떻게 공동체를 파괴하는지 그리고 그 분노를 받아들이고 애도할 때 비로소 평온이 찾아온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_
🗝️ “이때 만일 포이보스 아폴론이 튀데우스의 아들을 향해 원한을 품고 그의 두 손에서 빛나는 채찍을 내던지지만 않았어도, 그는 에우멜로스를 앞질렀거나, 그와 각축을 벌였을 것이다.” -p.692

트로이 전쟁은 인간만의 싸움이 아니다. 신들의 사소한 감정과 체면이 전황을 바꾸고 인간의 운명을 뒤흔든다. 전쟁이 얼마나 부당한 감정의 집합체인지 이 한 문장이 증명한다.

_

🔦 신들이 전쟁에 직접 개입하여 승패를 바꾸는 장면들을 보며, 인간의 자유의지와 정해진 운명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고 느꼈는가?

🔦 <일리아스>가 전쟁의 승패가 아닌 적장 프리아모스와 아킬레우스의 만남(화해)으로 끝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 3천 년 전 고대 그리스인들이 열광했던 이 이야기가 현대의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울림을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리아스 #호메로스 #아카넷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지막 방화 TURN 8
조영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면의 위험한 불씨를 안고 차가운 진실을 향해 걸어가는 형사의 고군분투. 사회의 어둠과 개인의 트라우마를 동시에 조명하며 끝내 인간을 응원하게 만드는 뜨거운 사회파 미스터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지막 방화 TURN 8
조영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면의 위험한 불씨를 안고 차가운 진실을 향해 걸어가는 형사의 고군분투. 사회의 어둠과 개인의 트라우마를 동시에 조명하며 끝내 인간을 응원하게 만드는 뜨거운 사회파 미스터리

_
🕵️ 평택경찰서 강력1팀 팀장 함민. 그는 탁월한 수사 감각으로 ‘셜록 함스’라 불리는 베테랑 형사이지만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위험한 욕망을 품고 산다. 수사가 막히고 풀리지 않을수록 어딘가에 불을 지르고 싶어진다는 충동. 중학생 시절부터 시작된 이 불온한 욕망은 1993년 대전 엑스포에서의 어떤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30년의 세월 동안 그를 괴롭혀온 불꽃의 기억. 함민은 사건을 해결함으로써 내면의 불을 끄려 애쓴다. 과연 그날의 진실은 그를 구원할 동아줄일까 아니면 그를 파멸로 이끌 도화선일까. 위태로운 본능 위에서 줄타기를 하는 형사의 수사가 시작된다.

_
📜 <마지막 방화>는 표면적으로는 사회파 미스터리의 정공법을 따른다. 촉법소년 문제, 층간소음, 미세폭력, 청소년 마약, 전세사기까지. 여섯 개의 사건은 지금 한국 사회의 균열을 정확히 겨냥하며, 기차 시간표 트릭이라는 정통 추리의 장치까지 빠짐없이 챙긴다. 사건 해결의 쾌감만 놓고 본다면 충분히 완성도 높은 본격 추리물이다.

그러나 이 소설의 진짜 미스터리는 범인이 아니다. 셜록 홈스처럼 유능하지만 동시에 불을 꿈꾸는 형사 함민 그 자신이다. 사건이 꼬일수록, 정의가 지연될수록, 함민의 방화 충동은 더 선명해진다. 정의를 집행하는 손과 불을 지르고 싶은 손이 같은 몸에 달려 있다는 설정은 독자를 불편한 자리로 밀어 넣는다. 우리는 그의 추리를 따라가며 사건이 해결되기를 바라면서도 동시에 그가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게 된다.

함민의 충동은 단순한 범죄 기질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것은 지키지 못했다는 감각, 늦었다는 자책, 그리고 진실에 도달하지 못했을 때 발생하는 극도의 무력감에 가깝다. 그래서 그의 방화 욕망은 파괴라기보다 도피이고 자해에 가까운 선택처럼 느껴진다. 이 지점에서 소설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모두 삶이 막힐 때 모든 것을 태워 없애고 싶다는 충동을 품지 않는가.

그럼에도 함민은 도망치지 않는다. 불을 지르지 않기 위해 그는 오히려 더 집요하게 사건 속으로 들어간다. 진실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이 자신을 구하는 유일한 방법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독자는 어느새 형사의 윤리보다 인간의 취약함에 더 깊이 공감하게 된다. <마지막 방화>는 범죄를 다루지만 끝내 인간이 어떻게 자기 자신을 범죄로부터 지켜내는가에 관한 이야기다.

_
🗝️ “함민이 언제 불을 지르려 드느냐, 그건 사건을 해결하지 못했을때야. 즉, 함민이는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 탓에 기이한 행동을 하는게 아닐까 싶어.” -p.150

불을 지르고 싶은 마음은 악의가 아니라 실패에 대한 죄책감에서 비롯된다. 함민의 방화 충동은 무언가를 부수고 싶은 욕망이 아니라 끝내 지키지 못한 것들에 대한 응답처럼 보인다.

_
🔦 소설이 다루는 다양한 사회 문제들 중 가장 현실적으로 다가왔거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무엇인가?

🔦 함민에게 ‘방화’가 죄책감의 발현이자 해소 수단이라면 나에게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마지막 방화’와 같은 수단은 무엇인가?

.
한겨레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마지막방화 #조영주 #한겨레출판 #턴시리즈 #서포턴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