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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암살자 2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1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 민음사 / 2010년 12월
평점 :
🕵️ 명망 있는 집안의 장녀 아이리스 체이스는 가문의 몰락을 막기 위해 열여덟 살의 나이에 사업가 리처드 그리픈과 정략결혼을 한다. 그 결혼은 구원이 아니라 서서히 진행되는 굴복의 과정이었다. 아버지를 잃고, 집을 잃고, 곁에는 오직 여동생 로라만이 남았다. 그러나 리처드의 지배 아래에서 두 자매의 운명은 엇갈리고, 로라는 끝내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세월이 흘러 노년의 아이리스는 붕괴된 기억을 붙잡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한다. 허구와 현실, 기억과 글쓰기가 서로의 경계를 녹이며 아이리스의 진짜 고백이 서서히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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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는 내내 분노와 슬픔이 번갈아 밀려왔다. 리처드와 위니프리드, 그 집안의 가스라이팅은 너무도 일상적이어서 오히려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들은 젊은 여성의 순수함과 두려움을 이용해 권력을 유지했고, 아이리스와 로라는 그 속에서 서로를 잃어갔다.
애트우드는 ‘여성의 침묵’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아주 냉정하게 보여준다. 아이리스는 살아남기 위해 잠들었고, 로라는 깨어 있으려다 세상에서 사라졌다. 아이리스의 회고는 일종의 참회의 일기처럼 읽힌다. 젊은 시절의 무력함, 사랑을 택하지 못했던 죄책감, 그리고 로라를 지키지 못한 슬픔.
현재의 아이리스가 회고를 시작하면 과거의 장면이 떠오르고, 그 장면 속에서 또 다른 이야기, 즉 소설 속의 <눈먼 암살자>가 펼쳐진다. 이중 구조와 복수의 서사가 얽히면서 독자는 점점 기억의 미로 속으로 들어간다.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상상인지 구분되지 않지만, 그것이 바로 애트우드가 말하는 진실의 형태다.
리처드의 폭력과 위니프리드의 조종은 단지 한 여성을 침묵시키는 장치로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사회가 여성의 언어를 빼앗는 방식의 은유다. 아이리스는 너무 오랫동안 ‘기록되지 않은 존재’로 살아왔다. 그녀는 글을 통해 처음으로 자기 목소리를 회복한다. 그녀의 문장은 침묵의 재건이며, 기록되지 못한 자들을 위한 추모의 노래다. 로라는 아이리스의 기억 속에서 다시 살아난다. 그녀는 글 속에서 잠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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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우리 둘의 사진을 주워 들었다. “나는 왜 푸른색이야?” ”언니는 자고 있으니까.” 로라는 말했다. -1권 p.338
🗝️ 그녀는 이제 정말로 잠에서 깨어난다. -2권 p.315
그녀는 글을 통해 ‘깨어 있는 자’가 되고자 한다. 로라의 이름으로 출간된 <눈먼 암살자>는 결국 아이리스 자신의 고백서다. 자신의 목소리를 타인의 이름으로 남겨야만 했던 한 여자의 역설적인 복수.
이 작품의 구조는 미로처럼 복잡하지만 퍼즐 조각이 맞춰질 때의 쾌감은 압도적이다. 아이리스의 회고록, 신문 기사, 로라의 소설이 교차하며 하나의 진실을 향해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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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의 회고는 죄의 고백일까, 아니면 자기 구원의 시도일까
🔦로라가 깨어 있는 동안 아이리스는 왜 잠들어 있어야 했을까
🔦 진실을 기록하는 일이 곧 죄의 고백이 된다면, 우리는 어디까지 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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