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가 돌아왔다, 소설가 김영하 (박혜진이 만난 사람)




 

박혜진이 만난 사람 2010년 8월 16일 월요일

66회 : 오빠가 돌아왔다, 소설가 김영하 

박혜진 세상에는 참 대단하다 싶은 직업들이 꽤 있습니다. 끝없이 이야기를 펼쳐가는 소설가도 그 중 하난데요. 이런 이야기를 이렇게 써야겠다는 아이디어, 영감은 도대체 언제 어떻게 생겨나는 걸까요?

글솜씨처럼 말솜씨도 재치가 넘치는 소설가 김영하 씨가 오늘 이야기 손님인데요. 이야기와 정보가 넘쳐도 소통은 어렵고, 또 갖가지 불안감은 가시지 않는 요즘 우리 사회. 최근 소설집에 담은 내용에는 공감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보편적이면서도 독특하고, 진지하면서도 발랄하게 풀어내는 세상 이야기. 김영하 작가와 곧 시작합니다.

  「언젠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햄릿이라는 인물이 비현실적이라는 독자의 질문에 “이보게 젊은이! 햄릿은 내 앞에 서 있는 자네보다 훨씬 더 살아있네.”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 대목을 읽다가 문득 나라는 인간과 소설과의 관계 역시 이와 비슷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책상 앞에 앉아있는 나라는 존재는 어지러이 둔갑하는 허깨비 같은 존재일지 모른다. 그보다 더 살아있는 것은 지금껏 내가 쓴 것들일 것이다. 」

최근 발표된 소설집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에 있는 작가의 말 중 일부였습니다.
오늘 손님은 김영하 작가인데요. 어서오십시오,

김영하 네, 안녕하세요.
 

박혜진 네, 반갑습니다. 실제로 뵈니까 글쓰시는 것 같지 않은 이미지시네요.

김영하 글쓰는 분들의 이미지는 어떤데요?

박혜진 글쎄요. 뭐랄까. 뭔가 자기 고립에 빠져서… 뭔가 그 창조하는 일을 하시니까… 창작의… 그 영역은… 뭔가는 조금 일반적이지 않을 것 같은. 근데 샐러리맨 같이 보인다고 하면, 어떤 느낌이냐면 일상의 생활 속에 여전히 같이 숨쉬고 있는 듯한…

 

김영하 여전히 자기 고립에 빠져서 저만의 골방에 틀어 박혀 있고요. 뭔가 이런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거나 이럴 때는… 아바타를 보내죠. (웃음)

 

박혜진 지금은 아바타신가요?

김영하 네, 아바타입니다. (웃음) 물론 제 모습이 아니예요. 진짜 제 모습은 좀전에 말씀하셨지만 제가 쓴 소설이 어두운 내용들이 많은데. 그게 진짜 저의 본 모습이구요. 여기 나와 있는 것은 작가 김영하의 아바타입니다.

박혜진 어… 저도 제가 아니예요. (웃음) 저도 저의 아바타예요.

김영하 근데 저의 선배 작가가 전에 그런 말을 하신 적이 있어요. 작가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으면 눈에 안 띄어야 한데요. 음,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지하철에서 서 있으면 그냥 조용히 출근하는 사람들처럼 보이고. 예비군 훈련을 받고 있으면 예비군처럼 보이고. (웃음) 그래야지, 아 예비군 훈련받는 작가구나. 또는 출근하는 작가구나. 이런 게 보이면 안되지 않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박혜진 어쩌면 모든 인간에게는 다양한 모습의… 저희가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아바타가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저희가 그렇듯이. (웃음) 아바타끼리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눠보죠.

김영하 네. (웃음)

박혜진 그 <오빠가 돌아왔다> 이후 6년 만에 소설집. 이번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라는 책을 내셨는데. <오빠가 돌아왔다>가 나왔을 때는 ‘오빠’ 김영하가 돌아왔다는 식으로 그 제목을 사용해서 소개가 많이 됐었죠. 이번에도 그렇게 소개를 할 수 있을까요?

김영하 어… 뭐 굳이 패러디를 하자면 기사같은 데는 그렇게 나오더라구요. ‘김영하에게는 지난 몇 년 간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뭐 이렇게도 나오는데. 저는 계속 소설을 쓰고 있었구요. 소설집으로는 6년만인데 그 사이에 장편 소설은 <빛의 제국>이라는 장편하고, 또 <퀴즈쇼>라는 장편을 꾸준히 냈고요. 단편 소설로는 오랜만에 독자들을 만나게 되는 거죠.

박혜진 예. 어느 분은 이 책을 읽고, ‘김영하스럽지 않다!’ 이런 이야기도 하시대요?

김영하 그래요? 김영하스럽다고 그러던데요.

박혜진 그래요? (웃음) 다들 이 작품에 대한 느낌은 다 달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 김영하스럽지 않다는 이유에 대해서 제가 잠깐 여쭈었더니 ‘너무 일상 속의 주제다!’ 그러니까 컨텐츠 자체가, 스토리 자체가 일상의 이야기다. 사실 그 전의 나왔던 작품들은 좀 더 창조적인 영역의 상상력과 스펙트럼이 좀 더 넓었지 않았었느냐. 뭐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김영하 네. 그런데 제가 지금까지 쓴 작품이 여러 어떤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고 있는 소설들이 많아서요. 많은 분들이 저에 대해서 각기 상이한 인상들을 갖고 계세요. <검은 꽃>같은 소설을 읽으신 분들은 김영하에 대해서 뭐랄까 힘있는 남성적 스토리를 쓴다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시고. <퀴즈쇼>같은 소설을 보신 분들은 젊은이들의 삶과 일상을 그리는 작가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신데. 어쨌든 세상에 나간 제 소설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다양한 인상을 주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늘 참 경이로워요.

박혜진 참 재미난 일들인데.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라는 작품에 13편이 들어 있는데. 그 중에 한 두 작품만 어떤 이야기들인지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가장 흥미롭게 썼다하는 부분?

 

김영하 네. 첫 번째 수록된 소설이 ‘로봇’이라는 소설이거든요? ‘로봇’은 어떤 여자가 출근을 하는,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일상에서 시작하죠. 그런데 어떤 남자가 접근을 하는데, 그 남자는 자신을 로봇이라고 주장하거든요.

박혜진 아까 전에 김영하 작가가 아바타라고 이야기하신 것과 어떤 비슷한 맥락인가요? (웃음)

김영하 네. 그렇습니다. 로봇이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그런데 이 남자가 왜 자기가 로봇인가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는데. 로봇의 3원칙이 있습니다. 아이작 아시모프가 이야기한 건데요. 예를 들면 로봇은 이 3가지 원칙을 반드시 충족시켜야 되요. 그것은 뭐냐하면… ‘인간을 해쳐서는 안된다.’ 예를 들면 청소 로봇이 있잖아요? 청소 로봇은 청소를 해야지. 그리고 ‘너무 위험하게 만들면 안되는 거’예요. 아이들조차도 해치면 안되죠. 그 다음에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되요. 이게 두 번째 원칙입니다. 청소하라는 명령을 내리면 청소를 해야지 툴툴 거린다거나 뭘 맨날 청소를 시켜 이런 말을 하면 안되는 거죠. 세 번 째는 ‘이 두 가지 원칙을 지키는 한에서 자기를 보호해야’ 해요. 로봇이 스스로를. 그런데 이런 것은 세 개가 잘 맞는 것 같지만 (어떤) 딜레마를 만들어 내거든요.

그런데 이 소설에서 로봇이라고 주장하는 남자는… 이 여자를 사랑하지만 이 여자가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 떠나요. 왜냐하면 이 사랑이라는 것이 너무 위험한 지경에 처해 있기 때문에 당신과 내가 사랑을 계속하면 인간인 당신을 해칠 수 있다는 거예요.

박혜진 아… 2원칙에…

김영하 2원칙에 위배되는 거죠. 그러면 나 자신도 보호하기가 어려워지고. 모든 원칙들이 상충하는 거예요. 그래서 사랑하기 때문에 떠난다는 매우 오래된 거짓말을 하면서 이 남자는 떠나죠. 뭐 독자들은 알 수가 없는 거예요. 실제 로봇이었는지 아니면 로봇이라고 이렇게 거짓말을 하는 어떤 그런 바람둥이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하여간의 저의 흥미를 끌었던 것은 로봇 3원칙이라는 아이작 아시모프의 공학적 원칙과 사랑하기에 헤어진다는 매우 오래된 이 연인들의 거짓말. 이 두 가지가 한 소설에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봤는데. 다들 재밌어 하시더라구요.

박혜진 사랑하기에 헤어진다는 오래된 거짓말이라고 표현하신 걸 보면 그거는 믿지 않으시는 군요.

김영하 네. (웃음) 믿고 싶은 거짓말이죠. (웃음)

박혜진 아무튼 어느 날 갑자기 목소리를 잃어버린 가수에 관한 이야기. 또 휘발유 냄새가 나는 아이스크림을 먹은 어떤 부부의 이야기. 현실감이 없는 이야기 같기도 하면서 또 주변에 있을 것 같은. 나도 이런 일을 당하면 마치 이렇게 (일이) 전개될 것 같은.

김영하 그 아이스크림 이야기는 실화예요. 제가 겪은 이야기입니다.

박혜진 아, 실화예요?

김영하 제 소설의 특징이 실화인데도 과연 이런 일이 있을까하는 식이기도 하고. 또 너무 이상한 일인데 어쩐지 일어날 것 같기도 하고 좀… 그런 거라고들 말씀을 하세요. 그런데 정말 아이스크림에서 휘발유 냄새가 나더라구요. 그래서 그 제과 회사의 소비자 보호 센터인지 거기에 전화를 했어요. 그런데 그 소설에서처럼 정말로 어떤 부장님이 오셨어요. 이거 어떻게 된 거냐고 물어봤더니 제가 한번 먹어보겠습니다 하더니 하나씩 까 드시더니 다 드셨어요. (웃음) 정말!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말씀만 하시면서 우물우물 다 드시면서 엄청난 초콜렛 선물 세트를 저에게 안기고는 가버리신 거예요!

*

박혜진 그 진짜 제목처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이게 암시하는 게 있을까요?

김영하 뭐… 저도 좀전에 아이스크림 사례에서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현대 사회가 복잡해지니까요. 많은 일이 현대적 차원에서 개인의 차원에서 벌어지는데요. 우리가 그 사건을 깊이 숙고하거나 내면화하기도 전에 지나가버립니다.

박혜진 그렇죠.

김영하 왜냐면 또 다른 ‘사건’들이 있거든요. 그 사건을 또 생각을 해야되는데. 로빈손 크루소를 좀 생각을 해봤어요. 로빈손 크루소가 정말 두려워하는 건 뭐냐면 자기가 무지하다는 걸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나만 무지한 건 아닌지를 두려워하는 거거든요. 이 섬에 대해서 자기가 뭘 모르고 있다는 걸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이 섬에 대해서 나만 모르고 있는 게 아닌가. 어딘가 저 어둠 속에 (어둠을) 잘 알고 있는 원주민들이 있어서 자기를 지켜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인데, 저는 현대인들의 불안도 그거라고 생각해요. 많은 분들이 자기 주위에 일어나는 일들의 진짜 의미에 대해서 사실은 모르고 있는데요. 자기만 모르는 거 같아서 그냥 덮어두고 지나가는 거죠.

박혜진 아는 척하거나

김영하 근데 그런 사람들이 많아요. 근데 그러다보면 마음 속 깊은 곳에 불안 같은 그런 게 쌓인다고 저는 보고 있거든요? 그래서 이런 제목을 정해봤어요.

박혜진 네. 그래서 사람들이 더 많은 정보를 흡수하고 정보를 제공하는 매체도 얼마나 많아졌어요.

김영하 네. 그렇죠.

박혜진 근데 더 불안이 늘어난다는 이게 참 아이러니하다는 거죠.

김영하 맞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개인들이 맞닥뜨리는 불안은 그거죠. 정보를 처리하는 뭐… 스마트폰이라든가 여러 가지 구글… 뭐 여러 가지 그런 것들은 정말 발달하고 있는데. 개인이 정말 자기에게 필요한 그런 것을 잘 소화시키고 있느냐. 이거는 좀 의문입니다.

박혜진 네. 그래서 소통의 수단으로 그런 것들을 참 많이 사용하는데. 그 집요한 불안 속시원한 소통 이런 것을 해결할 방법이 없을까요?

김영하 네. 저는 그런데 인간과 인간의 소통은 점점 더 악화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점점 더 인간 간의 깊은… 그 어떤, 교류나 대화 이런 것은 더더욱 가능성이 줄어들 것 같구요.

박혜진 오히려 이런 매체들 때문에요?

김영하 네. 저는 그럴수록 많은 분들이 책과 또 책의 저자인 죽은 사람들과 많은 대화를 나눠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 책속에 있는 인물들은 우리가 겪을 수 있는 어떤 일들을 미리 겪었거나 또는 우리가 인생에 있어서 맞닥뜨리는 중요한 판단의 순간이 있잖아요. 많은 사람들이 준비 없이 그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는데, 소설 안의 인물들은 우리가 겪었을 어떤 윤리적인 판단의 딜레마라든가 중요한 비극적 순간에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는데, 그런 것들을 봄으로서 우리는 오히려 현실에서 부딪치는 급박한 인간관계에서 벗어나서 좀 더 깊이 있게 닥쳐 올 어떤 순간들을 뭐… 맞닥뜨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혜진 네.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은 사실 모든 작가의 임무잖아요. 그런데 김영하 작가에게는 유독 독자들의 기대치가 큰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야기꾼이라 불리지만 어떤 기승전결이라고 하는 딱딱 끊어지는 서사 위주의 소설은 아닌 것 같고. 이른 바 내러티브를 등한시하는 그런 작가도 아닌 것 같고. 학교에서 글쓰기 강연같은 거 많이 하셨죠?

김영하 네네.

박혜진 소설에서 분명한 줄거리. 역시 중요한 부분이긴 하죠?

김영하 네 중요한데요. 뭐 작가들이 다 다르기 때문에요. 작가들의 퍼스낼러티가 다 달라서요. 중요하긴 합니다만 어떤 사람들은 자기 인생의 줄거리가 확실한 사람이 있잖아요? 반면 자기 인생인데 잘 모르고 그런데 나름대로 잘 운영해 가는 사람도 있고.

박혜진 네.

김영하 그런데 저는 한 개인이 쓸 수 있는 이야기에… 천차만별이라고 생각해요. 자기에게 정직한 글을 쓰면 되는 거죠. 줄거리가 뭐 오리무중인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줄거리가 강한 게 있는데 거기에 어울리는 서사 형식을 찾아서 그렇게 쓰는 게 뭐 바람직하지 않나 싶구요. 제 소설이 어떤 경우에는 말씀하신 것처럼 강력한 줄거리가 있고 어떤 때는 좀 그런 것 같지 않기도 하고. 제 소설은 다양한 형식과 주제를 갖고 있는데. 그것은 저라는 개인이 혼란스럽기 때문입니다. (웃음)

박혜진 (웃음) 다중이시던지… (웃음)

김영하 네. 어렸을 때부터 약간 학습장애도 있고, 주의도 산만하고. 그래서 언제나 성적표나 그런 데에 주위가 산만하다, 지도가 요망된다, 수업 시간에 일어나서 자꾸 떠든다. 이런 얘기가 있었어요.

박혜진 이미 그 때부터 어떤 작가적인 성향을 보이신 거네요. 제가 볼 때는.

김영하 아니죠. (웃음) 뭐 그저 모르겠는데 그냥 저는 그런 사람이었던 거죠. 그래서 소설에도 저의 그런 성격이 드러납니다. 다양한 호기심. ADHD 어린이들이 다양한 호기심을 갖고 있잖아요. (그런데 그 호기심을) 지속시키지 못하고. 제 소설에도 어떤 다양한 면, 주제 이런 것들이 등장하는 것도 저랑 잘 맞아서 그런 것 같아요. 이렇듯이 내성적인 사람은 그거에 맞는 다양한 소설을 쓰시면 될 것 같고. 뭐… 저는 이게 맞는 것 같아요.

박혜진 네. 끊임없이 주의력 결핍에 시달리시면 (웃음) 더 좋은, 호기심 가득한 창작의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되네요.
글이 늘 잘 써지시는 않을 텐데요. 언제 흔히 시세 말로 글빨, 글감(感). 언제 가장 잘 떠오르세요?

김영하 예금 계좌가 줄어들 때. (웃음) 잔고가 갑자기 0을 달려갈 때 상상력이 폭발합니다. (웃음)

그리고 책상 앞에 앉게 되고. 사실 뮤즈(Muse)라 그러잖아요. 작가에게 영감을 주는 창작의 신이라는 것은. 창작의 여신은 사실은 어디 특별한 곳에서 만날 것 같잖아요?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정해진 시간을 뮤즈에게 몇 시에 오면 되는지 알려줘야 한다고 스티븐 킹이 말했거든요? 그러니까 몇 시에 뮤즈가 찾아오면 네가 있는지. 찾아왔는데 작가가 술 마시고 있고 (웃음) 찾아왔는데 여행 중이고 이러면 안 되는 거예요. 최소한 7시부터 10시까지는 책상에 앉아 있는다는 것을 뮤즈가 알고 있어야 찾아온다는 거예요. 작가들에게도 영감의 원천은 별 거 없는 거 같아요.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 앉아서 어떤 절박한 심정으로 한 문장, 한 문장 써내려가다보면 뮤즈가 찾아오는 것 같아요.

박혜진 네. '박혜진이 만난 사람', 6년만에 돌아온 스타 작가시죠. 소설가 김영하 씨와 만나고 있습니다.

*

박혜진 이번 소설집에 보면 빚 때문에 사장의 요구를 들어주는 여행사 여직원, 로봇이라는 설정도 있고, 결혼을 앞두고 전 남자친구에게 납치당한 여자 이야기. 제목이 여행이구요. 또 유학 온 일본 남성을 짝사랑하는 여자. 마코토라는 제목의 글. 뭐 이외에도 다른 것들도 많지만 이런 것들을 보면 젊은 여성들의 가치관, 혹은 연애관. 이런 것들을 읽어내는 데 탁월하다 이런 평이 있더라구요. (웃음) 여성들에 대해 잘 아신다고 자평하시나요?

김영하 아닙니다. (웃음) 저는 여성을 잘 몰라요. 잘 모르고 정말 모르겠어요. 여자들은… 남자는 조금만 보고 있으면 금방 지루해지잖아요. 남자는 참 단순한 면이 많잖아요. 남자는 직설적이고 단순하고. 그런데 여성들은 봐도, 봐도 잘 모르겠어요. 모르겠고. 뭐랄까… 미끄러진다고 해야할까? 생각과 행동, 그리고 그 행동의 결과, 그것에 대한 반응. 이 모든 것들이 예측을 조금씩 빗나가면서 그런 것 같구요.

박혜진 일관성이 없다는 건가요? (웃음)

김영하 아, 그렇진 않습니다. (웃음) 여성분들은 나름의 일관성이 있죠. 그걸 모를 뿐이죠. 예를 들면 갈릴레오 이전에는 그냥 우리가 별들이 복잡하게 움직인다고 생각했잖아요. 하지만 별들은 나름의 질서를 가지고 움직이고 있죠. 우리가 그걸 몰랐을 뿐이지. 여성들도 그렇다고 생각해요. 여성들도 나름대로 충분한 일관성을 가지고 (생각과 행동을) 하고 있지만, 그러다보니까 그 별의 움직임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그런 단곈데. 하지만 열심히 보고는 있어요.

박혜진 그 관찰에서 오는 심리 파악인가요? 그래도 글들을 보면은… 전 여성의 독자로서, 아 이런 부분은 나도 이쯤에선 이런 생각도 들지 않았을까? 그 감정이입을 해보면… 그럴 때가 있는데. 교묘하게 그걸 잘 끄집어 내셨더라구요.

김영하 네. 이번에 여성 독자분들이 그런 말을 많이 하세요. 그래서 어떤 분은 이제 좀 무섭다. 뭐 그런 이야기도 하시는데. 과찬의 말씀이시구요. 그치만 전 늘 겸허한 마음으로 여성들을 바라보고 있어요. 여성들이야말로 인간이 갖고 있는, 그 어떤… 남성이 갖고 있는 어떤 면들을 조금 더 복잡한 형태로 확장시켜 놓은 인간형 같아요. 그래서 제가 존경하는 작가도 톨스토이같은 작가인데, <안나 카레니나>같은 걸 보면 ‘안나 카레니나’라는 그 여자. 별 사건도 없어요. 그냥 바람을 피우다가 자살했다는 내용이거든요? 그런데 그 여자의 내면의 심리와 풍경과, 그 다음에 그 어떤 행동. 별것도 아닌 행동들 있죠? 삐지기도 하고 뭐 갑자기 남편한테 다시 가기도 하고. 이런 걸 가지고 그렇게(!) 두꺼운 책들을 썼단 말이죠.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웃음) 분인데, 그 분이 그런 걸 쓰셨을 때가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니예요. 34세? 톨스토이가 그 때 쓴 작품이거든요. 경의를 가지고 보고있구요. 지금도 피츠제럴드같은 작가가 <위대한 개츠비>에서 표현했던 데이지라는 여성에 대한 표현, 관찰과 묘사 이런 것들. 유심이 보고 있고. 현실의 여성들에게 배운다기보다는 이미 돌아가신 훌륭한 선배 작가들의 작품 속에서 많은 걸 배우고 있어요.

박혜진 네. 기대가 됩니다. 좀 더 제가 기대할 수 있는, 여성의 시선에서, 여성의 각도에서 바라 본, 어떤… 여성주의적인 작품. 이건 좀 또 다른 이야기가 될 것 같은데요. 지난봄이었습니다. 김영하 씨의 작품을 국어 교과서에 맘대로 싣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었어요. 보통은 교과서에 자기 작품 나오면 즐거워하거나 행복해하거나 싶은데. 어떤 일이었죠?

김영하 어… 뭐 어떤 출판사에서 연락이 와서 작품을 싣겠다는 게 아니고 벌써 실었다. 벌써 실었는데. 통보를 하고. 문제집과 참고서에도 실어야겠으니… 이건 허락을 좀 받아야 하거든요. 저자의… 허락을 받아야 하니 허락을 해달라는 거죠. 저는 그래서 좀 놀랐던 거죠. 그러면 교과서에 싣는 것은 저자의 허락이 없어도 되는 거냐 하고 물었더니 그건 된데요. 뭐… 저작권료를 주기는 하는데 (저로서는) 안 줘도 상관은 없고. 뭐 그렇다는 거예요. 저로서는 너무 충격을 받아서 저는 싣지 않았으면 좋겠다. 근데 벌써 다 찍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다음에부터라도 빼달라고 이야기를 했거든요?

박혜진 그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셨어요?

김영하 네. 제 블로그에도 올리고 그랬는데. 많은 분들이 뭐 자기도 문학 작품을 교과서에서 배우고서, 황순원의 소나기 같은 거… 배우고서. 그런데 자기 작품같은 거 안 싣겠다 그러면 이기적인 거 아니냐 그런 거를 저한테 말씀하신 분도 계셨는데요. 제가 그런 뜻에서 (그렇게 말을) 한 건 아니구요. 현행 국어교육에서 문학 작품이 실리는 거에 문제를 제기한 거예요. 뭐냐하면 여러분도 다 그렇게 국어교육을 받으셨겠지만 작품의 지문을 만들잖아요.

박혜진 그렇죠.

김영하 전체를 다 싣지 않아요. 일부분만 딱 잘라가지고 한 다음에 ‘여기서 작가가 말하려고 한 바는?’ 이런 거를 묻는다는 말이죠.

박혜진 기억나네요. 그런 식의 문제.

김영하 그러고 정답을 맞춰야 하는 거예요. 그런데 문학 교육에는 사실 정답이 없는 거고. 오늘 제가 소개해드린 소설에서처럼 사실 대부분에는 정답이 없고요.

박혜진 그렇죠.

김영하 심지어 제 소설이 실린, 지문으로 실려 있는 문제집을 하나 풀었는데. 누가 가져왔어요. 그런데 다섯 문제 중에 제가 두 문제를 맞혔어요.

박혜진 본인 작품이신데도?

김영하 네. 제가 뭘 비판하려고 했다는데. 전 뭘 비판하려고 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소설을 쓰는 이유는 뭘 비판하려고 쓰는 건 아니거든요. 소설은 그거보다는 훨씬 더 위대한 겁니다. 자꾸 저보고 뭘 비판하거나 꼬집으려고 했다는데. 저는 아무것도 꼬집지 않습니다(!) 비판하지도 않고. 말하려고 하는 바도 없어요. 제 소설은 그저 하나의 이야기일 뿐이거든요. 그리고 독자들이 작가가 퇴장한 작품과 나름의 소통을 하는 건데, 문학이라는 것은 다양성을 가르칠 수 있는 몇 안 되는 수단인데요. 수학, 과학과는 달리 그것마저도 정답을 정하면 그건 곤란하다는 거죠.

박혜진 그렇죠.

김영하 네. 그래서 예를 들면 윤동주의 부끄러움은 다 식민지 지식인의 부끄러움 이예요. 윤동주가 다른 걸 부끄러워했을 수도 있거든요. 사춘기 청소년에게는 부끄러움이 참 많습니다. 꼭…

박혜진 시대적인 상황과 엮어서…

김영하 네.

박혜진 획일화 시키는 거죠.

김영하 한용운의 ‘님’은요. 4지선다형으로 문제가 나오는데 ‘다음 중 아닌 것은’ 하고 이렇게 문제가 나와요. ‘한용운의 <님의 침묵>에서 ‘님’이 의미하는 것이 아닌 바는?’ 이렇게. 1 조국, 2 부처, 3 여인, 4 뭐 아무거나 써 놓고. (웃음) 4번이 답인데. 만해가 과연 그렇게 그 세 개를 의미하기 위해서 시를 썼을까 하고 저는 좀 의문을 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 스스로 이렇게 분해해서 4지선다형으로 문제를 만들기 위해서 제 소설을 증발시키는 것에 저는 반대한다는 것이고. 국어선생님들이 제 소설을 교육 현장에서 쓰겠다고 한다면 저는 무료로 얼마든지, 통으로 제공할 용의가 있어요. 그리고 학생들의 자유로운 해석을 묵인하지 않고, 토론을 통해서, 어떻게 느꼈느냐 이런 것들을 서로 이야기하는 게 저는 바람직한 문학 수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반대했던 겁니다.

박혜진 그래요. 우리는 옛날부터 진짜 국어교육을 보면 시험 볼 때도, 꼭 그 작가의 메시지를 읽어야만이, 그리고 그 메시지가 들어있다는 전제 하에 교육이 들어가잖아요. 그런데 사실은 어느 작가도 그런 말을 하셨지만 굳이 작가들이 글을 쓸 때, 뭐 소설이나 시를 쓸 때. 꼭 메시지를 담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담는 것이 아니다 하는… 뭐 같은 말씀인 거잖아요.

김영하 그 메시지가 하나뿐인 작품이라면 실패한 작품입니다. 그거를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하나의 메시지가 실린 작품이라면 교과서에 실리면 안 됩니다.

박혜진 그래서 이것과 관련해서 트위터를 자주 사용하시잖아요?

김영하 네.

박혜진 거기에 그 글을 쓰신 부분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는데. 제가 잠깐 소개를 해 드리겠습니다. ‘새로운 생각은 처음에는 없는 것으로 취급당합니다. 그래도 사라지지 않으면 공격당합니다. 공격합니다. 공격을 받고 살아남으면 그제야 소수 의견으로 받아들입니다.’

김영하 네. 그렇죠. 모든 소수 의견의 탄생의 배경입니다. 갈릴레오도 그랬구요. 이상한 생각들, 위험한 생각들인 거죠. 처음에 제가 출판사에 연락을 받고서 있을 땐 다들 그냥 웃어넘기더라구요. 아니 그러시지 마시고.

박혜진 마치 그 쓸데없는 자존심을 부리는 쓸데없는 작가의 태도처럼…

김영하 네. 저작권료는 그냥 드릴 테니까.

박혜진 뭐 그런 반응.

김영하 네. 그런 게 아닌데. 이렇게 제가 계속해서 블로그, 트위터에 문제 제기를 하고. 그러다 그 때서야 반응이 나왔죠. 교육과학부라든가 여러 또… 신문사 사설에도 나왔어요. 어떤 좋지 않은 반응들이 있었죠. 그런데 그러고 나서야 저자가 교과서에 작품을 싣는 것을 반대할 어떤 양심의 권리가 있을 수도 있구나하는 정도로 생각하시는 거 같아요.

박혜진 음… 소통 수단으로서의 트위터, 그리고 그 트위터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어떤 변화들. 이걸 어떻게 봐야하는지. 지금 그렇게 대중적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이미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는 것 같아요. 여전히 모호한 부분도 있고. 김영하 씨는 어떻게 보세요?

김영하 트위터요? 저는 뭐, 트위터를 하루에 한번 정도 사용을 하는데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임마누엘 칸트가 매일 정해진 시간에 산책을 갔다고 그러잖아요? 그런 것처럼 저도 일종의 산책이라고 생각해요.

박혜진 네.

김영하 제가 생각하는 트위터의 풍경은 이런 겁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걸을 수 있는 쇼핑 아케이드 있잖아요. 아케이드죠. 거기를 걸어들어가면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아젠다(agenda, 의제)를 내놓고 있어요. 과학자는 과학자의 아젠다, 언론인은 언론인의 아젠다. 뭐 평범한 분들은 자기 일상의 아젠다를 내놓고 있으면 제가 거기를 걸어가다가 마음에 드는 아젠다가 있으면 그 주인한테 서서 이야기를 나누는 거죠. ‘안녕하세요. 어, 이거 재밌는 이야기네요.’ 하면 저는 저대로의 쇼케이스를 내놓는 거예요. 그러면 사람들이 반응하고. 아까 교과서처럼 이게 실리는 거를 반대하는가 하는 아젠다를 내놓으면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어서 얘기들이 많죠. 국어 선생님들은 자기도 선생님이지만 자괴감을 느낀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지나가시기도 하고. 그런 일정한 시간에 하는 저의 어떤 지적인 산책이라고 생각을 해요. 정신적인 산책.

박혜진 예.

김영하 산책을 왜 하냐면 대부분의 시간을 작가는 혼자 골방에 있다 보니까 친구도 별로 없고, 또 작가는 모든 걸 혼자서 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미치지 않기 위해서 하는 거예요. 제정신을 유지하기 위해서. 정신적인 건강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사람을 만나야 하긴 하겠는데, 밖에 나가서 사람을 만나는 거는 정말 어떤 큰 에너지가 들어요. 술도 마셔야 하고, 여러 가지 생각지도 않은 일들이 벌어지는데… 그거는 작가로 살아가는 데에 좀 부담이구요. 그래서 트위터라든가 블로그 정도가 제가 사람들과 정신적 교류를 하면서 산책을 하는 좋은 수단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박혜진 긍정적으로 보시는군요. 그런데 저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하거든요. 주변에 계신 분들도… 생각의 노출. 그게 트위터나 블로그의 형식으로 드러나는데… 그게 처음에는 정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려고 글을 쓰지만, 그런데 막상 판이 열렸을 때.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판에 들어섰을 때, 다른 누군가가 지금 나의 생각을 보려고 작정하고 있단 말이죠. 그 순간에 내가 정직하면 할수록 쓰려고 하지 않은 문장들이 자꾸 올라가고 있는, 그러니까 결국 자기 정신력의 산책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만족을 위한 또 다른 글이 되는 것이 아니냐 하는 그런 이야기들도 있더라구요.

김영하 네, 뭐 그럴 수도 있죠. 제가 산책의 비유를 좀 더 말씀을 드리면, 사실 도시인의 풍경입니다. 농촌에 사시는 분들은, 사실 지금도 한 나라의 농촌에 있는 분들은 산책을 안 하세요. 우리나라에 있는 분들도요 도시인들처럼 산책을 안 하세요. 들일을 나가시죠.

박혜진 그렇죠.

김영하 목적지가 있어서 가시지, 논길을 산책하는 분은 없어요. 도시인들만이 사실은 산책을 합니다. 움베르트 에코도 그런 말을 했거든요. 뉴욕이나 파리 같은 도시에서는 산책의 즐거움이 있다는 거죠. 매번 바뀌기도 하고, 쇼윈도의 진열 상태가 바뀌기도 하고, 그렇다는 거죠. 그래서 산책을 하는 데에는 도시인만이 가진 준비나 교양이 필요합니다. 산책을 처음하시는 분들은 옷을 뭘 입어야 할지도 잘 모르겠고. 그냥 편안하게 입겠지만, 사실 산책이 거듭될수록 드레스 코드부터 사람들을 만나서 어느 정도 이야기를 나누어야 되는지에 대한 일정한 감각들이 저는 생길 거라 생각해요. 지금은 트위터나 이런 게 초기 단계니까 많은 분들이 산책을 나갈 때 너무 옷을 입지 않고 나가신다거나 (웃음) 아니면 너무 옷을 많이 차려 입고 나간다든가 하는 아케이드에 차려 몰고 나간다거나 하는 일들이 벌어지지만 곧 아마 이런 부분들이 균형을 찾지 않을까 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

김영하 신경숙 씨가 내년에 책이 한 권 나오고요. <엄마를 부탁해> 그게 미국에서 먹힐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어요. 한국에선 다 울었는데, 과연 서양 사람들도 울거냐 그런데 이 100만 부라는 거는 미국의 출판사들도 들으면 그런 figure에는 상당히 약해요. 들으면 100만 부? 뭐가 있겠지라는 생각하는데…

박혜진 해외에서 우리 문학의 위상은 어느 정도인 것 같습니까?

김영하 매우 낮죠. 왜냐하면 문학이 넘어가는 건 참으로 어렵거든요.

박혜진 음… 문화때문일까요?

김영하 음… 그렇다기보다는 순수하게 언어로 되어있지 않습니까? 소설이라는 것은. 그림도 없고, 다른 음악이 들어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영화를 자막을 달아서 영화제에 보내는 것과 달리, 문학은 첫 줄부터 끝줄까지 다 번역해야 하고요. 또 번역을 상당히 잘 해줘야 하고요. 그렇다하더라도 이야기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림이 없으니까요. 우리도 그 옛날에 러시아 소설같은 것을 보다보면, 이름은 왜 이렇게 많은지, 왜 다들 애칭들이 있는지. 뭐… 그 다음에 이해도 잘 안 되고요. 그래서 어느 나라나 다른 나라의 문학이 번역되어 나가는 일은 대단히 어렵습니다.

박혜진 그렇다면 우리의 노벨 문학상은 기대하기가 어려운 건가요? 그런 의미에서?

김영하 글쎄요. 그거는 스웨덴에 계신 분들이 생각하시는 거니까. (웃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웃음)

박혜진 아니 왜냐면 어떤 설문 조사 같은 걸 보면, 노벨 문학상을 노릴 수 있는 차세대 작가로 김영하 씨도 꼽히시더라구요.

김영하 어느 설문 조사에? (웃음)

박혜진 들어보신 바가 없으십니까?

김영하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웃음)

박혜진 네. 그럼 여기서 이만 정리하고 물러가겠습니다. 아무튼 오늘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시간이 훌쩍 가버렸습니다. 새로운 소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어쩌면 매일 매일이 이런 일 투성일 거 같은데… 그래도 그게 뭔가 전부 행복한 기분으로 마무리됐으면 하는 그런 바람이네요. 저는…

김영하 네. 그럼 좋죠. 고맙습니다.

박혜진 네, 감사합니다. ‘박혜진이 만난 사람’. 최근 소설집을 발표한 김영하 작가와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해 다양한 관점으로 이야기를 나눠 봤습니다. 
 


 출처: ssoo 홈페이지http://cyhome.cyworld.com/?home_id=a1687546&postSeq=4513807 

          직접 타이핑 하셨다고 하심.^^(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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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풉풉 > 소설가 김영하와의 만남

 

.쉬어가거나 돌아가거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책을 들었을 때 나는 대학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는, 성적으로는 무지하고 자살에 동조하지 않으며, 리비도따윈 관심두지 않던 여학생이었다. 소설은 남에게 옮기기도 힘든 충격이었다. 이 사람, 변태로구나, 딱히 다른 표현이 생각나지 않았다.

  ‘오빠가 돌아왔다’는 연극을 보러가는 길에, 김영하 소설을 연극으로 만들었다니 어떤 내용일까, 처음으로 남편과 김영하에 대한 얘길 나누었다. 김영하 소설을 원작으로 한 공연이나 드라마가 적지 않단 얘길 나누면서 그 이후에도 유독 올 여름엔 김영하란 이름을 자주 듣게 되었다.

 신작이 나오고,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남편이 김영하 소설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도서관에 들어서자 유독 그의 소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퀴즈쇼,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검은꽃’. 갑자기 쏟아지듯이 김영하 소설이 눈에 쏙쏙 들어왔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만큼의 충격은 더 이상 없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나도 예전처럼 야한 내용에 촉각을 세우고 피하던 여학생이 아니니까. 10여년이 지나는 동안 내게도 삶의 부분이라고 여길만한 것이 많아졌다. 이야기는 빠르게 흘러갔고, 건조한 문체는 그런 흐름에 더 빨리 휩쓸리게 했다. 그래서? 그래서? 쫓다보면 끝이 나는 식이었다. 간만에 한 작가에게 집중해 있었다. 다른 소설을 읽다 짜증이 날만큼.
 

 ‘김영하 작가와의 만남’.   

타이밍이 멋졌다. 이런 순간에. 

 인천에서 퇴근하고 가느라 20분이 넘어 도착했는데, 소설 ‘밀회’를 낭독중이었다. 언젠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얘기를 나눈 적이 있어서, 도착하기 직전에도 그 얘길 잠시 하느라 다시 읽어보았던 소설이었는데, 조금 전 보았던 활자들이 목소리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20분 동안 무엇을 했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이 그저 좋았다.  

 독자들이 질문을 하면 답을 하는 형식으로 진행이 되었으나 질문과 관련된 이런 저런 얘길 많이 해주셔서 더 즐겁게 들을 수 있었다. 

 소설을 쓰는 것은 자기 안의 괴물을 만나고, 그 괴물을 만나기 위해 지하실의 문을 여는 것이라고 얘길 시작하셨던 듯하다. 예술가란 동굴 깊은 곳으로 들어가서 타인, 살인자와 같은 인물들의 내면을 끄집어내어 독자에게 연결해주는 그런 역할을 하는 존재라고. 연결되는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선생님과 부모님에게 칭찬받을 만한 글을 싫어하고, 그래서 백일장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얘기와 남에게 자물쇠까지 채워가며 숨기고 싶은 글을 썼으면 좋겠다는 얘기- 미소 짓지 않을 수 없었다. 공감이나 새로운 발견 보다 훨씬 즐거운 건 오래전 내 느낌의 원인을 맞닥뜨린 기분 같은 것이었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에 대해 특별히 더 언급할 때, 그러면서 넘쳤던 리비도에 대한 얘기를 할 때도 그랬다. 
 차를 타고 가다 짧은 장면을 그리는 것이 단편이라면, 말다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왜 싸우고 있는지 전, 후를 따져 원인을 자세히 알고 전하는 것이 장편이라는 얘기는 단편을 읽으며 스쳐가던 의문에 대한 답이 되었다.    

  이야기를 잘 쓰는 사람은 어떻게 생활하고, 어떤 생각을 할까. 내가 요즘 즐겨 읽는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이 정말로 이 세상에 있단 말이지.-하며 갔던 길이었다. 열심히 즐겁게 이야기를 들으며 신기하기도 했지만, 좋은 선생님을 만난 기분도 들었다.
 읽어봐야 할 책이라고 꼽았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도 읽어봐야 할 것 같고, 전혀 괴물과 만난 것 같지 않았던 톨스토이가, 이 소설가가 내면 깊이 들어가 좋아한다는 소설가의 목록에 들어가는 것을 보며 다시 읽어봐야겠단 생각도 했다. 스티븐 킹의 말(뮤즈가 우리는 찾아오려면 몇 시에 있는지 알려줘야 한다는)을 인용하며 글을 쓸 때는 자기만의 시간, 꾸준히 백지와 대면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

 얼마 전 한 학생이 문예 창작과로 가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내게 했었는데, 딱히 아는 게 없어 그저 듣기만 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 면에서 마지막에  고3 여학생이 문예 창작과로 가는 것에 대해 질문한 것은(근처에 있어서 아는데, 그 여학생 정말 애타게 손을 들며 있다가 극적으로 마이크를 받은 거다.) 내게도 의미가 있었다. 작가가 꿈이라면 심리학이든 교육학이든 뭐든 인간을 이해하는 전공을 공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던 김영하 작가의 조언을 나중에 그 친구에게도 전했다.

 오래전 단편 소설을 쓰곤 했던 남편은(그러나 지금은 게임에 몰두하고 있는), 돌아오는 길 내내 눈을 반짝였다. 그가 예전에 썼던 글들도 내면깊이 괴물을 끄집어 내려하는 작업과 비슷했다는 것을 안다. 어쩌면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괜찮은지 내게 묻는 걸로 보아서.

 작가를 직접 만나는 게 처음은 아니었지만, 만나고 나서 멋진 작가에게 '어리둥절한' 것은 처음이었다. 목소리도 좋고, 얘기도 잘 하고, 무엇보다 피곤했을 텐데 너무나 친절하게 한 사람 한 사람 인사해주고 사진 찍어주시는 것 고마웠다. 직장과 집을 오가는 편한 길에서 잠시 벗어나 빗길을 걸었던 그날이 내 일상엔 쉼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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