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풉풉 > 소설가 김영하와의 만남
.쉬어가거나 돌아가거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책을 들었을 때 나는 대학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는, 성적으로는 무지하고 자살에 동조하지 않으며, 리비도따윈 관심두지 않던 여학생이었다. 소설은 남에게 옮기기도 힘든 충격이었다. 이 사람, 변태로구나, 딱히 다른 표현이 생각나지 않았다.
‘오빠가 돌아왔다’는 연극을 보러가는 길에, 김영하 소설을 연극으로 만들었다니 어떤 내용일까, 처음으로 남편과 김영하에 대한 얘길 나누었다. 김영하 소설을 원작으로 한 공연이나 드라마가 적지 않단 얘길 나누면서 그 이후에도 유독 올 여름엔 김영하란 이름을 자주 듣게 되었다.
신작이 나오고,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남편이 김영하 소설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도서관에 들어서자 유독 그의 소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퀴즈쇼,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검은꽃’. 갑자기 쏟아지듯이 김영하 소설이 눈에 쏙쏙 들어왔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만큼의 충격은 더 이상 없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나도 예전처럼 야한 내용에 촉각을 세우고 피하던 여학생이 아니니까. 10여년이 지나는 동안 내게도 삶의 부분이라고 여길만한 것이 많아졌다. 이야기는 빠르게 흘러갔고, 건조한 문체는 그런 흐름에 더 빨리 휩쓸리게 했다. 그래서? 그래서? 쫓다보면 끝이 나는 식이었다. 간만에 한 작가에게 집중해 있었다. 다른 소설을 읽다 짜증이 날만큼.
‘김영하 작가와의 만남’.
타이밍이 멋졌다. 이런 순간에.
인천에서 퇴근하고 가느라 20분이 넘어 도착했는데, 소설 ‘밀회’를 낭독중이었다. 언젠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얘기를 나눈 적이 있어서, 도착하기 직전에도 그 얘길 잠시 하느라 다시 읽어보았던 소설이었는데, 조금 전 보았던 활자들이 목소리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20분 동안 무엇을 했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이 그저 좋았다.
독자들이 질문을 하면 답을 하는 형식으로 진행이 되었으나 질문과 관련된 이런 저런 얘길 많이 해주셔서 더 즐겁게 들을 수 있었다.
소설을 쓰는 것은 자기 안의 괴물을 만나고, 그 괴물을 만나기 위해 지하실의 문을 여는 것이라고 얘길 시작하셨던 듯하다. 예술가란 동굴 깊은 곳으로 들어가서 타인, 살인자와 같은 인물들의 내면을 끄집어내어 독자에게 연결해주는 그런 역할을 하는 존재라고. 연결되는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선생님과 부모님에게 칭찬받을 만한 글을 싫어하고, 그래서 백일장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얘기와 남에게 자물쇠까지 채워가며 숨기고 싶은 글을 썼으면 좋겠다는 얘기- 미소 짓지 않을 수 없었다. 공감이나 새로운 발견 보다 훨씬 즐거운 건 오래전 내 느낌의 원인을 맞닥뜨린 기분 같은 것이었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에 대해 특별히 더 언급할 때, 그러면서 넘쳤던 리비도에 대한 얘기를 할 때도 그랬다.
차를 타고 가다 짧은 장면을 그리는 것이 단편이라면, 말다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왜 싸우고 있는지 전, 후를 따져 원인을 자세히 알고 전하는 것이 장편이라는 얘기는 단편을 읽으며 스쳐가던 의문에 대한 답이 되었다.
이야기를 잘 쓰는 사람은 어떻게 생활하고, 어떤 생각을 할까. 내가 요즘 즐겨 읽는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이 정말로 이 세상에 있단 말이지.-하며 갔던 길이었다. 열심히 즐겁게 이야기를 들으며 신기하기도 했지만, 좋은 선생님을 만난 기분도 들었다.
읽어봐야 할 책이라고 꼽았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도 읽어봐야 할 것 같고, 전혀 괴물과 만난 것 같지 않았던 톨스토이가, 이 소설가가 내면 깊이 들어가 좋아한다는 소설가의 목록에 들어가는 것을 보며 다시 읽어봐야겠단 생각도 했다. 스티븐 킹의 말(뮤즈가 우리는 찾아오려면 몇 시에 있는지 알려줘야 한다는)을 인용하며 글을 쓸 때는 자기만의 시간, 꾸준히 백지와 대면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
얼마 전 한 학생이 문예 창작과로 가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내게 했었는데, 딱히 아는 게 없어 그저 듣기만 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 면에서 마지막에 고3 여학생이 문예 창작과로 가는 것에 대해 질문한 것은(근처에 있어서 아는데, 그 여학생 정말 애타게 손을 들며 있다가 극적으로 마이크를 받은 거다.) 내게도 의미가 있었다. 작가가 꿈이라면 심리학이든 교육학이든 뭐든 인간을 이해하는 전공을 공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던 김영하 작가의 조언을 나중에 그 친구에게도 전했다.
오래전 단편 소설을 쓰곤 했던 남편은(그러나 지금은 게임에 몰두하고 있는), 돌아오는 길 내내 눈을 반짝였다. 그가 예전에 썼던 글들도 내면깊이 괴물을 끄집어 내려하는 작업과 비슷했다는 것을 안다. 어쩌면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괜찮은지 내게 묻는 걸로 보아서.
작가를 직접 만나는 게 처음은 아니었지만, 만나고 나서 멋진 작가에게 '어리둥절한' 것은 처음이었다. 목소리도 좋고, 얘기도 잘 하고, 무엇보다 피곤했을 텐데 너무나 친절하게 한 사람 한 사람 인사해주고 사진 찍어주시는 것 고마웠다. 직장과 집을 오가는 편한 길에서 잠시 벗어나 빗길을 걸었던 그날이 내 일상엔 쉼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