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빨간 보행기 할머니 ㅣ 내일의 나무 그림책 15
진주 지음, 정성아 그림 / 나무의말 / 2026년 9월
평점 :

『빨간 보행기 할머니』
볼로냐 라가치상 수장 작가이신 진주 님의 『빨간 보행기 할머니』는 가슴이 따뜻해지면서도 시원한 울림을 주는 정말 근사한 그림책이에요.
다들 어릴 적 읽었던 『빨간 망토 소녀』 기억하시죠?
이 책은 ‘그 숲길을 누비던 빨간 망토 소녀가 할머니가 되었다면?’이라는 기발하고 절묘한 뒤집기에서 출발해요.
이야기는 아픈 손녀를 만나러 홀로 길을 나서는 할머니의 모습으로 시작돼요.
하지만 할머니 앞에는 힘없고 느린 어르신들만 골라 노리는 무서운 ‘실버 사냥꾼’이 나타나는데요.
기존 동화 같았다면 누군가 구하러 오기를 기다렸겠지만...
우리의 주인공 할머니는 달라요.
오랜 세월 축적된 삶의 지혜와 기지, 할머니의 든든한 짝꿍 ‘빨간 보행기’...
할머니는 이 두 가지로 위기를 스스로 멋지게 돌파해 내요.
게다가 할머니의 여정은 외롭지 않아요.
길에서 만난 보행 약자들과 여성들이 서로의 처지를 알아채고 슬쩍 힌트를 주기도 하고, 좁은 골목길에서는 서로의 느린 속도를 가만히 기다려 줘요.
그렇게 따스한 연대의 온기를 나누며 할머니는 당당하게 손녀에게로 달려가죠.
우리는 흔히 ‘노인’이나 ‘보행기를 짚은 분’을 보면 나도 모르게 ‘누군가의 도움이 꼭 필요한 약자’로 먼저 생각하곤 하잖아요.
하지만 저자는 그 고정관념을 시원하게 깨부수어 줘요.
세월의 무게만큼 깊어진 지혜로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이끄는 할머니의 모습이 얼마나 멋지고 근사한지 몰라요.
특히 정성아 님의 따뜻한 그림체가 더해져 잔상이 오래 남았는데요.
어린 시절 할머니를 향한 그리움과 애정이 그림 한 컷 한 컷에 그대로 묻어나더라고요.
좁은 길에서 서로의 속도를 배려하며 기다려 주는 장면에서는 ‘이게 바로 우리가 현대 사회에서 잊고 살던 다정과 연대의 온기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눈시울이 뜨거워졌답니다.
느려도 괜찮아, 우리는 우리만의 속도로 당당하게 나아가니까!
‘보행기’라는 단어가 더 이상 느림이나 약함의 상징이 아니라, 삶을 향해 나아가는 당당한 이동 수단으로 느껴지게 만드는 마법 같은 책이에요.
세상의 모든 보행기 친구들과 삶의 길을 먼저 걸어간 이들에게 바치는 따뜻한 헌사에요.
책을 덮고 나니 길가에서 보행기를 짚고 지나가시는 어르신들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어요.
세월을 견뎌낸 그분들의 걸음걸이 하나하나에 경의를 표하게 되더라고요.
『빨간 보행기 할머니』와 함께 따뜻하고 당당한 에너지 한 모금 충전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 라엘 @lael_84 님의 모집을 통해 나무의말 @words.of.trees 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