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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서 帛書 - 125년 만에 도착한 편지
이상훈 지음 / 책마실 / 2026년 7월
평점 :
<백서> 책마실
인디캣 서평단에 선정되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역사 속 가장 잔혹하고 절박했던 기록, 이상훈 저자의 <백서>를 소개합니다.
역사 교과서에서 ‘황사영 백서 사건’이라는 단어 보신 적 있으시죠?
짧게 한 줄로만 배우고 넘어갔던 그 사건 뒤에 얼마나 피비린내 나는 참상과 인간적인 고뇌가 숨겨져 있었는지, 생생하게 그려낸 역작입니다.
저자가 구상부터 집필까지 무려 수년이나 공을 들이셨다고 하는데, 책을 덮고 나니 왜 그렇게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는지 가슴 깊이 납득이 갔습니다.
소설의 배경은 정조 사후, 정순왕후와 노론 벽파가 정권을 장악한 1801년 조선입니다.
권력을 쥔 이들은 정치적 라이벌인 노론 시파와 남인 세력을 완전히 숙청하기 위해 ‘천주교 탄압(신유박해)’을 도구로 삼습니다.
이 광풍 속에서 수백 명의 천주교인이 처형당하고, 우리가 잘 아는 정약전, 정약용 형제 등 몇몇만 겨우 살아남아 유배길에 오르게 됩니다.
이때 정약용의 조카사위인 황사영은 배론 마을의 한 차가운 토굴로 숨어듭니다.
그리고 조선 천주교의 비극을 알리고 구원을 요청하기 위해, 교황에게 보내는 장문의 편지를 흰 비단 천에 깨진 글씨로 적어 내려갑니다.
이것이 바로 ‘백서(帛書)’입니다.
하지만 목숨을 건 이 비밀 편지는 결국 의금부에 압수당하고 마는데요...
이로 인해 탄압은 걷잡을 수 없이 잔혹해지고, 살아남은 교인들은 신앙과 목숨을 지키기 위해 더 깊은 오지로 숨어들며 눈물겨운 명맥을 이어가게 됩니다.
책을 읽는 내내 눅눅하고 어두운 토굴 속에 황사영과 함께 갇혀 있는 듯한 압도적인 몰입감이 느껴졌습니다.
‘잡히면 죽는다’는 극도의 공포 속에서, 덜덜 떨리는 손으로 비단 천에 글을 적어 내려갔을 그의 심정이 고스란히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현대의 시각으로 보면 ‘외세를 끌어들이려 한 위험한 선택’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겠지만, 소설 속 인물들의 절박함을 따라가다 보면 그런 이성적인 비판보다는 먹먹한 감정이 먼저 앞섭니다.
인간에게 신념이란, 종교란 무엇이기에 이토록 목숨까지 바치는 걸까?
권력 싸움의 무고한 희생양이 되면서도 끝까지 인간다움과 자신의 신앙을 잃지 않으려 했던 평범한 사람들의 눈물이 마음을 아주 무겁게 짓누르는, 여운이 정말 길게 남는 소설이었습니다.
이런 분들께 추천합니다.
✔ 역사 소설 덕후 분들
1801년 신유박해 전후의 시대적 공기와 정조 사후의 정치적 역학 관계가 정말 촘촘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웰메이드 팩션 소설을 찾으시는 분들께 강추합니다.
✔ ‘정약용 가문’의 비극에 관심 있는 분들
정약용, 정약전 형제뿐만 아니라 그들의 조카사위 황사영까지, 시대를 풍미했던 천재들이 겪어야 했던 가혹한 운명을 입체적으로 보고 싶으신 분들께 추천합니다.
✔ 인생의 무게나 ‘신념’에 대해 고민하고 계신 분들
‘내가 만약 저 시대에 살았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라는 깊은 사색에 잠겨보고 싶은 밤, 조용히 펼쳐보기 좋은 책입니다.
단순한 종교 소설이 아니라, 거대한 역사 궤도에 휘말린 ‘인간’의 본질을 보여주는 묵직한 작품이었습니다.
가슴을 울리는 역사 소설 한 편 어떠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