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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의 집 ㅣ 비룡소 클래식 21
루머 고든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조안나 자미에슨.캐롤 바커 그림 / 비룡소 / 2008년 4월
평점 :

『인형의 집』
혹시 어릴 적 아끼던 인형과 비밀 이야기를 나누어 본 기억이 있으신가요?
우주세문단의 평생읽는클래식프로젝트 두 번째...
바로 20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 루머 고든의 아름답고도 날카로운 동화집 『인형의 집』이에요.
이 책의 진짜 주인공은 사람이 아니라 ‘인형’이에요.
인형이란 존재는 스스로 움직이지도, 말을 하지도 못하죠.
오직 주인인 아이들의 손길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철저히 수동적인 존재에요.
아이들은 이 인형 세계에서 그야말로 ‘절대적인 신’과 같아요.
인형의 행복과 불행이 온전히 인간의 손에 달려있으니까요.
하지만 루머 고든은 이 작고 조용한 인형들에게 ‘영혼’과 ‘간절한 바람’을 불어넣어요.
인형들은 자신들의 간절한 염원을 매개로 아이들의 세계와 신비롭게 소통하기 시작해요.
비록 몸은 묶여 있지만, 마음으로 아이들을 변화시키고 자신들의 세계를 지켜나가는 이야기가 놀라울 정도로 생생하고 현실적으로 펼쳐진답니다.
『인형의 집』 하면 많은 분이 헨리크 입센의 페미니즘 희곡을 먼저 떠올리실 텐데요.
두 작품은 ‘인형’이라는 소재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해석해요.
헨리크 입센의 『인형의 집』 : 사회의 인형에서 탈출하는 인간
입센의 작품에서 주인공 노라는 남편과 남성 중심 사회가 만들어 놓은 거대한 ‘인형의 집’ 속에서 예쁜 인형처럼 살아왔어요.
하지만 사회적 통념과 남편의 위선을 깨닫고, 자아를 찾기 위해 마침내 집을 뛰쳐나오며 독립적인 ‘인간’이 되기를 선언하죠.
여기서 인형은 억압과 수동성의 상징이며, 극복해야 할 대상이에요.
루머 고든의 『인형의 집』 : 진짜 인형들의 연대와 소통
반면 고든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진짜 ‘사물’ 인형들이죠.
이들은 입센의 노라처럼 집을 뛰쳐나갈 수도, 남편에게 소리를 지를 수도 없어요.
철저히 수동적인 한계 속에 갇혀 있죠.
하지만 고든이 이 안쓰러운 존재들에게 ‘마음’을 부여해요.
인형들은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바랍’을 통해 절대자인 아이들과 교류하며, 그 수동성 안에서도 자신들의 세계를 지키고 행복을 만들어 나가죠.
즉, 입센의 노라가 남성 중심 사회가 만든 예쁜 인형이라는 굴레를 벗어던지기 위해 ‘탈출’을 선택했다면, 고든의 인형들은 움직일 수 없는 한계 속에서도 자신들의 자리에서 묵묵히 ‘소통’하며 존재 가치를 증명해 내요.
달콤하지만 씁쓸한...
루머 고든의 『인형의 집』은 어린이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한 명작이지만...
읽다 보면 마음 한구석에 아쉬운 점도 있었어요.
결국은 ‘의존적인 구원’의 한계
인형들이 아무리 간절하게 바라도, 결국 상황을 바꾸는 최종 행동은 ‘인간 아이들’의 몫이에요.
내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는 게 아니라, 절대자(인간)의 선의와 자비에 기대어 구원받을 수밖에 없다는 수동성이 명확히 드러나죠.
순종을 미덕으로 여기는 보수적인 가치관
‘꾹 참고 착하게 기다리면 언젠가 이루어질 거야’라는 서사는, 자칫 아이들에게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는 태도만을 정답으로 제시할 위험이 있죠.
입센의 노라처럼 당차게 벽을 깨부수는 현대적인 주체성과 비교하면 다소 보수적으로 느껴지는 대목이었어요.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이들이 보내는 간절한 신호
철저히 약자의 위치에 서 있는 인형들의 이야기는, 역설적이게도 우리 주변의 소외된 이들을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입센의 노라처럼 격렬한 해방감은 없지만, 잔잔한 울림과 따뜻한 소통의 가치를 배우기에 더없이 좋은 동화인 건 분명하죠.
아이들에게는 상상의 나래를, 어른들에게는 잊고 지낸 순수를 선물해 줄 책으로 추천해요.
만약 여러분이 인형이라면 입센의 노라처럼 문을 박차고 나가겠나요, 아니면 고든의 인형들처럼 마음을 다해 소통을 시도하겠나요?
😍 우주 @woojoos_story 님의 모집, 비룡소 @birbirs 도서지원으로 우주세문단과 함께 읽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