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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당나귀 곁에서 ㅣ 창비시선 382
김사인 지음 / 창비 / 2015년 1월
평점 :
김사인 시는 발칙한 재미가 있다. 귀족들이 주로 오는 미술전에 신분이 낮은 양치기를 커다랗게 그려 귀족들이 양치기 소녀를 우러러 보게 한 또, 전설 속 영웅이나 귀족만을 그림의 중심에 그렸던 시대에 씨뿌리는 농부를 영웅처럼 그린 밀레의 그림처럼 발칙하다. ‘중국집 전씨’에서는 중국집 전씨가 껌을 따닥따닥 심는 모습을 마치 담배를 물고 있는 배우처럼 표현하는 등 주변에 작은 것을 크고 멋있게 그리는데 이것들이 너무 매력적이다.
이와 반대로 큰 것들을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그 발칙함도 너무 좋다. 국정원, 독재자, 늙음 등을 낄낄거리며 웃을 수 있게 만든다. ‘내곡동 블루스’에서 박정원 최정원 김정원 언어유희로 이름을 주욱 나열하고, ‘미안한 일’에서 화난 사람을 개구리가 고개를 쑥 내밀고 화난 듯 보는 것 같다고 하는 그 유쾌함이 너무 좋다.
이처럼 실실거리며 볼 수 있지만 그 이면에는 슬픔이 있다. 친구의 죽음, 어머니의 죽음, 가난, 외로움, 부조리, 노인, 노숙자 등 하나하나 무겁고 슬픈 주제다. 이것들을 떠올릴 때면 그 막막함이 그 절절함이 너무 깊어서 글로 그 심정을 쓰기 어렵다. 그렇다고 절절하게 쓰면 그건 또 싫다. 마치 오를 수 없는 산같이 느껴져서 오르기는 커녕 보기도 싫어진다. 그런데 김사인 시는 그런 절절함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야트막한 언덕과 같다. 즐겁다. 이는 ‘둥근 등’시에 나온 구절처럼 그 쓸쓸한 마음은 안으로 품고 밖에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소재를 사용했기에 그런 것 같다. ‘바보사막’이라는 시에서는 친구의 죽음을 하늘 영감과 장기 한판 간 것이라 말하고, ‘고비사막 어머니’에서는 떼쓰는 아이처럼 엄마 오늘 저녁에는 돌아오세요 콩국수 좀 만들어주세요 말하고, ‘바짝 붙어서다’에서는 폐지를 모으는 할머니가 승용차로 벽에 붙어서는 모습으로 말한다. 하나하나 쉽다. 재밌다.
그러나 모든 시가 이렇지는 않다. 중간에 담담하게 말하는 시들이 있는데, 시집 전체 구성으로 봤을 때 긴장감을 준다. ‘불길한 저녁’이나 ‘공포의 일기장’같은 시가 그러하다.
김사인 시인의 “어린 당나귀 곁에서”를 한마디로 말한다면, 둥근 등과 같다고 말하고 싶다. ‘둥근 등’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다. “순한 등 그 등에서는 어린 새도 다치지 않는다 감도 떨어져 터지지 않고 도르르 구른다 남모르게 따뜻한 등 업혀 자부럽고 싶은 등 쓸쓸한 마음은 안으로 품고 세상 쪽으로는 순한 언덕을 내어놓고” 이런 구절처럼 그의 시를 읽고 있으면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