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과 오크 문학과지성 시인선 464
송승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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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승언 시인의 시집은 있었음과 없었음 사이의 시편이 많다. 1부에서는 나의 생각(있음)과 현실(없음)과의 괴리를 노래하였고, 2부에서는 있음과 없음 사이에서의 몸부림을 노래하고, 3부에서는 있었음 또는 없었음의 희망과 절망에 대해서 썼다.


 1부에서 ‘모든 것을 볼 수 있었다’에 “오랜만에 공원에 갔어 다듬어진 길을 따라 걸으며 자주 보던 금잔화를 보려고 했지 그런데 그곳에 금잔화는 없었다”로 시작으로 사철나무, 주인 없는 개, 정자, 안개 등 생각 속에서 흐릿하게나마 공원에 존재하던 것들이 실제로는 없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모든 것이 흐린 공원이었는데 모든 것이 너무나 뚜렷이 잘 보인다” 라는 말을 나의 상상 속에서 흐릿하게 있었던 것들이 현실에는 없었다는 것을 잘 알게 되었다 라는 말로 볼 수도 있겠고 또는, 아무것도 없는 공원을 보고 내가 인식했던 공원이 상상이였음을 명확히 알게 되었다고 해석할 수 있겠다. ‘굴’에서는 명자라는 타자가 나오는데,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는 내용 끝에 마지막에 “몇 호실이니? 묻는데 대답이 없고 묻는 사람이 없다 정원에는 죽은 개미 떼 주인 잃은 작은 굴들” 말을 통해 있었다고 생각한 것들이 현실에서는 없었다는 것을 알게됐을 때의 허망함을 표현하였다. 이 허망함은 상상뿐 아니라 그 존재까지도 확장할 수 있을 것 같다. 즉, 자신이 존재한다고 믿지만 어쩌면 현실에는 자신이 없는 존재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을 시인이 인식했던 순간을 쓴 것이라 생각한다.


 2부에 ‘백조공원’ 에는 밝은 빛이 드는 공원에서 의미없이 걷는 사람들이 공원 중심의 순백의 백조 조각상 날개 그늘에 모여 서로간의 의미를 만드는 이야기가 나온다. “모여드는 사람들 펼친 날개의 그늘 아래 모두 만났다 서로의 창백한 얼굴을 보며 손 내민다 차가운 손을 너의 추위를 이해하거나 온기에 놀라기 위해” 빛으로 가득한 공간은 어쩌면 어둠으로 가득한 공간처럼 허공일지도 모른다. 그 속에서는 없음 만이 존재한다. 그런데 그늘이 생기고 그 밑에서 서로간의 얼굴을 확인하고 자신들이 있음을 인지한다. 다른 시편도 있음과 없음이 다른 단어들로 표현된다. ‘새와 드릴과 마리사’에서는 죽은 새(없음)와 살아 있는 새(있음)로, ‘공화국’에서는 밤(없음)과 불(있음)을, ‘철과 오크’에서는 침묵(없음)과 횃불(있음)을, ‘많은 손을 잡고’에서는 어둠(없음)과 손의 감각(있음)으로 다양한 단어들로 변주한다. ‘변검술사’에서 “펜다 잎사귀에 광선이 모인다 둥근 어둠, 이것은 유일한 합의점”이란 말을 통해 어둠이 가득한 허공 속에서 작은 횃불같이 있음을 인지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을 시인은 구원이자 희망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이는 1부에서의 느꼈던 괴리감과 허망함을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마지막 3부에서 ‘재앙’에서 “건물은 타들어간다 안에 사람이 있다고 너는 말한다 우리는 너의 말을 믿는다 불 속으로 뛰어들 수는 없지만 뛰어들려는 너를 막는다 생명을 구해라 너는 말하고 우리는 말하지 않는다 (중략) 다행히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럴 리 없다고, 네가 말한다” 말에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자신이 부정당하는 것이 재앙이라고 말한다. ‘나타샤’에서도 “나는 구출당합니다 창백한 어둠이 하나의 원으로 수렴되는 과정”이라는 말과 동시에 “의아한 표정으로 나는 끌려 나옵니다 나는 몇 개의 광물을 잃습니다” 라는 희망과 절망이 서로 나열된 것을 볼 수 있다. ‘재앙’에서는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믿는 장면에서 어둠 속에 불은 희망이 되었지만, 그것을 완전히 신뢰하지 않고 부정하는 사람들을 보며 절망하는 모습이 나열되어있고, ‘나타샤’에서는 어둠 속에서 빛으로 구출되는 희망과 자신이 갖고 있던 광물이 알고보니 쓸모없는 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절망 두 가지가 나열되어 있다. 이를 보면 2부에서 말한 없음에서 있음을 알게 해주는 것들이 시인에게 자신이 있음을 알려주는 희망이기도 하지만 다시금 없음을 두려워하거나 아무것도 아닌 자신을 알지도 모르는 절망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송승언은 이번 시편에서 철학에서 말하는 부조리 즉, 현실과 생각과의 괴리를 노래하고자 한 것이 아닐까. 그래서 시편들이 쉽고 단순하게 보이지만, 쉽게 이해되기 수 어려웠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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