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의 기술
이반 안토니오 이스쿠이에르두 지음, 김영선 옮김 / 심심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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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사라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대부분 그 의미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보다는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고 할 수 있다. 아마도 기억 또한 우리에겐 소유의 개념으로 인식되어서인지 마치 내가 소유했던 것을 상실한 느낌이 더욱 커서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망각이라는 것을 우리의 자연스러운 일상과도 같은 것으로 당연하게 서술하고 있다. 혹은 망각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기대할 수 있는 의미로써 재해석하도록 만들었다. 그렇다면 기억이라는 것 자체는 무엇이고, 기억이 사라진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21세기 들어서면서 우리 인간은 과거 추상적으로 막연하게 생각해왔던 모든 것들을 과학적으로 증명해내고 설명하고자 하는 시도들을 많이 해왔다. 우리의 마음에 대해서도 그러했고, 우리의 사랑에 대해서도 그러했으며, 우리의 기억에 대해서도 그러해왔다. 이 책에서도 뇌 과학적으로 우리의 기억을 설명해내고 있다. 겉표지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이미지와는 다르게 책의 내용에서의 기억은 매우 차갑고 딱딱한 뇌 과학적 용어들이 많이 나열되어있어 조금은 당황스러웠지만, 나의 기억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좋았다.

기억이라는 것도 종류가 있어, 서술기억인 의미기억과 일화기억, 그리고 절차기억이 있다. 이 모든 기억은 우리의 경험으로부터 이루어지는 것이며, 기억에 관련된 두뇌 영역을 살펴보면 주된 영역인 hippocampus와 인지처리를 담당하는 대뇌피질 영역과 연합되는 entorhinal cortex, 그리고 감정을 담당하는 amygdala가 함께 관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기억에는 감정적 요소가 중요함을 알 수 있으며, 기억을 토대로 인지처리가 이루어짐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모든 영역이 주로 측두엽에 자리 잡고 있어 기억을 위해 언어가 매우 중요함을 파악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언어를 익숙하게 사용하기 전인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이 없는 지도 모르겠다. 기억한다는 것은 말로써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이기에 언어로써 경험하고 이해하지 못한 기억은 지금까지 우리에게 기억되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강렬한 감정적 요소를 포함한 기억은 장기 기억되고, 엄청난 스트레스는 우리에게 기억상실과 같은 일을 발생시키는 것을 보면, 기억이라는 것에는 감정이 매우 중요한 요소임도 알 수 있다.

기억이 사라진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이 책에서는 망각의 기술에 대해 총 4가지를 언급하고 있다. 습관화, 차별화, 소거, 억압이다. 이 네 가지 기술을 쓰고자 하는 기억은 우리가 억지로 잊어버리고 싶은 나쁜 기억일 것이다. 나쁜 기억이 있다면 이 네 가지의 기술을 사용해 잊어버리도록 노력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바로 습관화인데, 매일 아침 듣는 라디오 방송에서 매주 한 번씩 정신과 의사가 나와 청취자들의 사연을 듣고 극복방안을 말해줄 때마다 주로 하는 상담방식과도 같아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 의사는 늘 자신의 가슴 아픈 경험을 묻어두려 하지 말고, 오히려 그것을 떠올리고 객관적으로 인식해보라는 상담을 주로 하는 편인데, 이 책에서 언급한 습관화 또한 나쁜 기억을 오히려 자꾸 떠올려 그 기억에 대해 무감각 해지도록 하는 것을 의미하였다.

또한 이 책에서는 비단 나쁜 기억뿐만 아니라 기억이 사라진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기억이 사라져야만 뇌가 효율적으로 또 다른 새로운 것을 기억하고, 처리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오히려 나이가 듦으로써 젊은 사람에 비해 기억을 상실하는 정도가 크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오히려 긍정적일 수 있음을 언급하면서 사소한 기억들은 인생을 크게 바라보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므로 나이가 든 중년이 회사에서 중역을 맡는 것이 더욱 적합한 일이지도 모른다고 언급하고 있다. 기억의 상실에 대해 오히려 희망을 갖게 하는 내용들이 제시되어 있었고, 기억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어 기분 좋은 시간이었다.

게다가 뇌 과학 연구결과들을 소개하며, 기억에 대해 객관적으로 이해시키는 내용들이 무척 흥미로웠고, 과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뇌 세포인 뉴런의 생성은 아주 어린시기까지만 가능하고, 그 이후에는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져 왔는데, 이 책에서는 최신 연구결과들을 통해 나이가 들어서도 뇌 세포의 생성이 가능한 것을 언급하고 있다. 나이 든 노인이 되어서 기존의 사소한 것들에 대한 기억이 사라질지라도 새로운 것을 학습하고 기억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주는 뇌 과학 연구결과이다.

다만, 조금 아쉬웠던 부분은 늘 뇌 과학 관련 책을 읽다보면 아쉬웠던 부분으로 남는 것이 동일하게 나타났다. 바로 뇌 영역을 소개할 때 한글로 번역된 것만 제시하기 보다는 원어로 그 영역을 함께 적어 소개해주는 노력이 있었으면 한다. 뇌 과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항상 원어로만 공부를 하다 보니, 한글로 번역된 용어는 참 낯설게 느껴진다. 다음 개정판이 나온다면 뇌 영역에 있어서는 한글 번역된 내용 옆에 괄호 속에 원어로 된 용어를 함께 써준다면 책의 내용에 보다 더욱 집중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찌되었건 사회가 복잡다변화해지면서 더더욱 기억할 것들이 많아지고,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노인들에 대한 재개념화가 필요해졌으며, 경제적 논리에 치우쳐 인간관계를 맺고 상처받는 것이 당연해지고 있는 요즘, 기억과 망각에 대해 새로운 의미로 생각해볼 수 있게 해준 책이었다.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한번쯤은 권해보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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