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쇼 - 세상을 지켜온 작은 믿음의 소리
제이 엘리슨 지음, 댄 게디먼 엮음, 윤미연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예전 대학시절 학교 가는 버스에서 여성시대를 즐겨들었던 기억이 난다. ‘라라랄라~’ 로 시작하는 경쾌한 시그널 그리고 엄마 또래의 여성 진행자가 천천히 읊어주는 우리 어머니들의 진솔한 사연들은 나의 마음에 지금도 깊이 남아있다. 다른 어떤 매체와 견줄 수 없을 만큼 파장으로 나의 마음을 움직였고, 나를 울게 하고 웃게 하며 따뜻하게 보듬어 주었다. 그때 버스 창안으로 들어왔던 따스한 햇볕조차 내 기억에 생생할 정도니까 말이다. 라디오에 전해지는 사연들은 정말 진솔했다. 매체에 익숙지 않은 우리 어머님들의 한자 한자 써내려간 사연 속에서 그 순수함도 함께 느낄 수 있어 너무 좋았다. 진행자의 말솜씨 또한 빠르지도 능수능란하지도 않은 그저 순박하고 평범한 어머니들의 목소리로, 그리고 약간 울먹이기도 하는 억양과 차분하고 느릿한 톤이 세상 살아가는 사연에 녹아 우리에게 거부감 없이 자연스레 전달되었다.




 이 책은 그런 추억을 가진 나를 매료시켰고 다시 한 번 그 따스한 기억으로 돌아가게 했다. 책에 소개된 짤막한 이야기들은 미국의 유명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사연들로 구성되어있다. ‘라디오 쇼’ 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은 1949년에 시작된 60년의 역사가 있는 프로그램이며, 사연들 또한 길게는 60년 전에 쓰여진 내용들도 담겨져 있다. 사람 사는 인생 이야기는 어느 시대나 같아서인지 쉽게 공감하며 읽혀졌다. 마치 책으로 따지자면 잔잔한 감동을 주는 고전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이 사연들을 하나로 아우르는 주제는 각자 주어진 삶을 지켜 준 내 삶의 가치관이다. 만약 지금 내게 이런 주제로 생각할 시간이 주어진다면 나는 뭔가 거창한 것을 떠올리려 애를 쓸 것이다. 그리고 종교적인 신념과도 같은 심오한 것들을 하나씩 열거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에 쓰여진 가치관들은 너무나도 소소한 그래서 조금은 실망할 수도 있는 가치들이었다. 예를 들자면 ‘피자배달원에게 친절을 베풀어라. 그러면 행운이 찾아 올 것이다.’ 라던지 ‘택시는 절대 타지 않는다.’는 것이다. 분명 너무 사소해서 ‘왜?’ 라는 의문이 들것이다.

먼저 언급된  ‘피자배달원에게 친절을 베풀어라. 그러면 행운이 찾아 올 것이다.’ 는 피자배달원이라고 특별히 지칭하는 것은 미국 문화를 어느 정도 대변하는 것이겠지만, 피자가 익숙해진 우리나라 상황에서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찌됐건 그 이유는 직업에는 귀천이 없기에 인간으로서 평등한 가치를 인정하고 존경할 줄 알아야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갖는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또한 비윤리적인 부자들과 상반되는 그들의 정직함과 성실함 때문이며, 어느 누구를 가리지 않고 피자를 배달해주는 배달원에게 관용을 베푸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피자배달원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은 평등한 인간 존엄을 인정하는 행위이고, 그들의 정직함과 성실함을 우러르는 행위이며, 그들의 겸손함과 사랑을 배우는 행위인 것이다.

‘택시를 절대 타지 않는다’는 신념은 인생을 하나의 여행으로 생각하는 데서 비롯된다. 아무도 없는 곳으로의 여행은 배울 것도 느낄 것도 없다는 것이다. 과연 그런 여행은 참다운 의미가 있을지 생각해 보게 한다. 택시는 운전기사가 있을지라도 일상 속에서 혼자만의 여행을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버스나 지하철과 같은 보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보다 경험하는 것도 배우는 것도 느끼는 것도 훨씬 적다고 여기며 사람들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가치관을 말하고 있다.




 처음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은 심심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다. 아마도 60년 이라는 시간의 변화 때문이리라 생각된다. 과거는 천천히 그리고 조그만 일에도 큰 의미를 두고, 신중하게 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와 반대로 현대 사회는 보다 빨리 그리고 충동적이고 더 강렬한 무언가에 의미를 두며 살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대 문화의 흐름도 이것을 뒷받침하리라 생각된다. 무성영화 시대 흑백에 소리도 없는 찰리채플린의 몸동작, 표정  하나하나에 웃었던 우리들이 이제는 소리가 있고, 화려한 색도 보여지는 것들에 더 나아가 보다 강인한 임팩트를 경험하기를 원하고 그러한 것들만을 즐겨 보고 있다. 과거와 현재, 삶의 중요한 부분이 무언가 묻는다면 그 대답에도 엄청난 차이가 있으리라 생각된다. 이 책의 다양한 사연들을 접하면서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라디오라는 매체는 다른 매체들과 달리 인간 내면의 감수성을 깨우고, 그 안에 잠자고 있는 진실성을 꺼내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 이 책을 통해 한층 더 깊게 나 자신과 우리모두의 숨겨진 감성과 진실성에 다가가 보기를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