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하게 사는 법, 죽는 법 - 엔도 슈사쿠의 인생론, 향기 가득한 교양산문의 빛나는 경지
엔도 슈사쿠 지음, 한유희 옮김 / 시아출판사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 누에고치는 나비를 해방시킨다.

이 책은 유명한 일본 작가 엔도 슈사쿠의 인생에 관한 수필집이다. 나는 그의 책을 정작 한 권도 읽어 본 적은 없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가 쓴 책들을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며, 이 작가 개인뿐만 아니라 그의 또 다른 저서들에 까지 관심을 갖게 되었다. 나는 솔직히 책을 읽으면서 고전 소설이나 희곡 즉, 프란츠 카프카나 아서 밀러 등을 제외하고는 작가에게 크게 관심을 가져 본 적이 없는데 조금은 나로서는 이례적인 반응이었다. 아마도 그가 생을 다하는 순간에 이 책을 남겨서 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난 그와 그의 마지막 순간들을 함께 동행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그에 대해 어딘가 모르게 동정심과 연민의 감정을 품거나 혹은 그의 대처하는 자세에 있어서 존경심마저 갖게 되었다.

이 책은 그야 말로 유쾌하게 사는 법, 죽는 법을 말하고 있다. 유명한 구절들과 더불어 이야기 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운을 주어 읽는 내내 사색의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었다. 이 책을 다 읽은 지금에도 매화 향기가 머릿속에 남아있고, 흩날리는 벚꽃이 하나의 풍경처럼 지나간다. 저자는 기억에 남는 풍경이 얼마나 인간에게 향수처럼 중요한 것인지 말하고 있다. 과거 어린 시절의 풍경을 찾아 노년의 나이에 고향을 찾는 그 애틋한 마음에 대해 이야기 하며, 지금의 마구잡이식 개발정책을 비판했다. 풍경에 대한 저자의 그런 애틋함 때문이었는지 이 책은 독자들의 머릿속에 어떤 풍경을 심어주고자 노력한 것 같다. 그런 연유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내 머릿속에는 여러 풍경들이 스쳐지나간다.

예전에 죽음을 삶의 한 부분으로 여기며, 삶의 종착역인 죽음에서 삶을 반추해 볼 수 있도록 유언장을 써보는 것이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퍼진 적이 있다. 자살이 만연해진 이때 그런 유행이 다시 퍼지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죽음을 앞두면 내가 살고 있는 이 삶이 얼마나 소중한 지 느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이 책은 두렵고 무섭기 까지 한 죽음을 내 삶의 하나로 여기게 만들었다. 죽음의 순간에서 이때껏 내게 주어진 모든 인연과 내가 겪은 다양한 경험들 그리고 그 속에서 얻은 잊고 싶을 만큼의 크나큰 고통과 좌절. 이 모든 것이 결국 내 자신에게 무의미한 것이 아닌, 온통 감사해야 할 것들로 변모하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어찌됐건 그 모든 것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지금의 이 순간, 순간을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 주변의 모든 것들에 대해서도..

또한 사후를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죽음이 어떠한 것인지도 저자는 자세히 이야기 해주었다. 마치 이 부분에서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신을 달래는 듯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다면 유쾌하게 사는 법은 어떠할까? 바로 죽음을 삶의 종착역, 완성이라고 여기고 그 전까지 정말 열심히 사는 것이다. 저자는 구체적으로 다양한 삶을 사는 것이 유쾌하게 사는 법이라고 말한다. 다양한 삶. 예를 들어 저자는 글을 쓰는 사람이기도 했지만, 연극공연을 하기도 하고, 사회봉사를 하기도 하며 다양한 인간관계 속에서 조용한 삶을 살거나 춤을 추는 경쾌한 삶을 살며 다양한 자신을 끌어내 유쾌한 삶을 살았다. 모든 인간에게 주어지는 똑같은 인생 시간을 어떻게 알차게 보내느냐가 얼마나 잘 사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끝내 죽었다. 아마도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상 무언가로부터 속박당하는 누에고치에서 해방되어 나비가 되어 자유로이 하늘을 날고 있을 것이다.

예전 ‘도자기’라는 책에서 읽은 내용 중에 사람은 죽으면 하얀 사리처럼 하얗게 변한다고 한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늘에서 내린 흰 눈을 그리워하며 기다린다고 말했다. 죽은 누군가를 기다리듯이 말이다. 이 책에서도 저자는 흩날리는 하얀 벚꽃에 죽은 이를 비유했다. 모두가 두려워하는 죽음이라는 것을 아름답게 이야기 해주는 것만큼 우리 사람들에게 큰 위안이 되는 것은 없을 듯 싶다. 참 마음 따뜻하게 읽은 책이었다. 인생을 사는 누구라면 꼭 한번 읽어봤으면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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