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비테의 공부의 즐거움 - 아이와 함께 읽어야 더 효과적인 자녀교육 바이블
칼 비테 지음, 남은숙 옮김 / 베이직북스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칼 비테 목사의 아들 Jr. 칼 비테가 자신이 아버지에게서 교육받은 것들을 소개하듯 이야기하고 있다.

내가 유아교육을 전공했고, 교사로서 아이들을 가르쳤고, 지금 현재도 아이들을 위한 일을 하고 있기에 모든 구절마다 그냥 지나쳐 지지 않았다.

다시 말하자면, 칼 비테 목사의 교육법에 동의하는 부분, 감탄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어느 부분에 있어서는 납득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만약 잘 모르는 이가 이 책을 봤다면 비테 목사의 교육에 대한 내면적 목적과 가치는 이해하지 못한 채 몇몇 잘못된 방식의 교육방법을 마치 옳은 것 인양 모방할까 겁이 났다.

특히, 놀잇감의 중요성을 인지하지 않은 채 전혀 사주지 않았다는 것과 어린 나이의 비테가 많은 친구들을 사귀는 것을 싫어하는 부분, 아이의 작품을 비판하는 부분 그리고 불량 아이들을 만나 도움을 요청한 비테에게 스스로 해결하라고 말하는 부분들이 너무나도 놀라웠다.

물론 비테 목사의 교육 가치에 대한 신념과 자녀에 대한 사랑과 노력, 끊임없는 대화, 늘 항상 곁에서 친구가 되어주었던 점 등은 정말 높이 살만 하다.

여하튼 나로서는 읽는 내내 교육서이기에 또한 훌륭하다고 대중에게 인정받는 사람의 이야기이기에 조금은 두려웠다. 로버트 치알디니의 ‘설득의 심리학’에서 언급된 것처럼 이 책이 독자들로 하여금 권위의 법칙에 설득당할까 더욱 두려웠다.

거의 마지막 부분에 주니어 칼 비테 자신 또한 아버지의 교육방법이 100% 완전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고 말하는 부분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그 한 줄의 내용을 다른 독자들 또한 깊이 생각해 볼지 의문이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비테 목사가 교육에 있어 후천적 환경의 영향을 중시 여겼던, 경험론적 인식론으로 대변되는 로크의 영향을 받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다. 끊임없이 비테에게 필요한 교육적 경험과 환경이 무엇일지 고민했다. 그리고 그것을 채워주려고 노력하였다. 어떨 때는 온전히 제공했고, 어떨 때는 가능성만을 제공하고 비테 스스로 채워가도록 하였다.

내가 이 책을 읽고, 비테 목사에게서 배운 것이 3가지 있다. 아이를 낳기 전에 아이에 대한 책임감 갖기를 우선으로 한 것이다. 내가 진정 태어난 아이를 위해 무언가를 해줄 수 있는지, 내가 아이를 위해 준비되어있는지 나의 부모로서의 책임감 지수를 체크해 본 것이다. 예전 ‘우리아이를 위한 부부 사랑의 기술’이란 책에서도 읽은 기억이 나지만 대부분의 부모들은 준비를 갖추거나 책임감 지수를 체크하지 못하고, 단지 아이에 대한 환상만을 갖은 채, 나를 기쁘게 해주리라는 아이에 대한 바람만을 가진 채 아이를 낳는다. 그리고 결국은 태어난 아이가 내 바람을 채워 주기는커녕, 오히려 나를 귀찮게 하고, 내 도움만을 바라는 아이가 되어버려 부모는 아이로 인해 고통 받고, 아이 또한 불행해지고, 결국 부부마저 불행해진다고 언급했었다. 부모로서의 책임감을 체크해보는 일은 소위 가족계획을 세울 때 가장 필요한 일 일 것이다. 단순히 몇 명을 낳아 경제적으로 어떠할지 생각하기 전에 말이다.

또한 이 책에서 내가 값지게 얻은 것은 항상 부모가 함께 해주었다는 것이다. 몸이 그렇지 못할 때는 편지로라도 함께 해주었다. 아이에게 진정한 스승이 되었고, 친구가 되어주었다. 이 험난한 세상, 갈수록 복잡해지고, 다면화되고, 만나는 주기 또한 짧아진 인간관계 속에서 혼란함 속에 진정한 친구가 되어주고, 항상 함께한다는 신뢰와 믿음을 주는 것은 부모로서 가장 큰 역할 일 것이다. 지금 현재에 시사하는 바가 크리라 생각된다. 내 주변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요즘은 맞벌이 부부가 늘고 있다. 그래서 아이를 낳기만 할 뿐 내 인생, 내 일에 아이가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진 부부가 많다. 예전에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아이를 대신 돌봐주기도 했지만 현재는 노인인구가 많이 늘어나고, 노령화 사회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노년의 또 다른 인생을 꿈꾸고 있다. 어느 누구에게도 방해받거나 희생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결국 아이들은 독립적으로 자립하지 못하는 이상 정서적으로 버려지고 만다. 아마도 맞벌이라는 경제적 풍요로 물질적으로는 풍요할지 모르겠다. 내가 교사생활을 하면서 절실히 느낀 것이 하나 있다면 아이들 곁에는 부모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분명 차이가 있다. 일하는 엄마의 아이와 함께 집에 있는 엄마의 아이는 정말 다르다. 교사 생활을 해본 사람들은 아마 동감하리라 생각한다. 물론 그들 엄마들의 질적인 문제도 있겠지만 대부분이 그러했다. 아이들은 온전히 자신을 사랑해 주고 함께 있어주며 기쁠 때 함께 기뻐하고 힘들 때 자신에게 도움을 주는 신뢰할 만한 존재가 필요한 듯하다. 그런 신뢰와 사랑이 온전히 충만한 아이들은 유치원이라는 최초의 사회기관에 나와 서로 다른 친구들과도 원만히 교제해나간다. 또한 교사와의 관계에서도 성공적이다. 그리고 모든 활동을 함에 있어서도 자신감 있고, 능동적이다. 이 또한 부모와 함께하는 질적인 문제에 따라 다를 것이다. 이 책에서도 언급하고 있지만 그 수위를 잘 지켜야 한다. 사랑이 자칫 과잉보호가 되지 않도록 말이다. 다시 한 번 느낀 것이지만 진실로 어려운 것이 자녀 교육이 아닐까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얻은 것은 자연 학습법이었다. 2가지로 이해할 수 있겠다. 첫 번째는 말 그대로 자연의 것들과 놀게 하는 것이다. 자연 속에서 아이들은 과학적인 원리도 배울 뿐 아니라 자연의 이치, 관계성, 신비함, 경외감,  미적 아름다움 등을 배울 수 있게 된다. 또한 더불어 몸의 건강까지도 얻을 수 있다. 자연을 통한 전인교육은 실로 그 효과가 크다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자연적으로 학습하게 하라는 것이다. 강제적 학습이 아닌 흥미를 갖게 한 후 스스로 아이가 학습하게 하는 것이다. 또한 아이가 즐겁게 하고 있는 놀이 속에서 학습할 거리를 찾아 알려주는 것이다. 그야말로 아이가 학습을 자연적으로 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렇듯 조금의 비판할 거리를 가지고는 있지만 자녀 교육에 있어서 한 번 더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었고, 많은 중요한 사실들을 다시 깨달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이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그것이 온전히 100% 옳지 않음을 말해주고 싶다. 내 아이에게 맞는 교육을 계속 꾸준히 고민해 보고 노력한다면 분명 나만의 좋은 교육법이 만들어 질것이다. 또한 그것은 나 혼자만이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닌 아이와 함께 만들어 가는 것임을 알아야 하고, 아이의 반응에 민감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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