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률 완역 삼국지 1
나관중 지음, 백남원 그림, 박상률 옮김 / 북플레저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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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률 완역 삼국지 1> / 나관중 지음 / 박상률 옮김 / 백남원 그림 / 북플레저 펴냄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오래된 돌문을 여는 일이 아니라, 아직도 숨 쉬는 목소리를 만나는 일이다. 삼국지연의는 수백 년 동안 사랑받아 왔지만, 우리는 그 목소리를 얼마나 또렷하게 들었을까. 요약과 각색, 과장과 생략 속에서 진짜 이야기는 종종 흐릿해졌다. 그런 점에서 박상률 완역 삼국지 1은 탁한 거울을 닦아내듯, 고전의 결을 맑게 되살린다.

이번 완역은 중국에서 가장 신뢰받는 정본인 수상삼국연의를 바탕으로 했다. 그러나 이 책의 진짜 힘은 저본의 권위에만 있지 않다. 박상률의 우리말은 칼날처럼 번뜩이기보다, 잘 벼린 농기구처럼 단단하고 익숙하다. 한자말의 숲을 헤치고 나와 숨이 트이는 문장들. 대사는 살아 움직이고, 생략되기 일쑤였던 시와 노래는 한 줄도 빠짐없이 되살아나 장면의 온도를 높인다. 이야기가 달릴 때는 말발굽 소리가 들리고, 고요해질 때는 먼지 위에 내려앉는 달빛까지 따라온다.

1복숭아밭에서 다짐하다는 거대한 영웅담의 출발점이다. 혼란한 시대, 황건적의 난 속에서 유비와 관우, 장비가 의를 맺는 장면은 단순한 맹세가 아니다. 그것은 난세를 건너는 세 사람의 심장 박동이 맞춰지는 순간이다. 작은 맹세가 훗날 천하를 흔드는 파동이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지만, 이 완역본에서는 그 첫 떨림이 더욱 선명하다.

무엇보다 반가운 점은 읽히는 삼국지라는 것이다. 괄호 설명에 발목 잡히지 않고, 과도한 한자에 막히지 않는다. 이름과 자의 쓰임을 섬세히 살리면서도 독서의 흐름은 물처럼 이어진다. 20년 동안 다듬고 또 다듬은 문장은 세월을 통과한 나무결처럼 깊다.

삼국지를 세 번 읽지 않은 사람과는 세상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이제는 이 완역본으로 다시 읽을 차례다. 오래된 영웅담이 아니라, 오늘의 삶을 비추는 거울로서의 삼국지. 한 번 펼치면 쉽게 덮기 어렵다. 책장을 넘기는 손끝에서, 복숭아꽃 향기와 함께 난세의 바람이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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