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관한 짧은 이야기 머묾 세계문학 사랑 3부작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정지현 옮김 / 머묾 / 202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에 관한 짧은 이야기> /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 정지현 옮김 / 머묾 펴냄

 

 

 

사랑에 관한 짧은 이야기는 피츠제럴드가 평생 붙들고 살았던 감정의 유령, 곧 사랑과 기억이 어떻게 인간을 흔들고 속이고 때로는 지탱하는지를 섬세하게 보여주는 단편집이다. 화려한 재즈 시대의 파티보다도, 이 짧은 이야기들 속에는 훨씬 깊고 쓸쓸한 인간의 내면이 흐른다.

특히 비행기를 갈아타기 전 세 시간은 첫사랑이라는 것이 얼마나 쉽게 기억 속에서 왜곡되고 미화되는지를 잔인할 만큼 정확하게 드러낸다. 도널드는 단 세 시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과거를 되찾으려 하지만, 결국 그가 사랑했던 대상조차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는 사실과 마주한다. 그 순간 느껴지는 허탈감은 마치 오래 붙잡고 있던 꿈이 손에서 모래처럼 빠져나가는 느낌을 준다. 나라면 어땠을까를 생각해 보게 된다. 아마 나 역시 도널드처럼 과거를 확인하고 싶어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읽고 나서는 차라리 첫사랑은 추억 속에 남겨 두는 편이 더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기억은 진실이라기보다 우리가 바라는 모습으로 재구성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기나긴 외출은 사랑이 인간을 살게도 하지만 동시에 가두기도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킹 부인은 남편과 아이들을 향한 사랑 덕분에 매일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처럼 살아간다. 그러나 그 행복은 거짓 위에 세워진 성이다. 진실을 알면 무너져 버릴 정신을 보호하기 위해 모두가 그녀를 속이고, 그녀는 평생 같은 순간에 머무른다. 나는 이 이야기를 읽으며 슬픔보다 더 무서운 것이 영원한 행복의 착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라면 진실을 알고 고통받더라도 현실을 선택하고 싶을 것 같지만, 과연 그 고통을 견딜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다.

이 단편들은 위대한 개츠비와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개츠비 역시 사랑과 기억에 사로잡혀 과거를 되살리려 했던 인물이다. 데이지를 향한 그의 집착은 도널드의 재회 시도와 닮아 있고, 현실을 부정하고 환상 속에서 살아가려는 모습은 킹 부인의 삶과 닮아 있다. 피츠제럴드는 긴 소설과 짧은 이야기 모두에서 사랑이 인간을 얼마나 쉽게 눈멀게 하는지를 반복해서 보여준다.

이 책을 덮고 나면 사랑이란 아름다운 감정이면서도 동시에 위험한 환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랑은 기억과 결합될 때 더 강해지고, 그 기억이 왜곡될수록 인간은 더 깊이 빠져든다. 피츠제럴드는 짧은 분량 속에서 그 사실을 놀라울 만큼 날카롭게 찔러 넣는다. 그래서 이 단편들은 읽고 나서도 오래 마음에 남는다. 사랑을 믿고 싶으면서도, 그 사랑이 만들어내는 착각을 경계하게 만드는 책이라 느낀다.

 

 

#사랑에 관한 짧은 이야기#위대한 개츠비#머묾출판사#기나긴외출#비행기갈아타기 전 세시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