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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속의 타인
임수진 지음 / 문이당 / 2025년 9월
평점 :
<내 속의 타인> / 임수진 지음 / 문이당 펴냄
임수진의 『내 속의 타인』은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내면을 정밀하게 해부한 소설집이다. 작가는 개인의 불행과 상처를 통해 인간이 타인과 자신을 어떻게 인식하고 왜곡하는지를 보여준다. 여덟 편의 단편은 모두 다른 인물과 상황을 다루지만, 그 밑바탕에는 “불안과 고립 속의 인간”이라는 공통된 주제가 흐른다. 여덟편 중 몇가지만 소개해 본다.
〈유리 벽〉은 통제와 의심으로부터 비롯된 인간의 내면적 공포를 보여준다. 남편의 과보호에서 벗어나려던 여주인공이 낯선 남자를 성폭행범으로 의심하며 공포에 휩싸이는 모습은, 최근 사회를 뒤흔드는 범죄 뉴스와 여성의 불안 심리를 그대로 반영한다. 현실에서도 ‘데이트 폭력’, ‘스토킹 살인’과 같은 사건이 잇따르며 타인을 향한 두려움이 일상이 되고 있다. 작가는 이러한 현실적 공포를 인간의 심리적 투사로 형상화한다.
〈다시, 숨〉은 코로나19 이후의 상실감과 삶의 회복을 다룬다. 후각을 잃은 남자가 과거의 냄새를 통해 존재의 의미를 되찾는 과정은, 팬데믹으로 인해 인간이 겪은 단절과 회복의 여정을 상징한다. 최근 ‘고립사’나 ‘정신적 번아웃’이 늘어나는 사회에서 이 작품은 삶의 감각을 되찾는 행위가 얼마나 절실한지를 일깨운다.
〈내 속의 타인〉은 가족 내 경쟁과 질투, 사회적 위선이 만들어내는 자아의 붕괴를 그린다.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인간의 모습은 SNS 속 비교와 시기, 외모와 성공으로 타인을 재단하는 현실을 닮아 있다. 작가는 인간관계 속에서 ‘진짜 나’는 점점 사라지고, 타인의 시선으로 구성된 가짜 자아만 남는 현실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숙주〉는 가정폭력의 세습을 통해 폭력이 개인의 문제를 넘어 구조적 문제임을 드러낸다. 최근 부모의 학대나 아동학대 사건이 잇따르는 현실에서, 폭력은 단순한 일탈이 아니라 사회가 길러낸 괴물임을 작가는 암시한다.
〈함께 있어도 혼자〉는 군중 속의 고립을 보여준다. 노년의 외로움과 단절은 사회적 돌봄이 약화된 현대의 초상이다. 사람들 속에서도 외로움을 느끼는 인물의 모습은 SNS 속 ‘소통’이라는 허상과 맞닿아 있다.
〈너는 너를 의심했다〉는 불신으로 무너진 부부 관계를 통해, 신뢰가 사라진 시대의 불안을 그린다. 최근 가정폭력과 ‘가스라이팅’이라는 단어가 자주 회자되는 현실에서, 의심은 사랑을 파괴하고 존재를 왜곡시키는 가장 잔인한 감정임을 보여준다.
내 속의 타인』의 소설집은 거창한 사건이 아닌 일상 속 균열로부터 인간의 불안을 탐색한다. 현실의 뉴스에서 매일 접하는 폭력, 의심, 고립, 단절의 장면들이 그대로 소설 속 인물들의 삶에 투영되어 있다. 작가는 이를 통해 말한다. “타인은 언제나 내 속에 있으며, 그 불안은 곧 나 자신이다.”
『내 속의 타인』을 읽으며 인간의 불안과 고독은 누구에게나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타인을 향한 두려움과 의심은 결국 내 안의 불안에서 비롯된 것임을 느꼈다. 소설 속 인물들이 보여주는 상처와 고립은 뉴스 속 사건들과 다르지 않다. 나 또한 일상 속에서 보이지 않는 유리벽을 만들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돌아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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