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필사: 헤르만 헤세 편> / 헤르만 헤세 지음 / 코너스톤 펴냄
『하루 필사: 헤르만 헤세 편』은 단순히 글을 베껴 쓰는 책이 아니라, 자신과 마주하는 깊은 사유의 시간을 선물하는 책이다. 손끝으로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마음의 속도가 느려지고, 그 느림 속에서 생각이 깊어진다. 필사는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생각의 쉼표’이며,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고요한 명상과도 같다. 책에는 헤르만 헤세의 대표작인 『수레바퀴 아래서』, 『데미안』, 『싯다르타』의 주요 문장들이 수록되어 있다. 세 작품 모두 ‘나를 찾는 여정’이라는 공통된 주제를 품고 있다. 헤세는 인생의 고통과 성장, 인간 내면의 분열과 화해를 통해 우리에게 묻는다. “너는 진정 누구인가?” 필사를 하며 한 문장 한 문장을 따라갈 때마다, 그 질문이 내 안으로 스며든다. 마치 헤세의 목소리가 잔잔히 마음속에서 울리는 듯하다.
책을 필사하는 동안 가장 인상 깊었던 문장은 『수레바퀴 아래서』의 “영원히 아물지 않는 상처: 이런 파괴와 균열은 다시 치유되고 회복되어 잊히겠지만, 가장 깊숙이 자리한 비밀의 방에서는 여전히 살아남아 피를 흘린다.”라는 구절이다. 이 문장은 인간의 상처와 회복, 그리고 그 안에 남는 기억의 무게를 절묘하게 표현한다. 필사를 하며 이 문장을 옮길 때, 나 또한 내 안의 오래된 상처들을 떠올리게 되었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시간이 되었다. 글씨로 옮긴다는 행위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마음의 치유였다. 또 다른 인상 깊은 문장은 『데미안』의 “만약 우리가 어떤 사람을 미워한다면, 이는 상대의 모습에서 우리 자신 안에 있는 무언가를 보았기 때문이오.”라는 구절이다. 필사를 하며 이 문장을 적을 때, 내가 미워했던 사람들 속에서 사실은 내 불안과 결핍을 보았다는 깨달음이 찾아왔다. 미움의 근원이 타인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는 것을 문장 속에서 다시금 배우게 된다.『싯다르타』의 “상처가 꽃을 피우기까지”라는 문장 역시 오래 마음에 남는다. 고통의 경험이 언젠가 빛이 되어 나를 성장시키는 순간이 있음을 떠올리게 한다. 필사는 이처럼 단어 하나하나를 음미하며 문장 속의 숨결을 체득하는 과정이다. 읽기와 쓰기의 경계를 허물고, 사유와 감정이 손끝으로 이어진다.
필사를 하면 마음이 고요해진다. 손으로 글씨를 쓰다 보면 복잡한 생각이 정리되고, 마치 실타래를 푸는 듯한 평온이 찾아온다. 그리고 집중력이 향상된다. 한 문장을 온전히 따라 쓰며 의미를 곱씹는 과정은 단순한 독서보다 깊은 몰입을 가능하게 한다. 마지막으로 자신을 성찰하게 된다. 문장을 따라 쓰다 보면 자연스레 자신의 감정과 생각이 떠오르고, 글의 의미를 자기 삶에 대입해보게 된다. 필사는 결국 ‘글을 쓰는 명상’이다.『하루 필사: 헤르만 헤세 편』은 그런 명상을 위한 최적의 책이다. 고급스러운 양장본의 물성과 은은한 디자인은 책을 펼치는 행위 자체를 하나의 의식처럼 느끼게 한다. 하루 한 페이지씩, 한 문장씩 쓰다 보면 헤세의 문장과 내 일상이 맞닿는다. 짧은 시간이라도 글과 나 사이의 온전한 대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가을의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이 시기에, 이 책은 조용한 위로가 되어준다. 아침 햇살 아래 커피 한 잔과 함께 필사를 하면 하루의 시작이 달라진다. 마음의 속도를 늦추고 사유의 깊이를 되찾는 시간, 그것이 바로 『하루 필사: 헤르만 헤세 편』이 주는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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