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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꽃 아가
이해인 지음, 김진섭.유진 W. 자일펠더 옮김 / 열림원 / 2025년 7월
평점 :
<눈꽃 아가> / 이해인 지음 / 김진섭, 유진 W. 자일펠더 옮김 / 열림원 펴냄
이해인 수녀의 『눈꽃 아가』 개정판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그 속에 깃든 깊은 영성을 담아낸 시집이다. 시집은 단순히 자연을 노래하는 것을 넘어, 고독과 사랑, 기도를 통해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가는 한 수도자의 오랜 여정을 보여준다. 등단 50년, 수도 생활 61년의 세월이 응축된 이 시편들은 독자들에게 내면을 들여다보는 창을 열어주며, 고요한 성찰의 시간을 선물한다. 시집은 '자연', '사랑', '고독', '기도'라는 네 가지 주제로 나뉘어 있으며, 각 시편은 맑고 순수한 언어로 삶의 본질적인 질문들을 던진다. 눈처럼 순결한 흔적을 남기고 싶다는 시인의 고백처럼, 이 시집은 읽는 이의 마음에 따뜻하고 깊은 울림을 남긴다.
이 시집을 읽으며 가장 깊은 인상을 받은 시는 <엉겅퀴의 기도>이다. 이 시는 현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과정에 대한 고백으로 다가온다. 시인은 "제가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지 가겠습니다"라고 노래하며, 자신의 삶을 주님께 온전히 맡기는 겸허한 자세를 보여준다. 엉겅퀴의 '가시'가 상징하는 고통과 시련 속에서도 '꽃'을 피워내는 기쁨을 노래하는 부분에서는, 삶의 어려움을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이를 통해 더욱 성숙한 존재로 거듭나겠다는 시인의 강한 의지가 느껴진다.
특히 "저의 보랏빛 반란이 너무도 길었음을 용서하십시오"라는 구절은, 엉겅퀴의 보랏빛 꽃처럼 화려하지만 속으로는 흔들렸던 지난날에 대한 깊은 참회를 담고 있다. 이는 일상의 잔잔한 평화와 고운 질서를 거부하고 방황했던 자신의 내면을 솔직하게 고백하는 부분이다. 시인은 이 고백을 통해 허영심을 버리고 '그대로의 저'가 되겠다는 결심을 다진다. 이는 자신의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성숙한 태도이다. 이 시를 읽으며 나의 지난날을 돌아보고, 나 역시 얼마나 많은 '보랏빛 반란'을 거치며 흔들려왔는지를 되짚어본다.
『눈꽃 아가』 시인의 말처럼, 눈은 이내 녹아 사라지지만 그 순결한 흔적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이 시집은 바로 그러한 마음의 흔적을 남기는 책이다. 시인의 솔직하고 겸허한 고백은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게 만들고, 내면의 평안과 안정을 찾도록 이끈다. 특히 <엉겅퀴의 기도>처럼 현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묵묵히 걸어가겠다는 다짐은 독자들에게 깊은 공감과 위로를 전한다.
어느덧 입추가 지나고 가을의 문턱이 다가오는 이 시기에 『눈꽃 아가』를 읽는 것은 더욱 의미가 깊다. 시집이 주는 고요함과 순수함은 번잡한 일상 속에서 잠시 멈춰 서서 나 자신을 성찰하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나 역시 시인처럼 나의 말들이 쉽게 흩어져버릴지라도, 내가 쓴 글들이 다른 이의 마음에 오래 기억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이 시집과 함께 시작하는 가을은, 내 마음을 더욱 순수하고 겸허하게 가꾸는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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