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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 (30만 부 기념 에디션)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8월
평점 :
<안중근의 번뇌>하얼빈/김훈/문학동네
안중근 의사의 삶과 이토 히로부미 저격을 다룬 이 소설은 단순한 역사적 사실의 나열을 넘어, 그의 신념과 번민, 그리고 결단의 과정을 깊이 있게 조명한다. 특히 소설은 안중근의 내면적 갈등과 종교적 신념 속에서 살인을 결심하는 과정, 그리고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는 그의 투쟁을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그의 행동은 단순한 복수를 넘어, 조선과 아시아의 독립을 위한 필연적인 선택이었다.
이토 히로부미가 저지른 15가지 죄악은 한국의 자주성을 철저히 파괴하고, 일본의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명성황후 시해, 황제 폐위, 을사늑약 강제 체결, 경제적 착취와 문화 탄압 등은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한국인의 삶을 송두리째 무너뜨린 침략 행위였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안중근 의사는 단순한 항거가 아닌, 조선을 위한 전략적이고 체계적인 행동을 준비했다.
소설은 안중근이 상해, 블라디보스토크, 하얼빈을 거치는 여정을 통해 독립운동을 위한 조직적 기반을 마련하려 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다. 상해에서는 국권 회복을 위한 지지자를 모으려 했으나 좌절했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의병 활동을 하며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으나 배신과 희생이 뒤따랐다. 일본군 포로를 석방해주었지만, 그들이 부대의 위치와 병력 규모를 밀고하는 바람에 동료들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이러한 경험들은 결국 하얼빈에서의 결단으로 이어졌다.
<하얼빈>은 또한 안중근이 천주교 신자로서 겪은 내적 갈등을 깊이 있게 다룬다. '살인하지 말라'는 계율 앞에서 그는 고민했지만, 일본 제국주의의 압박 속에서 조국을 구하기 위한 선택을 해야 했다. 그러나 그의 행위는 당시 한국 천주교회로부터 외면당했고, 그는 교리상 죄인으로 남게 되었다. 이 부분은 종교와 현실 정치가 충돌하는 지점을 잘 보여주며, 역사적 평가에 대한 독자의 고민을 이끌어낸다. 과연 종교적 신념이 절대적인 것인지, 아니면 현실 속에서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지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진다.
이 소설은 단순한 영웅담이 아니다. 안중근이 대의를 위해 싸웠다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그의 가난과 젊음,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의 번민을 강조한다. 그는 실탄 일곱 발과 백 루블의 여비만을 가지고 하얼빈으로 향했다. 이토를 저격할 때 느낀 반동과 총알이 명중하는 감각, 그리고 체포 후의 태도는 그의 결단력과 신념을 더욱 극적으로 부각시킨다. 총을 쏘는 순간, 그는 자신의 행동이 단순한 살인이 아니라 조국을 위한 투쟁임을 확신했다.
안중근 의사는 사형을 선고받고 항소를 포기했다. 그는 자신의 행위를 독립전쟁의 일부로 보았고, 일본 법정에서 포로로서 당당히 맞섰다. 법정에서의 그의 답변은 논리적이었으며, 질문을 압도하는 힘을 가졌다. 그는 단순한 자객이 아니라, 전장에서 적장을 사살한 군인이었다. 그의 마지막 유언은 조국 독립을 위한 간절한 염원을 담고 있다.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그러나 해방 이후에도 그의 유해는 찾지 못했고, 이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역사적 숙제로 남아 있다.
소설 <하얼빈>은 안중근이라는 인물의 인간적인 면모와 역사적 의미를 균형 있게 조명한다. 그는 대의만을 좇은 인물이 아니라, 고민하고 번민하며 선택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조선의 독립을 위한 필연적인 것이었다. 그의 희생은 단순한 한 인물의 결단이 아니라, 조선과 아시아의 독립을 위한 필연적인 선택이었음을 이 소설은 강렬하게 전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