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의 집 - 힐링 아티스트 강일구의 그림 그리며 살아가는 느긋한 오늘
강일구 지음 / 더블:엔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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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만나도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 있다. 어쩌다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되면 덩달아 나까지 밝고 즐거운 기분이 된다. 에너지가 전염되는 느낌이랄까? '화가의 집'을 쓴 작가 강일구가 그러하다. 이 책은 저자 자신이 살아 온 과정을 따뜻한 그림과 유머러스한 문장을 적절히 조화시키며 풀어내고 있다. 책을 읽는 내내 유쾌한 이웃집 털보 아저씨와 수다를 떠는 느낌이다.

 
  표지부터 화사한 노란색에 둥글고 심플한 검정선들이 단숨에 시선을 사로잡는다. 일러스트와 카툰을 주로 그리는 화가 강일구는 단순한 선과 색으로 한순간에 사람들을 몰입시키는 그림을 그린다. 단순하게 보이지만 깊은 사색으로부터 나올법한 통찰이 깃들어 있고 그로 인해 관람자들은 짧은 순간에 많은 여운을, 때로는 위트를 즐길 수 있다.

 


  대학교도 아닌 국민학교 1학년을 재수하고, 정해진 방위를 마다하고 현역으로 군대에 달려 드는 좀 이상한 성장과정을 거친 저자는 당시로서는 파격에 가까운 결혼과 개, 닭, 오리 라는 가족 구성원을 거치며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아왔다. 결과론 적이긴 하지만 그런 삶이 있었기에 강일구의 특별한 그림들도 탄생할 수 있지 않았나 감히 생각해본다.


  전반부가 화가 강일구가 살아온 삶, 유년시절, 어머니, 아내에 대한 이야기라면, 후반부는 화가 강일구의 딴짓들이 주로 실려 있다. 문장마다 화가 강일구라는 타이틀로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고는 있지만 정원사, 연극 연출가, 배우, 작가, 영화감독까지 딴짓이 너무나 재밌는 50대 아저씨다. 무엇이든 하고 싶은 일은 해보고야 마는 용기와 실행력, 그 생기 넘치는 시간들이 부러워서 한참을 바라봤다. 내가 갖지 못한, 일단 저지르고 보는 그의 성미가 통쾌하게까지 느껴졌다.


  새롭게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반백살은 너무 늦은 것 같다. 다들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저자에게 나이라는 경계는 이미 없다. 삶을 재미있게 살고 싶어서 끊임없이 노력하는, 그 넘치는 열정과 용기에 박수를 보내며, 은밀하고 즐겁게 내 남은 삶의 딴짓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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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서로에게 별이 되자
이상.김유정 지음 / 홍재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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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을 교과서로 배운 세대인 만큼 나에게 이상은 '날개'였고, 김유정은 '동백꽃'이었다. 수업시간에 필기는 안 했어도 작품만은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있다. 두 작품은 교과단원 만큼이나 멀리 떨어진 것이었지만 서로 다른 이유로 좋았다. '날개'는 세련된 차가움이었고 '동백꽃'은 흙냄새 나는 따뜻함이었다. 하지만 무지하게도 둘이 동시대 인물 인줄은 모르고 있었다. 그들의 다른 작품들과 수필을 접하는 일은 더더구나 없었다. 


 '우리 서로에게 별이 되자'는 이상과 김유정의 서거 81주기를 추모하면서 발행된 책으로 그들의 수필과 편지글로만 채워져 있다. 소설가이자 시인인 그들에게서 소설과 시를 빼면 무엇이 남을까? 수필, 산문이라는 특성상 삶의 단면들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다 보니 그들의 작품보다는 삶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이상의 시, 소설은 지금 읽어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오감도', '건축무한 육면각체' 같은 시들이 그러하고 '날개', '봉별기' 같은 소설이 그러하다. 하물며 1930년대, 20세기의 가치관으로 이상의 작품을 본다면 당시에 헛소리라고 치부되던게 오히려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거기에 초현실주의라는 이름표를 달아놓으니 리얼리즘에 반항하는 투사처럼 결연해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번에 실린 이상의 수필들을 보며 느낀 점은 그가 그런 문학적 성취와 사회적 평가 사이에서 엄청나게 괴로워했구나, 외로웠구나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상의 이번 죽음은 이름을 병사에 빌었을 뿐이지 그 본질에 있어서는 역시 일종의 자살이 아니었는지-" 라고 쓴 박태원의 글에 쉽게 수긍이 갔다.


 김유정의 작품만 보자면 한 평생 가난에 시달렸던 작가의 삶을 쉽게 상상하기 힘들다. 하지만 이번에 실린 수필들을 보면 그를 괴롭히는 가난과 병마가 얼마나 지독했던지, 그 와중에도 치열하게 써야만 했던 문학적 열망이 너무도 처절하게 느껴졌다. 이상의 동반자살 제안에도 " 저는 명일의 희망이 이글이글 끓습니다" 라고 대답하는 김유정의 한마디가 죽어가는 모든 것들의 외침인냥 눈물이 났다. 


 이 책을 읽고 두 사람의 삶이 내가 아는 옆집 아무개의 그것인듯 가슴이 먹먹했다. 작가의 연보로 보는 삶과 수필로 직접 써내려간 스스로의 삶은 그 무게가 사뭇 달랐다. 요절이라고 하는 역사적 기록은 낭만적이지만 그 짧았던 생이 죽음보다 처절했음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부디 서로에게 별이 되어 외롭지 않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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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 원론 - 옛이야기로 보는 진짜 스토리의 코드 대우휴먼사이언스 20
신동흔 지음 / 아카넷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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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아이와 구렁덩덩 새 선비라는 책을 읽었던 터다. 줄거리만 보자면 할머니가, 그것도 구렁이를 낳아, 심지어 장가를 보내고 그 며느리가 친정의 악행으로 도망간 남편을 찾으러 간다는 이야기. 오늘날의 정서로 보면 말도 안되는 허무맹랑이었다. 다 읽고 아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나로서는 이 책에 대해 덧붙여줄 말이 없어 고민스러웠다. 그러던 차에 스토리텔링 원론을 읽으며 이 이야기가 다뤄져 반가웠다. 아이에게 읽어주기 전에 이 책을 먼저 읽었더라면 조금은 다른 이야기를 해줄 수 있었을까?


이 책은 전반적으로 옛이야기를 중심으로 스토리텔링이 어떻게 이루어져 왔는지 설명해 주고 있다. 사실 전해오는 설화나 신화, 민담들은 하나같이 황당무계하고 극단적이어서 줄거리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들이 많다. 이 책에 실린 예들만 봐도 그렇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옛이야기들이 많은 부분 각색, 변형 되어 전해져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원형, 원작 그대로를 읽어보면 저자의 말대로 조금 다른 느낌을 받는다. 저자는 차례로 서사적 상징들과 숨겨진 화두, 모티브들을 읽어내는 법을 알려주는데, 그 상관관계와 몰랐던 의미들이 떠오르면 아하하고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전반부에 인간과 이야기가 얼마나 긴 역사를 함께해 왔는지와 설화의 이야기로서의 가치(소설보다 하위개념으로 분류되는 것에 대한 경계), 신화, 전설, 민담의 차이 등을 다루고 있다면, 중반부에는 모티브(화소), 구성, 의미 해석을, 후반부에는 실제 사례(이야기)를 분석하고 비교를 통해 진짜 이야기를 찾아나갈 수 있도록 안내한다. 중반부부터 다소 어렵게 느껴진 것도 사실이나, 원론을 다루는 책인 부분을 감안하면 쉽게 설명하려는 저자의 노력이 잘 드러나있다. 특히, 여러 옛이야기들의 원작이 많이 실려 있어 이야기 자체를 새롭게 즐기는 기회도 되었다. 


 요즘은 스토리텔링이 각 종 미디어는 물론이고 정치, 경제 등 여러 분야에 일반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특히 개인 미디어의 활동이 활발한 요즘 같은 시대에는 누구라도 갖추어야 할 기본 소양이 되었다. 이야기의 가치와 힘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방법을 알기 위해 천천히 정독하기에 좋은 책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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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어때, 떠나도 괜찮아 - 이기적 워킹맘의 자아찾기 나홀로여행
티라미수 지음 / 더블유미디어(Wmedia)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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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기적이다. 그녀의 삶에 온전히 동의하지 못하겠다. 그런데 난 왜 계속 성취로 가득한 그녀의 지난 시간들을 흘끔거리고 반짝반짝 빛나는 그녀의 오늘을 넋 놓고 바라보는가..


갑자기 아픈 아이를 어린이집에 남겨두고 퇴근시간까지 11초 애가 닳는 엄마도, 엄마가 집에 있었으면 좋겠다며 치마폭에 매달리는 아이도, 파김치가 되어 돌아온 집안이 폭탄 맞은 것처럼 어질러져 있고 냉장고엔 썩어 가는 양파뿐일때의 깊은 절망이 이 책에는 없다. 대신 밀라노 노천까페에서 마시는 한잔의 에스프레소, 썬글라스와 머플러를 두르고 바구니가 달린 자전거를 타던 우둘투둘한 밀라노의 돌길, 고흐를 찾아 무작정 떠나는 파리의 여름,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를 위한 토스카나의 아그리투리스모 같은 이국의 풍경이 가득하다.


언뜻 보면 그저 팔자 좋은 여자의 여행기 같지만 아니다. 이 책은 그 이상의 것들을 생각하게 해 준다. 저자는 MD, 편집샵 매니저, 브랜드 매니저 등 많은 직업을 가진다. 그 많은 직업들이 시사하는 바는 저자가 얼마나 자신의 삶을 위해 고군분투 했는가이다. 그리고 열정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자신을 마음 속 목소리를 듣기 위해, 자기가 가야 할 길의 방향을 잃지 않기 위해 틈틈이 여행을 간다. 저자에게 있어 여행이란 그야말로 자아 찾기인 셈이다.


P.173 행여 누군가, 결혼한 애 엄마 혼자 여행을 간다고 괜한 걱정을 해준다면, 책임과 자유에는 여러 차원의 형태가 있다고 말하겠다. 책임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책임을 물리적 족쇄 정도로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사랑하는 이들에게 책임을 다하는 일은 상상하는 것처럼 무거운 짐을 어깨에 짊어진 것과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의외로 책임은 서로를 이해해가는 즐거움을 동반하기도 하니까  

결혼을 하고 2년 남짓 워킹맘이던 시절이 있었다. 짧은 시간 이었다. 표면적인 이유는 둘째의 임신이었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일과 육아를 양립하기에 내 능력이 너무 모자란 탓이었다. 결국 직업적 성취를 얻지도 육아에 대한 책임감을 덜어내지도 못한 채 회사를 도망치듯 떠나왔다. 그 이후로 육아에 전념한 몇 년 동안 자존감은 거의 바닥까지 떨어져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회사를 떠나오던 그때 나도 어딘가로 나만을 위해 결연히 떠날 용기가 있었다면 지금쯤 내 삶은 조금 더 빛나고 있었을까. 엄마로서의 내가 아닌, 원래의 나를 찾을 수 있었을까.


심지어 글까지 잘 쓰는 저자의 이야기에 흠뻑 빠진 채 책장을 넘기며 여러가지 생각이 드는 밤이다. 내 삶의 방향키, 지금 내가 쥐고 있는 거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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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행복론 - 현실을 사랑하는 25가지 방법
가와사키 쇼헤이 지음, 이영미 옮김 / 소소의책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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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ys be ambitious!(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누구의 말인지는 몰라도 아버지는 어릴 때 이 문장을 자주 들먹이셨다. 꿈을 가져야 하고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하고 노력하면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배우며 자랐다. 그래서 삶은 노력해야하는 것이고 실패하면 노력이 부족한 탓이었다. 스스로를 자책하는 이유가 됐다. 그럴 때마다 누군가 너는 충분히 노력했고 그만하면 됐다라고 말해주었다면 내 인생이 조금은 달라졌을까?


작은 행복론은 그런 이상적인 꿈에 짓눌린 삶을 살지 말자가 가장 큰 주제다. 손이 닿지 않는 먼 이상을 위해 가까운 현재의 행복을 놓치지 말라는 이야기다. 이상에 둘러싸인 삶은 늘 애를 써야하고 노력해야 한다. 아버지 세대가 그렇게 살아왔고 나 또한 그 길을 밟고 있지만 4차산업 혁명을 맞이하는 요즘 시대에 이르러서는 생산성이 전부였던 시대의 사고가 도통 먹히질 않는 모양새다.

 

현실을 사랑하는 25가지 방법이라는 소주제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에는 이상을 버리고 현실에 널려있는 행복을 만끽하기 위한 방법들을 소개하고 있다. 고전을 읽는다거나 자연을 즐기고 일기를 써보자라는 제안들은 전적으로 동의 하는 방법들이다. 반면 버리기 위한 정리정돈은 하지 않는다’, ‘점점 고개를 숙이자’, ‘강한 의견은 갖지 않는다같은 방법들은 좀 허를 찌르는 구석이 있다. 다들 비우자고 외치는 미니멀 라이프가 유행인 이때 버리기 위한 정리 정돈은 결국 소유의 이상을 불러일으킨다는 저자의 의견에 이마를 탁 쳤다. 소비와 폐기의 반복이 아니라 가진 물건의 가치를 재발견 하는 쪽이 훨씬 유의미하다는 것이다. 삶을 통찰하는 저자만의 방식이 흥미롭다.

 

사실 저자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다소 장황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전하려고 하는 행복한 삶에 대한 메시지는 명확하다. 꿈이, 이상이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진 못한다는 극명한 사실을 상기하며 이상에 대한 지나친 외경심을 경계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요즘 유행하는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 욜로(Yolo) 같은 단어들에 마음이 움직인다면 이 책을 한번쯤 읽어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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