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 철학자 황제가 전쟁터에서 자신에게 쓴 일기 현대지성 클래식 18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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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그 이름을 어디서 봤던가 곰곰이 생각해 보면, 문학 시간이 아닌 세계사 시간이 이었던 것 같다. 그가 쓴 명상록이라는 책을 접하는 건 처음이었고 고대 로마시대,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몇 천년도 전에 이런 글이 쓰였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장르조차 불분명한 이 책은 시간을 완전히 초월한 철학적 메시지들을 담고 있어 읽는 내내 경이로웠다. 고대 로마와 작금의 현실이 크게 다르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 책은 자그마치 기원후 120년대로 거슬러 올라 로마의 16대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이민족과의 전쟁 중에 자신의 내면을 기록한 일기이자 스토아 철학자로서의 철학서이다. 아무리 철학이 밥 먹는 일처럼 일상적인 시대였다 하더라도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사선에서 그것도 모든 것을 총괄해야 하는 황제가 이런 깊이 있는 사고와 사유를 할 수 있다니 놀랍다.


12권으로 나누어져 있는 이 책은 전반적으로 금욕적이고 이성적인 삶(이성과 본성이 일치하는 삶)을 추구하는 스토아 철학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인간의 선함을 쾌락의 유혹으로부터 지켜내는 일을 중요시 하고 지도자로서 다수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공헌하는 삶을 다짐하기도 한다. 맨 처음 1권의 내용을 보면 황제 주변 사람들에 대한 배울 점을 세세하게 나열하고 있는데 이런 사고의 밑바탕에 있는 인간에 대한 인류애적인 정신과 자신을 끊임없이 일깨우기 위한 자성이 위대한 황제로서의 면모로 보인다.


P. 45 , 나의 정신이여, 너는 네 자신을 학대하고 또 학대하고 있구나. 그것은 네 자신을 존귀하게 할 기회를 스스로 없애버리는 것이다. 인생은 한 번뿐이고, 너의 인생도 끝나가고 있다. 그런데도 너는 네 자신을 존중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너를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마치 너의 행복이 달려 있다는 듯이 다른 사람의 정신 속에서 너의 행복을 찾고 있구나.


P. 50 두번째는 가장 오래 산 사람이나 짧게 산 사람이나 잃는 것은 똑같다는 것이다. 사람이 자기가 소유하고 있지 않은 것은 빼앗길 수 없고, 모든 사람은 다 똑같이 현재라는 순간만을 소유하고 있어서, 그가 누구든 오직 현재라는 순간만을 잃을 뿐이기 때문이다.   


외부의 적을 막고 수 많은 사람을 다스리는 황제가 지독할 정도로 자신의 내면을 정제하고 일깨우는 행위 자체도 존경스럽지만 그가 자신에게 던지는 메시지들이 세대를 초월하여 지금의 우리들에게 울림을 준다는 사실에 깊은 존경과 찬사를 보낸다. 스토아 철학의 금욕, 이성주의는 요즘 젊은 사람에게는 고지식한 꼰대의 잔소리처럼 거부감이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을 뛰어 넘는 깊은 성찰이 문장마다 면면하다. 나로서도 인생을 대하는 마음가짐을 새롭게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아울러 세상의 모든 지도자들에게 이 책을 한번쯤 읽어보고 스스로를 돌아보길 권하고 싶다.    


P. 108 네가 네게 맡겨진 일을 행할 때에는 춥든지 덥든지, 졸리든지 푹 잤던지, 욕을 먹든지 칭송을 받든지, 죽어가든지, 또는 그 어떤 상황이 닥쳐도 개의치 말고 행하라. 죽는 것도 인생의 일부이기 때문에, 죽음을 눈앞에 두었더라도 네게 맡겨진 일을 잘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P. 127 벌 떼에게 유익하지 않은 것은 한 마리 벌 에게도 유익하지 않다.


현대지성 출판사에서 나온 이 책은 번역과 주석이 하도 정성스러워 고전이라는 느낌없이 술술 읽혔다. 어설픈 자기계발서 백 권을 읽는 것보다 이 책 한 권을 천천히 읽는 것이 내 인생의 시간낭비를 줄이는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삶의 정수가 되는 문구들이 가득하다. 죽기 전에 이런 멋진 고전을 읽게 되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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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꽃님아 - 계절을 알려주는 꽃 동시집 아주 좋은 그림책 3
김종상 지음, 김란희 그림 / 아주좋은날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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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이 반가운 이유는 수도 없이 많지만, 그 중 하나는 꽃이 지천으로 피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굳이 공들여 가꾸지 않아도 제멋대로 뻗어나간 개나리나 민들레, 제비꽃 같은 작은 들꽃들이 사방팔방 피어 대는 통에 눈 앞이 아른아른하다. 그냥 걷기만 해도 기분 좋은 봄날 오후는 발끝에 놓인 작은 꽃 한 송이로부터 오기도 한다.

가지마다 하얀 팝콘처럼 무성하게 터져 있는 벚나무 아래에 앉아 펼친 안녕? 꽃님아는 봄꽃처럼 반가운 책이었다. 요즘은 흔하지 않은 예쁜 동시집이다. 계절을 알려주는 꽃을 골라 그 꽃으로 시를 지었다. 꽃과 동시는 그 익숙함이 무색하게도 참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다. 특별함을 더하기 위해 석판화라는 다소 생소한 기법으로 꽃을 그려 넣었다. 어릴 때 해봤던 고무판화만을 떠올리는 나로썬 이 따뜻한 색감들이 어디로부터 온 건지 신기하기만 하다.

짧은 시라도 아이와 함께 읽으니 이런저런 이야깃거리가 많다. 나는 단풍나무라는 시가 가장 좋고 아이는 민들레라는 시가 좋단다. 붓꽃은 정말 붓을 닳았네, 연꽃은 할머니네 집 연못에서 본 적 있지?, 갈대는 올리브나무와 갈대동화에 나오는 그 갈대야? 같은 질문들도 쏟아져 나온다. 아무래도 아름다운 시어들에 빙그레 미소 짓는 것은 어른의 몫이고 여러가지 꽃 속에서 이런저런 상상의 나래를 펴는 건 아이의 몫이었던 듯싶다.

 

 

책에서 꽃 향기가 날 것 같다. 책 한권으로 몸과 마음이 투명해지는 기분이다. 요즘 아이들도 동시를 읽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동시가 좋다. 내 아이도 동시를 읽고 자라길 바란다. 언젠가 퇴색될지언정 지킬 수 있을 때 까지는 지켜주고 싶은 동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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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후홈트 - 트레이너 남편이 알려주는 예쁜 몸 만들기
양영민 지음 / 비타북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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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러브레터를 읽고 있는 걸까? 아니다 이것은 아이를 낳고 엉망이 된 몸을 바꿔준다는 홈 트레이닝 책이다. ‘트레이너 남편이 알려주는 예쁜 몸 만들기라는 부제가 그러하고, 이미 아름다운 몸매를 되찾은 아내가 밝게 웃으며 스트레칭을 하는 모습을 봐도 이 책은 운동법을 알려주는 책이 맞다. 그런데 프롤로그를 읽고 울컥해버린 이 마음을 어쩌면 좋을까?

트레이너임에도 불구하고 출산 후 망가진 아내의 몸만 탓하지 하지 않고 그 너머에 있는 마음의 문제를 헤아려주는 남편이 참으로 세심하게 느껴졌다. 우울한 아내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남편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려 하는 모습도 감동적이다. 지금 같이 사는 남의 편과 주변의 이야기만으로도 소소한 일이나마 아내를 위해 스스로 움직이는 사람은 결코 많지 않는 걸 안다. 첫 장부터 호감도 급상승한채로 책을 펼쳐 든다. 이제 움직여야 할 시간이다.


엄마가 됐다. 몸이 변했다.

두 아이를 낳고 다행히도 몸무게는 돌아왔다. 하지만 문제는 몸무게가 아니었다. 체력과 체형이었다. 생기를 잃고 축축 늘어지는 살들과 그만큼이나 턱턱 늘어지는 체력이 문제였다. 이 홈트 책은 무엇보다도 그 점을 정확히 짚고 있어서 반가웠다. 요즘 책답게 QR코드로 손쉽게 동영상도 볼 수 있다. 임신부터 출산 후까지 할 수 있는 부위별 운동법과 그때 주의해야 할 점들도 상세히 나와 있다. 특히나 출산 직후엔 어린 아기를 두고 밖에서 운동을 할 수 있는 엄마들이 많지 않다. 확실히 엄마들에겐 엄마들의 생활 패턴과 신체 상태를 고려한 엄마들의 운동법이 필요한 것이었다.

 

 

 

 가장 관심이 있던 부분은 복부 운동과 하체 운동이었다. 큰 맘을 먹고 거실에 앉아 책을 펼치고 복부 운동을 따라해 본다. 물론 사진처럼 정확한 동작은 안되지만 나름 열심히 몸을 움직인다. 허벅지도 따라해본다. 종아리 부분이 당기는 느낌이 운동이 되는가 싶다. 열심히 따라 한 결과는 다음날의 근육통으로 나타났지만 꾸준히 할 수만 있다면 헬스장 회원권을 끊지 않아도, 다른 아줌마들 틈바구니에서 요가나 에어로빅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변화된 몸을 기대 할 수 있지 않을까? 조금 더 아름다워지길! 여름이 오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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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집 - 힐링 아티스트 강일구의 그림 그리며 살아가는 느긋한 오늘
강일구 지음 / 더블:엔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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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만나도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 있다. 어쩌다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되면 덩달아 나까지 밝고 즐거운 기분이 된다. 에너지가 전염되는 느낌이랄까? '화가의 집'을 쓴 작가 강일구가 그러하다. 이 책은 저자 자신이 살아 온 과정을 따뜻한 그림과 유머러스한 문장을 적절히 조화시키며 풀어내고 있다. 책을 읽는 내내 유쾌한 이웃집 털보 아저씨와 수다를 떠는 느낌이다.

 
  표지부터 화사한 노란색에 둥글고 심플한 검정선들이 단숨에 시선을 사로잡는다. 일러스트와 카툰을 주로 그리는 화가 강일구는 단순한 선과 색으로 한순간에 사람들을 몰입시키는 그림을 그린다. 단순하게 보이지만 깊은 사색으로부터 나올법한 통찰이 깃들어 있고 그로 인해 관람자들은 짧은 순간에 많은 여운을, 때로는 위트를 즐길 수 있다.

 


  대학교도 아닌 국민학교 1학년을 재수하고, 정해진 방위를 마다하고 현역으로 군대에 달려 드는 좀 이상한 성장과정을 거친 저자는 당시로서는 파격에 가까운 결혼과 개, 닭, 오리 라는 가족 구성원을 거치며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아왔다. 결과론 적이긴 하지만 그런 삶이 있었기에 강일구의 특별한 그림들도 탄생할 수 있지 않았나 감히 생각해본다.


  전반부가 화가 강일구가 살아온 삶, 유년시절, 어머니, 아내에 대한 이야기라면, 후반부는 화가 강일구의 딴짓들이 주로 실려 있다. 문장마다 화가 강일구라는 타이틀로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고는 있지만 정원사, 연극 연출가, 배우, 작가, 영화감독까지 딴짓이 너무나 재밌는 50대 아저씨다. 무엇이든 하고 싶은 일은 해보고야 마는 용기와 실행력, 그 생기 넘치는 시간들이 부러워서 한참을 바라봤다. 내가 갖지 못한, 일단 저지르고 보는 그의 성미가 통쾌하게까지 느껴졌다.


  새롭게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반백살은 너무 늦은 것 같다. 다들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저자에게 나이라는 경계는 이미 없다. 삶을 재미있게 살고 싶어서 끊임없이 노력하는, 그 넘치는 열정과 용기에 박수를 보내며, 은밀하고 즐겁게 내 남은 삶의 딴짓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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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서로에게 별이 되자
이상.김유정 지음 / 홍재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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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을 교과서로 배운 세대인 만큼 나에게 이상은 '날개'였고, 김유정은 '동백꽃'이었다. 수업시간에 필기는 안 했어도 작품만은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있다. 두 작품은 교과단원 만큼이나 멀리 떨어진 것이었지만 서로 다른 이유로 좋았다. '날개'는 세련된 차가움이었고 '동백꽃'은 흙냄새 나는 따뜻함이었다. 하지만 무지하게도 둘이 동시대 인물 인줄은 모르고 있었다. 그들의 다른 작품들과 수필을 접하는 일은 더더구나 없었다. 


 '우리 서로에게 별이 되자'는 이상과 김유정의 서거 81주기를 추모하면서 발행된 책으로 그들의 수필과 편지글로만 채워져 있다. 소설가이자 시인인 그들에게서 소설과 시를 빼면 무엇이 남을까? 수필, 산문이라는 특성상 삶의 단면들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다 보니 그들의 작품보다는 삶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이상의 시, 소설은 지금 읽어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오감도', '건축무한 육면각체' 같은 시들이 그러하고 '날개', '봉별기' 같은 소설이 그러하다. 하물며 1930년대, 20세기의 가치관으로 이상의 작품을 본다면 당시에 헛소리라고 치부되던게 오히려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거기에 초현실주의라는 이름표를 달아놓으니 리얼리즘에 반항하는 투사처럼 결연해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번에 실린 이상의 수필들을 보며 느낀 점은 그가 그런 문학적 성취와 사회적 평가 사이에서 엄청나게 괴로워했구나, 외로웠구나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상의 이번 죽음은 이름을 병사에 빌었을 뿐이지 그 본질에 있어서는 역시 일종의 자살이 아니었는지-" 라고 쓴 박태원의 글에 쉽게 수긍이 갔다.


 김유정의 작품만 보자면 한 평생 가난에 시달렸던 작가의 삶을 쉽게 상상하기 힘들다. 하지만 이번에 실린 수필들을 보면 그를 괴롭히는 가난과 병마가 얼마나 지독했던지, 그 와중에도 치열하게 써야만 했던 문학적 열망이 너무도 처절하게 느껴졌다. 이상의 동반자살 제안에도 " 저는 명일의 희망이 이글이글 끓습니다" 라고 대답하는 김유정의 한마디가 죽어가는 모든 것들의 외침인냥 눈물이 났다. 


 이 책을 읽고 두 사람의 삶이 내가 아는 옆집 아무개의 그것인듯 가슴이 먹먹했다. 작가의 연보로 보는 삶과 수필로 직접 써내려간 스스로의 삶은 그 무게가 사뭇 달랐다. 요절이라고 하는 역사적 기록은 낭만적이지만 그 짧았던 생이 죽음보다 처절했음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부디 서로에게 별이 되어 외롭지 않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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