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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록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 철학자 황제가 전쟁터에서 자신에게 쓴 일기 ㅣ 현대지성 클래식 18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18년 4월
평점 :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8/0421/pimg_7338931711890066.jpg)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그 이름을 어디서 봤던가 곰곰이 생각해 보면, 문학 시간이 아닌 세계사 시간이 이었던 것 같다. 그가 쓴 ‘명상록’이라는 책을 접하는 건 처음이었고 고대 로마시대,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몇 천년도 전에 이런 글이 쓰였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장르조차 불분명한 이 책은 시간을 완전히 초월한 철학적 메시지들을 담고 있어 읽는 내내 경이로웠다. 고대 로마와 작금의 현실이 크게 다르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 책은 자그마치 기원후 120년대로 거슬러 올라 로마의 16대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이민족과의 전쟁 중에 자신의 내면을 기록한 일기이자 스토아 철학자로서의 철학서이다. 아무리 철학이 밥 먹는 일처럼 일상적인 시대였다 하더라도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사선에서 그것도 모든 것을 총괄해야 하는 황제가 이런 깊이 있는 사고와 사유를 할 수 있다니 놀랍다.
총 12권으로 나누어져 있는 이 책은 전반적으로 금욕적이고 이성적인 삶(이성과 본성이 일치하는 삶)을 추구하는 스토아 철학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인간의 선함을 쾌락의 유혹으로부터 지켜내는 일을 중요시 하고 지도자로서 다수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공헌하는 삶을 다짐하기도 한다. 맨 처음 1권의 내용을 보면 황제 주변 사람들에 대한 배울 점을 세세하게 나열하고 있는데 이런 사고의 밑바탕에 있는 인간에 대한 인류애적인 정신과 자신을 끊임없이 일깨우기 위한 자성이 위대한 황제로서의 면모로 보인다.
P. 45 오, 나의 정신이여, 너는 네 자신을 학대하고 또 학대하고 있구나. 그것은 네 자신을 존귀하게 할 기회를 스스로 없애버리는 것이다. 인생은 한 번뿐이고, 너의 인생도 끝나가고 있다. 그런데도 너는 네 자신을 존중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너를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마치 너의 행복이 달려 있다는 듯이 다른 사람의 정신 속에서 너의 행복을 찾고 있구나.
P. 50 두번째는 가장 오래 산 사람이나 짧게 산 사람이나 잃는 것은 똑같다는 것이다. 사람이 자기가 소유하고 있지 않은 것은 빼앗길 수 없고, 모든 사람은 다 똑같이 현재라는 순간만을 소유하고 있어서, 그가 누구든 오직 현재라는 순간만을 잃을 뿐이기 때문이다.
외부의 적을 막고 수 많은 사람을 다스리는 황제가 지독할 정도로 자신의 내면을 정제하고 일깨우는 행위 자체도 존경스럽지만 그가 자신에게 던지는 메시지들이 세대를 초월하여 지금의 우리들에게 울림을 준다는 사실에 깊은 존경과 찬사를 보낸다. 스토아 철학의 금욕, 이성주의는 요즘 젊은 사람에게는 고지식한 꼰대의 잔소리처럼 거부감이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을 뛰어 넘는 깊은 성찰이 문장마다 면면하다. 나로서도 인생을 대하는 마음가짐을 새롭게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아울러 세상의 모든 지도자들에게 이 책을 한번쯤 읽어보고 스스로를 돌아보길 권하고 싶다.
P. 108 네가 네게 맡겨진 일을 행할 때에는 춥든지 덥든지, 졸리든지 푹 잤던지, 욕을 먹든지 칭송을 받든지, 죽어가든지, 또는 그 어떤 상황이 닥쳐도 개의치 말고 행하라. 죽는 것도 인생의 일부이기 때문에, 죽음을 눈앞에 두었더라도 네게 맡겨진 일을 잘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P. 127 벌 떼에게 유익하지 않은 것은 한 마리 벌 에게도 유익하지 않다.
현대지성 출판사에서 나온 이 책은 번역과 주석이 하도 정성스러워 고전이라는 느낌없이 술술 읽혔다. 어설픈 자기계발서 백 권을 읽는 것보다 이 책 한 권을 천천히 읽는 것이 내 인생의 시간낭비를 줄이는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삶의 정수가 되는 문구들이 가득하다. 죽기 전에 이런 멋진 고전을 읽게 되어 다행이다.